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생존의 발걸음에서 사유의 여정으로
인간에게 걷기는 가장 오래된 행위다. 호모 사피엔스가 두 발로 일어선 순간부터 걷기는 생존 그 자체였다. 약 600만 년 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우리의 먼 조상이 두 발로 서는 데 성공했다.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시야가 넓어졌다. 멀리서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볼 수 있게 되었고, 돌과 나뭇가지를 쥘 수 있게 되었다. 사냥감을 쫓고, 맹수를 피해 달아나고,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는 삶. 초기 인류는 하루에 10킬로미터에서 20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한다. 걷기는 숨 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걷기의 성격이 바뀌었다. 약 1만 2천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밀과 보리를 심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처음으로 한곳에 머물렀다. 씨를 뿌리고, 싹이 트는 걸 지켜보고, 수확을 기다렸다. 하루 종일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자 인간의 발걸음에 여유가 생겼다. 급할 이유가 없는 걸음, 어디를 향하지 않아도 되는 걸음이 가능해진 것이다. 목적지 없이 걷다 보면 눈이 하늘로 가고, 발이 느려지고,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걷기가 이동이기를 멈추고 생각하는 일이 되기 시작한 건, 아마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전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구석기 동굴이다.
프랑스 남부의 쇼베 동굴은 1994년에 세 명의 탐험가가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이 동굴 안에 약 3만 6천 년 전에 그려진 그림 420여 점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벽에 그려진 동물들이 사냥감이 아니다. 벽면을 지배하는 것은 동굴사자, 코뿔소, 곰, 표범 같은 포식자들이고, 실제로 잡아먹었을 사슴이나 순록은 오히려 드물게 등장한다. 고고학자들은 오랫동안 벽화가 사냥 주술의 산물이라고 믿어왔는데, 이 사실 앞에서 그 가설이 힘을 잃는다. 벽에 그린 건 잡고 싶은 먹이가 아니라, 두렵고 경이롭고 이해할 수 없는 힘이었다.
더 흥미로운 건 이 그림들이 있는 위치다. 쇼베 동굴의 총 길이는 약 400미터인데, 가장 인상적인 벽화들은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사자 무리가 들소를 몰아가는 장면, 코뿔소들이 서로 대치하는 장면. 이런 그림들은 입구 근처가 아니라 고고학자들이 '종실'이라 부르는 맨 끝방에 그려져 있다. 솔방울 소나무 횃불 하나에 의지해서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끄러운 바닥, 좁은 통로,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던 동굴곰. 쇼베에서는 2,500점이 넘는 동굴곰 뼈가 나왔고, 벽에는 곰이 할퀸 자국이 무수히 남아 있다. 위험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들어갔다.
먹기 위해서도, 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 발걸음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쇼베의 화가들은 벽면을 미리 긁어 표면을 다듬고, 목탄과 적철석으로 명암을 넣었으며, 벽의 굴곡을 이용해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횃불의 흔들리는 불빛 아래에서 이 그림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벽을 향해 손을 뻗은 사람은 보이는 세계를 기록하려 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려 했다. 인류 최초의 예술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만들었다.
라스코와 알타미라도 마찬가지다. 벽화가 그려진 곳은 언제나 동굴의 안쪽이다. 빛이 닿지 않는 곳, 일상과 단절된 곳, 들어가기 위해 몸을 낮추고 좁은 틈을 비집고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 그 불편한 발걸음 자체가 하나의 의례였고, 그 끝에서 만나는 벽화는 의례의 완성이었다. 동굴 벽화에서 진짜 중요한 건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곳까지 걸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신석기로 넘어가면 걷기의 규모가 달라진다. 동굴 안쪽 수백 미터가 아니라,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서 한곳에 모이는 일이 시작된다.
스톤헨지 이야기를 해보자.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약 1,500년에 걸쳐 세워진 이 석조 원형은 하짓날 일출과 동짓날 일몰에 정확히 맞추어져 있다. 하짓날 새벽, 태양은 원형 바깥에 서 있는 힐스톤 뒤에서 떠오르며, 첫 빛줄기가 석조 원형의 한가운데를 꿰뚫는다. 영국 유산청의 레이저 측량 분석에 따르면, 이 지점 축을 따라 배치된 돌들이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설계였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건, 최근 연구에서 사람들이 이곳에 주로 모인 시기가 한여름이 아니라 한겨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근처 더빙턴 월스에서 발굴된 돼지 뼈를 분석해보니, 도살 시기가 매년 12월에서 1월 사이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가장 춥고 어두운 계절에, 가장 짧은 낮을 맞이하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이곳으로 걸어왔다. 스톤헨지에서 에이번 강까지 이어지는 대로가 있는데, 이 길 역시 같은 지점 축 위에 놓여 있다.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의례적 행렬을 위한 길이었다. 걸어오는 과정 자체가 의례의 시작이었고, 도착은 그 완성이었다.
