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4박 5일 제주여행

다시 간다면 떠들썩한 게스트하우스에 가리라~~

by 제니
놀라운 것은, 우리가 노인들에게 더 많은 통제력을 주고 더욱 자립적으로 생활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자 가족들과 노인 자신들이 고의적이지는 않아도 상당한 저항을 보였다는 점이다.

사람은 도움을 받을수록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라 하더라도 보호는 자율성을 서서히 훼손한다.

예전에 자기가 하던 행동을 다른 사람이 해줄 때 우리는 이제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느낀다.

뭔가를 하려는 의지가 좌절될 때 사람의 마음은 위축되어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바라게 된다.

_by 엘렌 랭어 book <마음챙김> 中
20180731_135805.jpg "햇볕은 감미롭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힘을 돋우며, 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가 있을 뿐." _by 존 러스킨



나 홀로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다


8년 전, 첫 직장 이직을 앞두고 홀로 올레길을 걸었던 제주도. 그 제주도에 나 홀로 두 번째 방문이다. 8년 전과 비해 달라진 건, 남편과 아이가 생긴 무직이라는 정도. 그때도 이직을 앞두고 해방감과 두려움 사이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태풍이 오는 저녁 날,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고 왔다. 올레길을 걸으면 답답함이 해소될까 하는 기대감과, 새로운 직장 출근을 앞두고 재충전을 위해서 왔었다.

그때 여정을 회상하며, ‘산방산 게스트하우스’에 썼던 글귀가 생각난다.


“새 출발 위해.”

61661_441368425016_4155231_n.jpg ▷사진설명: 2010년, 산방산게스트하우스 에서 쓴 글.



‘천지연 폭포’… 연애 때 남편과 제주도로 여행을 왔을 때 함께했던 곳이다. 아이 낳고 삶이 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사네 못 사네 했는데, 서울과 제주, 이렇게 떨어져 있어서 나 혼자 있어보니 일상 속 소중한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내 꿈을 빼앗아가고, 희생을 강요하고, ‘나’로서 존재하는 걸 방해한다고 여긴 나의 아들. 오늘따라 그 아들이 너무 그립다.


아직도 ‘미해결 과제’를 안고서 끙끙거리는 나 자신이 답답하다가도, 이번 여행을 통해 지난 찌꺼기들을 훌훌 털고 내려가기로 다짐한다. 친정 부모님이 일주일 간 봐주시는데, 영상통화를 하니 샤워 중이었고 “엄마, 네 밤 자면 오는 거죠?”라는 말에 울컥한다.

그렇게 띠어놓고 왔는데, 나는 숙소에서 ‘나 혼자 산다’를 보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면 정말 신날 줄 알았는데, 이제 내 ‘일상’ 속에는 ‘가족’이 있어야 존재가치가 있나 보다. 그걸 망각하고 있었다.


마치, 엄마가 되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걸로 알아서 겁이 났다. 아내가 된다는 것 또한 나 자신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그 어떤 의미가 있다고 나는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나’ 자신으로서 살려고 그토록 애써왔는가. 어떤 결핍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는가.



아름다운 풍경 속 자유로움은 약간의 쓸쓸함으로 자리 잡았다. 독립하고 싶다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들 ‘의존’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사는 거라는 걸, 멀리 제주에 와서 느껴진다.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되, 인간으로서 어느 정도의 의존성도 인정해야 함을, 조화롭게 살아야 함을.

20180730_171243.jpg ▷사진설명: 천지연 폭포. 홀로 온 건 나뿐인것 같아서 사진도 몇 장 안 찍었다 ㅎㅎ



시작은 두려움의 연속


오늘은 그린카를 빌려서 자동차 여행을 하는 날이다. 전날까지 건초염 등으로 취소를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좋다. 정말 좋다. 이번만큼은 남편 말 듣기를 잘했다.


