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케렌시아에서 1박 2일 북스테이

파주 헤이리 모티프원,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by 제니
"그는 삶을 풀어야 할 문제라기보다 그려야 할 그림처럼 여긴다."
(He looks on life rather as a picture to be painted than as a problem to be solved.)

_by 오스카 와일드
▷사진설명_주인장 안수쌤과 아들의 모습. 아직도 흰머리 수염난 안수쌤을 기억한다.



‘나’를 찾는 여정인 갭이어.
‘나’ 자신도 몰랐던 나,
내가 외면했던 내 안의 ‘나’,
목표와 성공이 가장 큰 것으로 알고 꿈꾸었던 ‘나’,
그 속에서 공허하게 울고 있던 ‘나;
내 자리가 아닌데도 버티고 마음속으로 사무치게 울던 '나',
그런 나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하던 ‘나’,
때론 방황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다루고, 쉽게 좌절하고, 상처 주는 독설을 품은 '나'.




나의 케렌시아, 모티프원으로 가다


상처와 아픔의 시간들을 통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저 너머의 성공, 성취, 유명하고 거대한 것,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에 시선이 가있어 내가 멀리한 ‘내 안의 나’.

씩씩하게 거친 말로 방어하고 있었지만 실제론 여리디 여린 나약함으로 나를 감싸고 있던 ‘나’.


포장하고 가리며, 더 크고 용감하고 강압적으로 나를 포장해왔지만 실제로 내면의 나는 여리고 여린 소녀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늘 ‘무언가’ 쓰고 싶었다. 그리고 썼다.

첫 사회생활을 웹진 에디터로 시작해 업종, 직책이 바뀌어도 어느 순간 ‘쓰는’ 일을 기획해서 실행하고 있었다. 업무 외적으로 주말을 할애해 커피 잡지 객원 에디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는 세 개의 기획안이 자리 잡고 있다. (5년 전 다녀온 <사표내고 유럽여행> 다녀온 이야기, 투루언니의 워킹맘 생존기, 갭이어 프로젝트) 일단 뭐라도 쓰기 위해서는 영감이 떠오르는 장소에서 집중해서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돼 빛의 속도로 '모티프원'(http://www.motif1.co.kr/)을 예약했다.


7년 전, 연애시절 방문해 임신 중, 아이 출산 후, 그리고 네 번째 방문했다. 세월은 흘렀지만 파주 헤이리에 있는 그곳은 그대로, 주인장 안수 쌤도 그대로였다.


나는 종이와 나무 냄새를 좋아한다. 오래된 듯한 그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곳은 나의 케렌시아(Querencia)이다. ‘나만의’ 케렌시아가 아닌 것에 마음이 좀 그렇지만(좋은 것은 나 혼자 독점하고 싶은 나는 욕심쟁이) 부푼 가슴을 안고 파주 헤이리로 출발했다.


▷사진설명_모티프원 게스트룸에 있는 방명록에 적힌 제각각 사연 읽어보는 재미도 북스테이의 묘미다. /주인장 안수쌤과 한 컷!




1박 2일 간, 책과의 데이트


나만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남편이 아이를 케어하느라,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대중교통을 타고 헤이리로 이동했다. 아직은 장롱면허이기에 약수역에서 합정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뒤 2200번을 타고 파주로 향했다.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 파주에 도착했다. 욕심 많은 나는 노트북에 책 등 무거운 책가방을 매고 멋 낸다고 높은 굽을 신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곳에는 수많은 책이 있다. 방안 가득 채워진 수 백 권의 책들 중 1박 2일 동안 내 눈에 들어온 책들은 아주 소중한 녀석들이다. 어떤 영감과 사연이 있길래, 그 많은 것들 중 나랑 눈이 마주쳤는지,,,,,인연은 질기고 질기다.

▷사진설명: 모티프원 1박2일 북스테이 때 본 책들. 손에 닿는 것들을 읽다 보니 뭔가 통일성이 생기는 것 같다.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 읽기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 모든 여자들의 공통점이 뭐냐고? 그건 ‘나’였다. 나는 이상적인 여자를 찾아 헤매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여자들은 변해 갔지만 나는 늘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녀들과의 경험에서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_by <오자히르> 파울료코엘료
“상처를 통해서 내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 바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으며 , 숨겨진 보물인 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_by <아래로부터의 영성> 안셀름 그륀
“추억이 깃든 물건도 과감히 버려라.”