그런데 스톤헨지보다 7,000년이나 앞선 유적이 있다. 튀르키예 남동부 게르무시 산맥 꼭대기에 자리한 괴베클리 테페는 기원전 9600년에서 8200년 사이에 세워졌다. 높이 5.5미터짜리 T자형 석회암 기둥들이 원형으로 서 있고, 기둥 표면에는 여우, 멧돼지, 두루미, 뱀, 표범, 독수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놀라운 건 이 유적을 세운 사람들이 농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발굴 현장에서 가축이나 재배 작물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10만 점 이상의 동물 뼈가 출토되었지만 전부 야생종이었고, 그중 60퍼센트 이상이 가젤이었다. 가장 가까운 물은 5킬로미터 밖에 있었고, 취사 화덕이나 쓰레기 더미 같은 일상의 흔적도 거의 없었다. 이곳을 발굴한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의 결론은 짧고 강했다. "먼저 신전이 세워지고, 그 다음에 도시가 왔다." 농경이 종교를 낳은 것이 아니라, 종교가 농경을 낳았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이 해석에는 반론이 있다. 최근 발굴에서 가정용 건물과 빗물 집수 시설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순수한 '신전' 이론에 금이 가고 있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농사를 짓기도 전에, 문자를 만들기도 전에, 도자기를 빚기도 전에, 사람들은 먼 곳에서 이 언덕 꼭대기까지 걸어왔다. 돌을 깎고, 동물을 새기고, 함께 먹고 마시며 무언가를 기렸다. 배가 고파서 걷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믿기 때문에 걷는 일이 이미 1만 1천 년 전에 시작되고 있었다.
문자가 생기고 나서야 걷기와 사유의 관계가 글로 남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부터 보자.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걷기의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이타카까지 10년이 걸렸는데, 대부분은 바다 위의 여정이지만 그가 겪는 시련의 구조는 걷기의 구조와 같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와 만나고, 유혹에 흔들리고, 선택을 강요받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곧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아고라와 뤼케이온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붙잡고 대화를 걸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걸어야 대화가 시작됐고, 걸어야 대화가 깊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와 뤼케이온에 학교를 연 그의 학파는 '페리파토스 학파'로 불렸다. 직역하면 '걸어 다니는 사람들'. 이 이름이 뤼케이온의 열주 산책로(peripatoi)에서 유래한 건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걸으면서 강의하는 버릇 때문이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요점은 같다.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하나였다는 점이다. 그 산책로 위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과 윤리학이 태어났다.
동양도 다르지 않았다. 노자는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도(道)'라는 글자를 택했는데, 이 글자는 '걷다'와 '머리(지혜)'가 합쳐진 것이다. 노자에게 진리란 어딘가에 도착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도덕경》에 천 리 길도 발아래에서 시작된다는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라는 말이 있다. 2,500년 전에 쓰인 이 한 줄보다 걷기와 사유의 관계를 더 잘 말해주는 문장이 있을까 싶다.
인도에서도 깨달음은 앉아 있는 자의 것이면서 동시에 걷는 자의 것이었다. 우파니샤드의 수행자들은 숲을 거닐며 명상했고, 붓다는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마친 후 제자들과 함께 인도 각지를 걸어 다니며 가르쳤다. 불교에는 '경행(經行)'이라는 수행법이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발이 땅에 닿는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앉아서 하는 명상과 동등한 수행법으로 인정받는 이 수련은 걷기 자체를 깨달음의 통로로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붓다의 삶 전체가 하나의 긴 걷기였다.
그리스의 산책로에서든, 중국의 산길에서든, 인도의 숲속 오솔길에서든, 인간은 걸으면서 생각했고 걸으면서 깨달았다. 발을 옮길 때마다 생각도 한 칸씩 움직였다. 한 걸음이 하나의 질문이었고, 다음 걸음이 대답이었다가, 또다시 질문이 되었다. 걷기는 가장 오래된 행위이면서, 가장 깊은 사유의 형식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