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외로움

2.6.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이유

by 성효경

2020년 봄, 도시가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만날 수 있는 사람 수가 8명에서 6명으로, 다시 4명으로 줄었고, 가장 심했을 때는 저녁 이후 2명까지만 허용되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약속은 취소되었고, 만남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코로나로 격리되어 집에만 있던 사람들은 격리 기간이 끝나자마자 타이머를 보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걷는 것도 마냥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밖에 나와도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고, 공원 산책로에는 화살표가 붙었다. 마주보고 걷다가 재채기라도 하면 감염될 수 있으니, 모두 같은 방향으로만 걸어야 했다. 혼자 걷는 게 편했다. 친구 한 명은 이 시기에 네이버 스토어를 시작했는데, 러닝 및 자전거 용품을 팔아서 재미를 좀 봤단다.


영국 정부 산하 기관 스포츠 잉글랜드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봉쇄가 시작되자 단 1년 만에 걷기 인구가 130만 명이 더 늘었다. 같은 기간 팀 스포츠 참여자는 94만 명 줄었고, 수영 인구는 180만 명 빠졌고, 헬스장 이용자는 190만 명 감소했다.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밖에 없었던 셈이다. 달리기(47만 명 증가)와 자전거(120만 명 증가)도 늘었지만, 장비도 체력도 필요 없는 걷기가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활동이었다.

2024년,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와 호주 가톨릭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영국의학저널(BMJ)에 대규모 메타분석을 발표했다. 걷기와 우울의 관계를 다룬 무작위 대조 실험 218개, 우울증 환자 14,170명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결과다. 걷기와 조깅을 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우울 점수가 27점 만점 기준 약 3~4점 낮았다. 가벼운 우울이 정상 범위로 내려올 수 있는 차이다. 놀라운 건 이 효과가 항우울제 복용과 운동을 병행한 그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약 없이 걷기만 한 사람들이, 약을 먹으면서 운동한 사람들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같은 해 홍콩중문대학교 공중보건학과 연구팀은 걷기만 따로 떼어 분석했다. 무작위 대조 실험 75개, 참가자 8,636명. 걷기를 한 그룹과 아무 운동을 하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더니, 우울 증상이 없던 사람들은 우울 점수가 2~3점 정도 낮아졌다. 소폭의 개선이다. 그런데 이미 우울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무려 11점이 떨어졌다. 27점 만점에서 11점이면, 중간 수준 우울이 정상으로 바뀔 수 있는 폭이다.


걷기가 우울을 줄인다는 건 데이터로 확인됐다. 그런데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걷고 나면 달라지는 건 점수만이 아니다. 팬데믹 때 대화할 상대가 없는 날이 많았다.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처음에는 걱정과 불안이 떠올랐다. 내일 회의는 어떻게 하지. 아이들 학교는 언제 가지. 어머니 건강은 괜찮으신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이대로 괜찮은 건가. 답은 안 나왔지만, 질문이 생긴 것만으로도 뭔가 달라졌다.

걷기는 나 자신과의 데이트다. 친구에게 연락해서 놀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집에만 박혀 있기는 싫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반포 한강공원에서 시작해 동작대교 밑에서 운동을 좀 하고, 노량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간다. 여의도에 도착하면 더현대 서울 5층으로 올라가서 번패티번을 먹는다. 혼자 줄 서고, 혼자 먹고, 혼자 나온다. 돌아올 때는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다리가 괜찮으면 왔던 길을 되걸어가고, 아프면 여의도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집에 돌아오면 발은 좀 아프지만, 아까 소파에 누워서 천장을 보던 그 기분은 아니다.

팬데믹은 끝났다. 하지만 그때 생긴 습관은 남았다. 나는 지금도 약속이 없는 저녁이면 신발을 신고 나간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게 전부다. 외로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30분 걷고 돌아오면 같은 빈 집인데, 아까보다 좀 나은 내가 거기 서 있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1화걷는 동안 몸에서 일어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