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면허 탈출하고 새로운 인생 시작

마음속 편견을 극복하고 정말 새로운 시야를 얻은 '운전연수' 강추!

by 제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을 세월의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수와 행복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다. 행복은 도전에 직면해서 온몸으로 그 도전에 맞서고 위험을 감수하는 데서 온다. 당신이 진정으로 중시하는 것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죽은 거나 진배없다.”

_by 다이앤 프롤로브(Diane Frolov)_미국의 TV 작가이자 프로듀서.



첫 번째 운전연수, 역사적인 2018년 4월 25일


역사적인 날이다.

10년 전 해외취업에 필수조건이라 따둔 2종 오토 장롱면허에 청신호가 들어온 날. 첫 운전연수가 시작되었다. 어릴 때부터 좋지 않던 시력이라 ‘운전’에는 욕심이 없었다. 도전과 성취지향의 캐릭터로서 운전은 안 한다는 것에 물음표를 던진 사람들이 많았다. ‘위험’, ‘사고’,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지금까지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차단해왔다.


여섯 살 때부터 돋보기 같이 두꺼운 안경을 썼다고 한다. 어릴 때 아파트 2층에 살았는데 지나가는 남자를 볼 때마다 ‘아빠’라고 불러 처음에는 ‘바보’인 줄 알았단다. 그러다 주위에서 혹시 눈이 나빠서 그러는 게 아니냐며 안과검진을 권유했고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에 가서 매우 나쁜 시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 뒤부터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는 잠자리 안경을 쓰고 유치원에 갔다.


이런 나를 해방시켜 준 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끼게 된 ‘렌즈’이다. 처음에는 소프트 렌즈를 끼다 시력이 안 좋아 ‘하드렌즈’로 바꿨다. 딱딱한 하드렌즈를 끼고 뺄 때의 어려움과 가끔 먼지라도 들어가면 찢어질 것 같아 아프고 눈물이 났지만 나는 행복했다. 내 작은 얼굴에서 어마어마한 자리를 차지한 두꺼운 안경에서 구해줬기 때문에.


그렇게 10여 년을 렌즈생활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변신 전 후가 180도 다른 캐릭터가 나였다. 안경 자체가 워낙 두껍기 때문에 대학시절 M.T라고 가서 안경 쓴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안경 쓰기’ 일 정도로 말이다. 렌즈는 나에게 밝은 세상과 자신감을 가져다줬다.




렌즈삽입술, 시력교정을 하다


26살, 취업 후 10시간 이상 컴퓨터를 보는 업무에 한 달도 안돼 나는 백기를 들고 출, 퇴근길 빼고는 안경을 다시 쓰게 됐다. 도무지 건조한 눈에, 모니터를 응시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어쩔 수 없었다. 눈 좋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눈이 나쁘더라도 0.1 이상 덜 나쁜 사람을 부러워했다. 안경을 맞추면 압축, 초굴절, 등 고도난시와 고도근시 등 복합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이 좋아진다면 간도 쓸개도 빼줄 수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그리워하다 희소식을 듣게 됐다. 같은 사무실 여자 개발자도 눈이 어마어마하게 나빴는데 시력교정을 받은 뒤 새 인생을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개받은 안과에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 수술은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안내렌즈삽입술(ICL)’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비 논리적인 게, 인체에서 정말 중요한 ‘눈’에 대한 건데 큰 대학병원도 아니고 작은 중소 안과 한 곳의 의사 말을 듣고 결정한 게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중간에 회사 근처 일반 안과를 갔을 때 보수적인 의사가 이 수술에 대한 부작용 및 위험성을 경고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안경을 벗는다’는 것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의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의술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리니, 의사마다 입장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수술을 했다. 라식은 시력 자체가 해당이 안 됐고, 라섹은 가능은 하지만 시력이 나빠 금방 각막이 재생 해 재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라섹을 해도 안경을 쓰긴 써야 한다는 말에 나는 ICL을 선택했었다. 아뿔싸. 수술을 마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신입사원으로 월급 170만 원 정도를 받던 시절에 430만 원이라는 거액의 수술비를 들였기 때문은 아니다. 수 천 만원을 들여서라도 ‘안경을 벗을 수 있다면’ 나는 그 무엇도 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희망찬 상상이었다. ICL을 하게 되면 난시도 일부 교정이 돼 안경을 안 쓸 것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나는 수술 이후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한 시력교정’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바이옵틱스라는 추가적으로 라섹으로 난시를 잡는 방법과,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난시 안경을 써서 필요할 때 쓰는 법을.


