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추종자,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뭔가 계속 하고 있는걸 보니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

by 제니
“당신이 불행한 싱글이라면 결혼을 해도(불행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적인 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런 무력감은 언젠가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생겨날 것입니다. 사랑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의 배가 물에 뜨지 못한다면 아무도 당신과 함께 물을 건너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_<인생수업. 중>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사), 데이비드 케슬러(작가) 저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워킹맘으로 2년여 겨우겨우 회사에 다니다 어느 순간 날개가 꺾여버렸다. 20대에는 널리 퍼져있는 ‘계급론’, ‘수저론’ 따윈 무시하고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명언을 암기하며 가진 자원보다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뛰었다. 조금 쉬고 싶다 생각되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높은 목표와 성취 이후 보상의 리스트를 만들며 겨우겨우 버텨갔다.


30대 중반이 된 후 나는 깨달았다. ‘계급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그리는 ‘그림’에 도달하느라 바빠서 생활의 여유와 일상을 잃을 동안, 이미 그 ‘그림 속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행복과 여유를 느끼고 산다는 걸. (누린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언제 도달할지 모르는 목표와 이상을 향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에 염증이 났다. 지쳤다는 표현이 맞겠다. 목표를 이룬 다음 저 너머가 아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오롯이 생활을 ‘누리고 싶다’.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큰 갭이 자기계발을 탐닉하게 했고 꿈꾸면 이룰 수 있다는 긍정주의는 나를 매료시켰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워크숍을 듣고 사명선언서를 만들었으며,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말에는 전형적인 야행성 기질을 탓하며 죄책감을 가졌다. 뭔가를 끊임없이 하면서도 더 해야 한다는 강박과, 부족하다는 ‘결핍감’이 내면에 가득했다.


이 험한 세상 나라도 내 편이 돼야 하는데 나의 가장 큰 안티가 바로 ‘나’였다.


가끔 주변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너는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시야가 좁았던 어릴 때는 노력에 비해 만족하지 않은 성과를 보며 사회 탓, 부자 탓, 내 탓, 남 탓을 하곤 했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게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알지 못했다.


그 후 나는 내 머릿속 문장을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로 수정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비교급이 아닌, 팩트체크처럼 사는 동네, 다닌 학교, 부모님의 지원 등 외부요인을 다 따져서 ‘주어진 환경’에서 노력을 해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온다면, 그게 성공이 아닐까.


자서전에 나온,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기준의 ‘성공’은 안 되겠지만, 체급을 비교해서 따져보면 나, 아니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성공했고, 성공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설명: 당신은 이미 그대로 충분히 좋다!




100명에게는 100명의 각기 다른 삶이 있다


마지막에 다닌 회사는 대기업 임원과 CEO들이 주로 고객이었던 회사였다. 관리하는 파트너 코치님들의 스펙이 대단했는데, 신문 지면에 자주 나올법한 그분들과 2년여 같이 일하고, 인터뷰하고 소통한 결과 정말 열심히 노력하신 것 맞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분들은 하나같이 명확한 목표, 집중, 전략, 노력과 승부 등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지금 그 자리에 오셨다. 정말 존경스럽고 배울 점이 많다.


그런데 ‘다른 환경’도 있었다. 중학교 졸업해 고학으로 이 자리까지 오신 분들도 계시고, 환경이 어려워 부잣집 과외교사로 일했던 분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옛날 전쟁 통에 죽어 나가고 굶어 죽던 시절에도 아빠 친구가 미국 대학원 이사장이라 유학 갈 환경이었던 분도 있었다. 남편이 교수라 같이 유학을 갔다 오신 분들도 있었고 공부를 잘해 서울대를 갔다가 친구 추천으로 이 자리에 있던 분들도 있었다.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삶을 열심히 사는 부모님이지만, 가끔 내 기준으로 볼 때는 ‘좀 더 00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내가 만나는 코치님들과 비교해 왜 우리 부모님은 더 00을 못 할까 원망했던 적도 있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여유 있게 은퇴하신 분들을 볼 때면 우리 부모님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나 ‘체급’이 다른 데 같은 ‘잣대’로 비교했던 나의 ‘오류’였다.


아직 정확하게 부모님의 스토리를 알지는 못하나 지금껏 들어온 바로는, 전라북도 정읍에서 중학교 때부터 일을 잘해 농사일을 거들던 아빠는 20살 넘어 비료푸대 한 자루를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이 홀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엄마는 그 당시 경기여고를 나온 서울깍쟁이로, 쇼핑은 명동에서만 했고 돈 없는 아빠를 만나서 신혼집 전셋집을 마련해 올 정도로 당찬 여성이었다. 그 두 분의 만남으로 내가 태어났고 여러 가지 인생의 흐름 속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성실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계셨다.


그런 부모님의 삶을 ‘존중’ 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부모님이 이상한 게 아니라 ‘존중하지 않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한 ‘나의 문제’였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거창한 먼 미래가 아니고 그저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그 스테이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소소하게 행복 하자'로 마음을 바꿨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자기계발의 원조, ‘생산성’ 추종자였던 나는 잠시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내던지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졌다.(사실 그러면서도 뭔가 격렬하게 하고 있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 TO-DO-LIST설정-실행 순으로 이어가 MBTI 성격검사의 마지막 J유형으로 업무적으론 꼼꼼하고 깐깐하다. 취업할 때도, 결혼할 때도 업무 쳐내기처럼 리스트를 해치우는데 급급했다. (그래서 내 육아가 힘든 것인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융(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_by 네이버 지식백과




‘젊음’은 너무 쏜살같이 지나간다. 가끔 옛 사진, 5년 전 사진을 보면 그때 못마땅했던 내가 가장 예쁜 나였다는 걸 실감한다. 돈도 중요하지만 ‘젊음’이 중요하다는 사실, 죽으면 관에 들어갈 몸, 자식들은 지들이 열심히 살라지. 좀 누려보자 나도. (여보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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