그린카 픽업 장소로 택시 타고 이동해 번호표로 겨우 찾았다. 여차여차해 지난주 예행연습 한 기억을 더듬어 차를 살피고 시동을 켰다. ‘본태박물관’ 목적지를 입력하고 달리는데 자꾸만 ‘띵 띵 띵’ 소리가 나는 거다. 뭐지, 다 괜찮은 거 같은데……잠깐 차를 세워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사이드 풀었냐고 해보니 그대로다. 사이드를 내리고 다시 달렸다. 조금 찝찝한 게, 계기판에는 기름이 가득처럼 차있는데 내비게이션에서는 자꾸만 “기름이 0%니 주유를 하라’고 메시지가 계속 나왔다. 가뜩이나 기계치에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어버버 하는데 날씨는 더워서 땀이 줄줄…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달렸다. 내 눈 앞에 보이는 탁 트인 시야, 파란 하늘, 구름, 야자수…. 제주에서의 드라이브는 언제나 옳구나. 정말 어제까지 땡볕에 걸어 다니고 한 것도 재미있긴 했지만, 오늘이 정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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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그린카로 본태뮤지엄을 향해 무작정 출발했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속 자유로움과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면허 취득한 지 9년이 넘었기에 차를 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제 갱신을 할 시점인데 초보라니… 하얀 모닝과 함께할 1박 2일이 정말 기대된다. 30분 정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8년 전, 이직을 앞두고 제주를 와서는 올레길을 걸었다.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운전을 하고 있다.


사실 퇴사하지 않고 ‘갭이어 프로젝트’를 안 했더라면, 평생 죽기 전까지 운전을 못했을 거다. 내 안에는 00라는 편견이 크게 자리 잡았으니까. 그 편견을 이겨내고 5월에 연수한 게, 오늘 이 여행에 이렇게 큰 도움이 되다니… 쓸데없는 것으로 보여도 언젠가 쓸모 있는 때가 있다. 일상을 충실히 살자.

20180801_115822.jpg ▷사진설명: 본태뮤지엄...볼 것도 느낄 것도 많았던 곳, 추천합니다!


본태 박물관… 맑은 하늘, 자연, 작품, 건축,,,,,최고다. 인터넷 평에서 건축은 볼만한데 작품은 볼 게 없다고 해 큰 기대를 안 했다. 간혹 좋다고 한 리뷰도 있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인가, 최근 미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한 게 시야를 넓혔나 보다.


심플, 회색 빛 노출 콘크리트의 부드러운 질감, 하늘, 햇살, 통 유리, 음악…. 정말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행복한 부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멋진 건축물을 보니 ‘힘이 되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로, 1관에서 나온 영상 중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조화(현대미술과 전통적인 것의 조화)

외부도 하나의 공간으로 본다.

현대미술을 모르겠다는 그 생각이 남아 있는 게 중요하다.

“주거란, 그곳에서 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째 목적지는 ‘카멜리아 힐(Camellia Hill)’이다. 웬만한 수목원은 이미 다녀왔고 멀어서, 가까우면서 안 가본 곳을 가고 싶었다. 적격지는 바로 ‘카멜리아 힐’. 이번 제주에 처음 알게 됐는데 푸른빛 수국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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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다음에 제주도에 간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



이번 나 홀로 여행은 되도록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 순간 눈에 담고 경험하자는 목표를 세웠다.(혼자라 블루투스 셀카봉도 한계가 있고…. 살도 찌고…ㅎ) 그런데 이곳에서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대다수가 커플, 아니면 가족, 아니면 친구들끼리 아름다운 뷰포인트에서 찰칵, 찰칵, 찰칵. 나 또한 여행을 다녀오면 정리하지도 못한 수많은 사진이 쌓이는데도 여행을 온 건지, 사진을 찍으러 온 건지 모를 지경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좌우명이 있어, 순간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인스타그램에 바로바로 업데이트를 한다. 나는 여행을 온 것인가, 또 다른 일과를 하러 온 것인가.


사실, 주위를 둘러보니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 속 작은 화면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맞긴 하는데, ‘그 순간 느낀 경험’은 사진 속 프레임을 뛰어넘는다. 청명한 하늘, 새하얀 구름, 가만히 들려오는 새소리까지…이 곳은 정녕 지상낙원인가.