건강염려증인 나로서 ICL을 선택한 것도 큰 용기를 낸 건데, 또다시 칼을 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대안은 ‘난시 안경’ 맞추기였다. 회사에 복귀하고 수술을 했는데 왜 다시 안경을 쓰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얼버무렸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을뿐더러 시력교정 이후에 불편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은 난시 안경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난시 안경이 없어도 보이는 부분이 생겼다. 그 뒤로 안경을 벗은 지 5년 여가 되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김윤아의 노래처럼, ICL이후 내 삶은 많이 달라졌다. ‘혈기’와 ‘에너지’ 빼 면 시체였던 나에게 가장 큰 제약이 ‘눈’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려다가도 “눈도 안 좋고 혹시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데…00할 수 없겠지.”라고 스스로 답안을 지워나갔다.



사실 불편함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눈 안에 뭔가를 넣는다는 것 자체가 생각만 해도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은가. 때론 건조함에, 어느 날은 이물감에, 눈이 뜨거워지는 느낌과 신경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 활발하고 무던하다고 평가받던 내가 예민해지기 시작한 건 아마도 이후였을 거다.


눈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수술 전 안내받은 2~3% 내외의 부작용인 백내장, 녹내장의 극심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 2~3%가 내가 안 될 보장이 어디 있으며, 언젠가는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 근심이 온몸을 휘감았다.



싱그러운 미소가 많았던 나는 어느덧 무표정의 시니컬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것이 시력교정이라는 논리적 상관관계는 없지만, 적어도 심리적 관계는 부정할 수 없다.



(나를 ICL 소개해준 개발자분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이 시력교정한 일이라고 했다. 이 또한 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며, 나 또한 기존에 아침에 일어나서 안경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전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진 거다. 오죽하면 정기검진 갈 때 의사 선생님이, 이제 시력 교정한 지 9년도 넘었으니 한 거에 대해서 후회 안 해도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약간의 불안증, 염려증, 민감성을 가진 나는 이러한 느낌들을 가져왔지만, 어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다. 도전적인 내가 지금까지 ‘운전’에 대한 욕구가 없던 이유는. 밤에는 더욱 보기가 불편하기에, 이 상태에서 운전은 위험한 것이며, 나에게는 좋지 않다는 사실 하나로. 난시 안경을 쓰지 않으면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운전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안경’을 다시 맞추고 운전하면 되지 않냐고 누군가는 물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았다.


거금을 들여서 안경을 안 쓰려고 시력교정을 했는데, 또다시 안경을 써야 한다는 그 사실이 말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비 논리적이고, 감정적인 과대망상인걸, 오늘 운전연수를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운전 잘하시는데 일찍 시작하셨으면 지금쯤 정말 잘하셨겠어요.”



오늘 처음 만난, 운전연수 선생님이 한 말이다.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감각은 살아있었던지 10년 만에 만진 차의 시동, 핸들이었지만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과 연습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출발 전 핸들은 꺾어서 돌리는 게 아니라고 주의를 받았지만, 돌아올 때쯤에는 무의식적으로 상황에서 빛의 속도로 핸들을 휘감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연신 감탄했다. “오, 아.. 와우…. 놀랬어요.”


두려웠다. 운전연수를 처음 받는 그 시간 동안에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근심은 성수 이마트를 찍고 돌아오는 길에 눈 녹듯 사라졌다. 아….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지금에서야 했을까. SUV차에 타서 높은 곳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뻥 뚫린 기분이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이틀 뒤 두 번째 시간이 기다려진다. ‘나’는 없어진 게 아니었다. 다만 잠들어있었을 뿐.




두 번째 운전연수, 내가 달리는 이 도로가 자유로라니!

▷사진설명_연애시절 자주 가던 '일산'을 직접 운전해서 가보니 색달랐다.