_by 킹스턴


“내 공간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존중의 기본입니다. 내 공간이 잡동사니로 넘쳐 나는 것은 내 삶에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암시하는 거라고 합니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물건이라기보다 추억이기 때문에 버리기 힘들지요? 그것이 과거를 짊어지고 사는 거라고 하네요. 과거의 울타리를 쳐놓고 그 속에서 사는 한 새로운 경험은 그 울타리의 장벽을 넘어오기 힘들다는 거지요. 미래를 새롭게 경험하고 싶으면 추억이 깃든 물건도 버려야 합니다. “ (본문 中)



추억, 추억이 깃든 물건도 과감히 버리자


남편은 나를 일종의 ‘호더’라고 부른다. 종이 쪼가리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버리지 못하게 하는 나는 쌓여있는 신문더미 속 오려 붙일 내용을 가위로 자른다. 포스트잇에 쓴 내용들도 중요 키워드라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고, 가계부를 쓰리라 작심삼일을 한 뒤 영수증을 버리지 못해 가계부 속에 쌓아둔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종이, 메모 흔적, 노트, 책 등이 서재방을 점령했다.


왠지 의미 있어서, 중요한 누군가와의 추억이 깃든 일기, 편지, 메모수첩, 다이어리 등 보관해야 할 추억이 박스째 늘어간다. 시간이 날 때면 그 추억을 또 꺼내 읽고 또 읽고 마치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다.


이 흐름을 끊는 방법은 버리는 수밖에 없다. ‘추억’은 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을 뛰어넘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셀프 합리화로 말이다. 변화의 시작은 그 ‘추억’부터 리모델링하는 것. 방구석구석을 한 번 들여다보고 ‘추억’ 일 지라도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자.



"당신이 원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당신 자신이 변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기쁨의 맥박수를 체크하고 재미로부터 눈을 떼지 말라!
앞으로의 인생에서 당신이 무엇을 원하게 될지는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오직 바로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라. 당신은 나쁜 여자다."

_by [배드걸가이드] 카메론 터틀 지음



2001년에 나온 책이다. 17년 전에도 나쁜 여자들은 대성했구나. 늦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도리가 점점 무게를 더해간다. 하나, 중심에 둬야 할 것은 바로 ‘나’.


과거에 무엇을 원했던 '나'이거나, 미래에 무엇을 원할 '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 가’에 집중하는 ‘나’가 앞으로의 모토다.




돌아갈 ‘집’이 있어 더 의미 있는 여행


미러 방,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는 파주 헤이리의 길을 장우산을 들고 걸으니 문득 쓸쓸함이 몰려왔다. 남편과 아들, 나는 지금 뒤늦게 ‘자아 찾기’에 매달리느라 분주한데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시간을 지켜주느라 평일에도 바쁜 남편은 주말 동안에도 좋은 아빠 역할을 하느라 쉴 새 없이 바쁘고 또 바쁘다. 2200번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창 밖 풍경을 봤다. 일요일 저녁에 대중교통을 탄 건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른다. 느낌이 새로웠다. 집으로 가는 길, 오늘따라 집이 참 그립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가 아닐까. 집에 도착해 문을 여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내 일상의 케렌시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의 일상과 장소가 소중하고 고마웠다.



그리곤 아빠가 떠올랐다. 성실과 근면의 아이콘, 살아있는 성자인 우리 아빠.

좀 더 요령 있고 약게 살길 바라는 딸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가 답답했었다.


헤이리를 나오고, 빗속에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아빠가 떠오른 건 ‘묵묵히 일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은 우리 아빠가 가장 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대단한 것을 쫓아 일상은 지겹고 평범한 것이라 여겼던 나. 그런 나를 지탱하고 있던 것은 아빠, 그리고 가족이었다.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이 의미 있고 즐거운 법.
나는 누군가의 ‘여행’을 위해 어떤 일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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