성공하기보다 이루는 삶을 선택하기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어떤 기준으로 직업과 진로를 선택할까.
가까이는 가족의 영향을 받고, 학령기를 지나며 접한 경험 속에서 자신의 길을 그려 나갈 것이다. 적어도 출발선에서는 정의롭지 않거나 정석이 아닌 선택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대부분은 모르고 하는 일이다. 원칙이 아닌 일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우며 자라왔다.
문제는 그 이후다.
원칙을 지킨 선택의 결과가 예상과 다르거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사람은 흔들린다.
‘나만 원칙을 지켜서 손해를 보는 건 아닐까.’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건 아닐까.’
갈등하다가 ‘이번 한 번만.’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라고 다를까.’하면서 균형감에서 이탈한다.
이때부터 반칙은 거창한 불의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처럼 포장된다.
일단 한 번이라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그 길로 들어서면, 더 이상 직진하지 않는다.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꺾여간다.
전직을 준비하던 시기에 특별채용 추천을 받은 적이 있다. 능력에 대한 평가에 따른 기회라고 여겼지만, 그 기회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공식적인 요구는 아니었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며 대가를 암묵적으로 전제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말로 유혹했다.
그 선택을 거절한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공개채용에 응시해 합격하고도 보직이나 진급 과정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 한번 질끈 감으라 거나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정의롭지 않은 선택을 권유했다. 이를 따르지 않았을 때 표면적인 평가는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함께 일하기 불편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은 계속됐다.
양심을 지키고 원칙대로 일하며 성과를 내도, 기회 자체가 가로막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단순히 치열한 경쟁사회여서만은 아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욕망을 채운 사람들이 성공의 모델처럼 포장되고, 그들이 사회적 힘을 가진 위치에 오르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물질과 지위, 유명세가 곧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이 존경의 외피를 두르는 사회에서 반칙은 점점 ‘현실 감각’이 된다.
침묵과 동조의 악순환 구조 속에서도 부당한 이익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불이익과 배제의 위험을 알면서도, 옳지 않은 선택에 합류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그것이 당장의 이익일 수는 있어도, 결국 인간의 존엄과 사회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그래서 동조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합류하지 않는다.
그 선택은 힘이 미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잔잔한 파동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삶의 균형을 지키고, 자녀에게, 주변에 정의로운 기준을 남긴다.
빠르고 치열하게 이익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회 속에서도, 양보하고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균형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불이익을 받고 뒤처져 보일지라도, 비열하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에게 당당하다.
청년들이 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부모나 선배, 어느 중년의 삶이 화려하지 않다고, 큰돈이나 높은 지위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않은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용기였을 수 있다.
우리의 현재는 그저 그런 정도의 삶을 지켜낸 사람들의 힘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젊은 세대에 의해, 조금 더 정의롭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빠르게 가기 위해 ‘이번 한 번만’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유혹할 때, 그 첫 선택을 내어주지 말기를 간청한다. 한 번 들어서면 길은 어긋난 방향으로 이어진다. 지금 비판하며 바라보는 그 모습으로 향해 갈지도 모른다.
느리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발걸음 해야한다.
가는 시간도 평화롭고, 돌아볼 때 풍요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