오늘은 자유로를 타고 일산을 다녀왔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세계가 주목한 하루지만, 나에겐 일산 자유로가 더 기념비적인 날이다. 일산, 그곳은 어디던가. 2011년, 불 같은 11개월의 연애 동안 불나게 들락날락하던 곳 아니던가. 남편이 일산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라, 퇴근 후 숙대입구까지 주 5일 ~6일 정도를 차를 타고 달려왔었다. 한 달 평균 70~80만 원의 기름값을 들여가며 오고 간 그곳. 바로 ‘일산’이다. 파주 헤이리 마을을 좋아해 종종 갔다 왔어서 익숙한 길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고정석이던 오른쪽 조수석이 아닌, 왼쪽 운전석이라는 사실.


두 번째 연수길에 자유로를 타고 달리니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졌다. 베테랑 강사 선생님의 지도하에 점점 긴장을 풀고 농담도 하며 쭉 앞만 보고 달렸다. ’한 놈만 잡겠다’는 것처럼 내 앞 차선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직진, 또 직진. 운전을 하고 있으면서도 운전을 하는 게 ‘나’인지, ‘내가 아닌지’ 분간이 안 갔다. 신기하다. 자주 오, 가던 이 길을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가다니.


때마침 오늘은 역사적인 남, 북 정상회담 시간이라 방송사들의 중계 경쟁이 치열하다. 들려오는 동일한 멘트는 북학은 협상을 할 때 ‘주도권’이 본인들이 쥔다는 점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조수석에 타면서 나는 ‘운전’에는 문외한, 전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 사람뿐이었다. 운전석에 탄 사람에게 내 몸을 맡겼다. 목적지도, 가는 방법도, 운전 스타일도 운전자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한 마디로 ‘수동적’이라는 말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그 사실에 오늘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주도권, 누가 쥐고 있는가


“그동안 왜 내가 주도권을 가질 생각을 안 했지?’


운전을 미리 했더라면, 목적지, 가는 길, 운전 스타일, 배경 음악 등 내가 모든 것을 세팅하고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껏 운전은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그저 몸을 실었을 뿐이다. 길이 막혀도, 운전자가 예민해도, 뺑뺑이를 돌아도 할 말이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까.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니 ‘내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역시 ‘그 자리’에 직접 앉아봐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그 말이 정답이다. 단지 자리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나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바라보는 시야, 사고방식, 자신감 등…


보행자 모드 일 때는 내 앞에 차가 지나가면 노려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놔, 사람 나고 차 났지 안 설래…”


그러나, 오늘 운전자 모드로 전환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가는 거 안 보이나 정말…’


화장실 들어가고 나오고 달라진다더니 입장 차가 바뀌니까 관점 자체가 달라진다. 재미있다.



인생 사는데도 그렇고 사회생활에도 그렇고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운전도 마찬가지다. 나는 앞으로 되도록이면 ‘운전석’에 앉고 싶다.




세 번째 운전연수, 비 오는 날, 북악 스카이웨이로!

▷사진설명_이 근처 남편 직장이 있는데 신기했다.


오늘은 세 번째 운전연수가 있는 날이다. 아침에 분주히 유치원 등원 준비하고 아침 먹고 연수길에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는 구불구불 길의 대명사로 핸들 연습이 잘 된다는 '북악 스카이웨이'. 시댁이 있는 삼선교 근처라 비교적 자주 다닌 길이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내 자리는 앞 쪽 조수석, 아들이 태어난 뒤는 뒤 쪽이 고정 자석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운전석에 앉아있다.


지난주에 일산을 자유로 타고 다녀온 것도 사실 실감 나지 않는다. 옆 자리에 강사 선생님이 앉아 있으면 기운이 아는데, 연수 이후 혼자서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면 답이 잘 안 나온다. 강사 선생님을 만나서, 차를 좀 앞으로 빼라고 해 운전석에 앉았다.


남편이 세팅해 놓은 자리에서 의자를 앞으로 최대한 당기고, 높이도 최대한 위로 조절한다. 내 사이즈에 맞게 자리 세팅을 한 뒤 시동을 꽂았다. 계기판에 켜지고 음악도 잘 나오는데 D로 맞춰서 액셀을 밟는데도 앞으로 안 나간다. 어, 뭐지?. 강사 선생님이 보더니 “시동을 세게 걸으셔야죠, 지금은 시동이 안 걸린 거예요.”라고 한 마디 하신다. 기계치라 생각한 나는 잠시 작아졌지만 이내 기운을 차린다.


