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않아도 괜찮아
2025년 8월의 늦은 새벽, 천둥이 집안을 뒤흔들었다. 창밖은 번개가 칠 때마다 잠시 환해졌다가 곧바로 어두워졌고, 천둥소리는 길게 이어졌다. 잠은 완전히 깨어버렸다. 아침부터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우산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비는 금세 굵어졌고, 우산은 몇 번 크게 흔들리다 결국 뒤집혔다. 다시 펴보려는 순간, 옆 골목에서 굵은 가지 하나가 힘없이 부러져 떨어졌다. 물이 튀어 오르고, 폭풍우는 얼굴을 거세게 때렸다.
우산을 접고, 나는 비 속으로 그냥 걸어 들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젖어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신발이 철벅거렸다. 바람이 옷자락을 잡아당겼고 몸은 한계점까지 흔들렸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이 폭풍우 속을 걷고 있는 거지?”
누구라도 되돌아갔을 법했다. 그러나 나는 걸음을 이어갔다. 비와 바람, 요란한 소음이 뒤섞이면서 오직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병동에서의 첫걸음이 떠올랐다. 링거를 한 손에 들고, 화장실까지 가는 일조차 버거웠다. 7층 복도를 천천히 돌고 나면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작은 언덕을 뛰어넘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걷고 싶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내가 다시 살아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다음 날에는 용기를 내어 다른 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몇 개만 오르내려도 숨은 금세 차올랐고, 계단 중간에 걸터앉아 쉬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뻤다. 전날보다 한 걸음 더 내디뎠다는 사실이 조용한 희망처럼 가슴속에 쌓여 갔다.
나는 폭풍 속에서도 계속 걸었다. 뒤집힌 우산을 든 채 거센 비의 벽을 향해 그대로 들어갔다. 누가 보면 무모해 보였겠지만,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이 폭풍우를 견딜 수 있다면, 그때의 나보다 조금은 나아진 게 아닐까.’
병동에서 첫걸음을 떼던 이후, 나는 내 안의 힘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가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폭풍우는 두려웠지만, 그만큼 내가 어디까지 살아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 같았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았다. 비를 피하지 않고 지나가 보고 싶었다. 한 걸음이라도 제대로 내딛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그때 깨달았다. 걷는다는 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조용한 확인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오늘도 길을 나선다. 발을 내딛는 순간 하루는 다시 시작되고, 나는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