비가 와서 그런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느낌이다. 비 오는 날 ‘첫 운전’이라는 생각이 미리 작용한 걸지도 모른다.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출발! 시내 운전은 확실히 자유로 보단 어려웠다. 불과 내 생에 세 번째 운전이지만 코스가 다르니 매번 새롭다. 사실,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돌리면서도 내가 지금 운전하는 게 실제가 맞는지 실감 나지 않는다. 긴장모드로 바짝 굳은 어깨가 서서히 내려간다.


운전은 성격 따라가고, 운전할 때 성격이 보인다고들 한다. 내가 강사님께 들었던 피드백은 핸들을 급격히 꺾는 것, 급격히 액셀을 밟는 것, 위기상황이 올 때 핸들 꺾는 모습을 보고 한 소리다. 운동신경이 좋은 것 같다고 하는 말에 슬며시 웃었다.


오르막을 운전할 때는 마치 내가 미끄러질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높은 곳을 차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는 게 ‘나’인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날씨가 흐려 차량이 많지 않아 구불구불 핸들링만 신경을 쓰며 북악 스카이웨이로 향했다. 높아질수록 구름이 보이고, 비가 살짝 오면서 경치가 보였다. 운전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데 아름다운 경치를 보니 조금 위안을 얻었다.



“아, 운전을 스스로 할 수 있으면 내 맘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구나. “



울적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혼자 차를 몰고 한 바퀴 돌고 오면, 참 좋을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번 ‘갭이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스스로 만든 편견의 감옥에 갇혀서 운전은 60까지 엄두도 못 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이 변화가 참 좋다. 약간의 두려움과 조급함도 가끔씩 몰려오지만, 뭔가 다른 방향의 인생을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변화는 그래서 좋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는 가고 있기에.


그 방향이 옳고 그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전에 가지 않던 방향을 경험했다는 사실 자체가 인생의 자산이 될 수 있기에. 의심하지 않고 쭉 가보려고 한다.


연수가 끝난 뒤 스스로 운전을 하다 보면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겠지. 때론 사고가 날 수도 있으며 운전자와 시비가 붙을 수도 있겠다. 그럴 때마다, 오늘 바라본 풍경을 마음속으로 떠올려보자.




네 번째 운전연수, ‘하남’ 가기 딱 좋은 날!

▷사진설명_'하남 스타필드', 언젠가 차 끌고 직접 다녀오리라~


네 번째 운전연수시간, 오늘의 목적지는 ‘하남 스타필드’다. 늘 남편의 옆자리에서 대충 잠실을 지나서, 미사리 쪽으로 빠진 뒤, 남양주까지 간 것 같다.


‘같다’라는 단어는 ‘내 관심 밖’의 일이라 크게 개의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 번째 연수에 비를 뚫고 북악 스카이웨이를 다녀왔는데 오늘은 ‘하남’ 가기 딱 좋은 날씨다. 여름휴가를 가야 할 것 같은 따가운 햇살, 쾌청한 바람, 이거 이거 날 잡았다. 비록 애인은 아니지만, 잘 알려주시는 우리 강사님과 함께 하남을 향해 고고고!!


첫날, 성수 이마트 한 번 갔다 오는 것도 부들부들 덜덜덜 했는데, 오늘도 그쪽 길로 향하다 올림픽 대로를 타기 위해 빠졌다. ‘길’에 별 관심 없던 나는 그간 들었던 ‘교통방송’과 ‘날씨’는 남의 일이었다. 운전연수를 하기 전 까지는.


나는 수다스럽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많다. 오늘도 하남 가는 길에 강사님께 이것저것 물어본다. 이 도로가 강변도로냐, 올림픽 대로는 김포 가는 쪽 아니냐, 신호등은 앞 쪽을 봐야 하냐, 뒤 쪽을 봐야 하냐, 초보 운전자 일 때 가장 사고 많이 나는 케이스는 뭐냐…등등…. 한 번에 100분가량 파트너십을 맞추다 보니, 안면 튼 지 얼마 안 된 강사님께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운전이 재미있다. 난시 안경을 맞추기 전까지 엄두도 못 냈었는데, 처음 차를 끌고 도로로 나갔을 때만 해도 잔뜩 움츠린 어깨가 바짝 긴장해있었다. 지금도 출발에는 조금 긴장모드이지만, 도로 위에 올라가면 자유롭게 몸이 반응한다. 이거, 정말 신기하다. 생각해보면 거의 9년, 10년 만에 핸들을 잡는데(면허를 딴 게 2009년) 머뭇거리다 몇 번 해보니 세포 속에서 잠들던 어떤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삶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잘 풀리는 구간, 질질거리고 바짝 엎드리는 구간, 그러다 다시 상승하는 구간 등 굴곡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세월 속 날 선 감각이 아직 살아있다는 게 참으로 반가웠다. 나 또한, 나뒹굴고 지질함에 넘어졌을 때도 있지만, '회복탄력성'을 발휘해 다시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다.



운전하는 도중 강사님이 자주 말한 단어 ‘통제’.

<우아함의 기술> 책에도 나와 있듯이 주도권을 스스로 쥐고 있으며 상황을 컨트롤하는 게 우아함의 기본이다. 운전 또한 마찬가지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상황을 판단하고 통제한다. 수동적인 반응이 아닌 ‘주도적’ 행위다. 그래서 운전을 하는 자체가 자신감과 뭔지 뭐를 동기부여를 준다. 목적지를 정하고 내 차선을 보고 내가 가는 곳, 교통 상황, 등을 스스로 판단한다. 옆의 차선 보고, 어쭙잖게 뒷 차 배려한다고 봐주고 하다 골로 간다. 운전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생 교훈을 얻는다.



좀 더 빨리 운전을 했어야 하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법.



마지막 시간은 ‘주차’ 연습이다. 주행은 감이 좀 오고 이제 주차까지 정복되면 삶의 질이 많이 나아질 것 같다.(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이 늘어나겠지만.)




다섯 번째 운전연수, 주차에서 급 위축됨


마지막 연수는 주차 연습. 그제 곤지암에서 집에 올 때 남편이 옆에 앉고 내가 운전을 했다. 그때도 잘 왔기에 자신감 업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늘 주차 이후 물에 빠진 생쥐처럼 위축됐다. 자신감 급 하락.. 뭔가 100분 동안 배우긴 했는데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마지막 지상 주차할 때 옆에 있는 차를 스친 것도 같은 마음에 급 자신감이 저하됐다. 과연 모든 연수가 끝났는데 잘할 수 있을까.... 우쭐했던 자만심은 삼일천하처럼 작아진 가슴으로 남았다.



한번 위축된 마음은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운전연수의 여파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이는 먹었는데 세상이 낯설다. 위축된 감정은 한 번 느껴지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고, 더 부정적인 사건과 상황을 떠올리며 스토리를 쓴다. 그러다가 결국 나자빠진다. 악순환의 패턴, 위축된 마음의 확장.



그러던 중, 다음 날 최재호 코치님을 만났다. 최재호 코치님은 30여 년간 기업에서 임원 및 CE0로 활동하시다 은퇴 후 경영자 코치로 활동 중이신 에너지가 대단하신 분이다. 마지막 회사에서 알게 된 분으로 늘 배울 점이 많다.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나누며 어제 있던 주차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좋은 TIP을 배웠다.



어떤 상황에서 가지치기하며 부정적으로 확장되는 건, 그 자체 과정을 즐기지 못에 있다. 또한 ‘감당’ 하기 싫은 얄팍한 마음에서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코치님도 위축되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연습'하는 팁을 알려주셨다. 앞으로도 통제하지 못한 사건 사고가 있겠고, 흔들리는 감정을 만날 때가 있을 텐데 그때마다 아래 내용들을 마음속에서 떠올리며 심호흡을 해야겠다.


* [생활 속 연습 TIP]

1) 과정 즐기기
2) 매사에 충실하기
3) 균형 잡기

_by 최재호 코치님
* [부정적 감정 벗어나는 TIP]

-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감당하고 대안 찾기.
- 내가 뭘 감당할 수 있을까.

_by 최재호 코치님


(운전연수는 올해 5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운전을 종종하고 있습니다. 주행은 자신감이 생겼지만, 주차는 아직도 정확히 파악이 안 돼 지상주차장에만 세워두고 지하는 못 내려가고 있답니다 ㅎㅎ 그러나, 제 인생에서 올해 가장 잘 한 일을 뽑자면 '운전연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랜 기간 제 안에 가득했던 '편견'이 그저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 또한 마음속 깊이 자리한 그 '두려움과 편견'을 이겨내 '무언가 시도'한다면 정말 다른 시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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