홀로 오니 그리워지는 남편, 아들, 다음에 부모님 모시고 꼭 한번 다시 오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한치 물회를 먹고 예약한 마사지 샾에 갔다. 경로를 이탈해 몇 번을 다시 유턴, 좌회전해서 겨우 근처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아로마 전신 90분 마사지를 받았는데 받고 나서 느낀 건 ‘만신창이 몸’이라는 거. 뭘 그렇게 해보겠다고 연골들이 달아서 뚝뚝 소리가 나고, 뭘 그렇게 써보겠다고 일자 목에, 일자 어깨, 터널 증후군인지 건초염인지… 순간 아들이 생각나고, 남편이 생각났다.


‘나를 찾기 위해 나 홀로 여행’을 왔는데, 여행을 하면 할수록 명확해진다. ‘내 가족이 정말 소중하고, 그 안에서의 최선의 삶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저녁 9시 30분이 지나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밤 운전은 거의 처음인데 모닝은 또 처음이라… 전조등을 켜야 하는데 어떻게 키는지 몰라 어둠 속에서 운전했다. 큰 대로변은 괜찮았는데 또다시 경로를 이탈해 유턴한 이후 갑자기 내비게이션 컴컴한 사잇길을 안내해줬다. 너무 무서워 양쪽 깜빡이 비상등을 켜고 잠시 멈춰 남편에게 전화했다. 어떻게 키는 건지 물어 물어 겨우 도착.(사고 안 난 게 정말 다행이다 ㅎㅎ)


숙소로 돌아와 절친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무사히 숙소에 돌아왔다고… 조금 뒤 온 한 줄의 메시지가 오늘 하루를 설명해줬다.

“뭐든 해보면 자신감이지.”

20180802_120821.jpg ▷사진설명: 카페 바다다, 정말 뷰가 아름다웠다. 제주 중문쪽에 있다면 꼭 가보길!!



나 혼자 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를 그렇게 갈구했는데, 막상 25평가량의 깨끗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혼자 있으니… 혹시 도둑이 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4박 5일간 새벽 4~6시 사이에 잠들었다. 새벽 3시까지는 티비 케이블을 틀어놓고 있다가, 방에 누워서는 이어폰으로 ccm을 들었다. 모태신앙인 나는 이럴 때만 신실해진다.(마음속으로 안전하게 지켜달라는 기도도 계속했다.)


사실, 만 ‘서른넷’ 동안 ‘온전히 혼자’ 살아본 적은 없다. 일생일대 1년 자취를 했을 때도 ‘하우스 메이트’가 있었고, 주말마다 부모님 집으로 갔다. 거의 부모님과 살거나 지금의 남편과 살아왔다.

‘타인’과 동거하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 그간 ‘자유’를 갈망했으나 여행에서 느낀 ‘두려움’과 ‘허전함’은 ‘나 혼자 산다’가 로망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해 줬다.



mbc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케이블에서 계속 봤다. 무지개 회원들끼리 똘똘 뭉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허전함과 외로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크게 생각해보니, 인간 자체는 홀로 서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상호의존적 존재'다.



‘나’로서 온전히 바로서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미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기에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인식도 필요하겠다.





‘자유’의 이면에는 감내해야 할 여러 가지가 있다


에어비앤비로 4박 5일을 지냈다. 혼자 자유롭게 먹고, 자고, 티비보고 하면서도 분리수거, 청소를 했다. 평소 당연히 여긴 것들을 혼자 하며, ‘당연한 건 없다’가 와 닿았다.


친정부모님이 아들을 봐주셔서, 이 시간에 jeju에 올 수 있었고, 2년여간 고군분투하며 일했기에, ‘자금’을 확보해서 올 수 있었다. 평소 분리수거 담당은 남편이었으나, 퇴실 전 몸소 분리수거를 했고, 그린카 픽업과 반납 등 직접 찾아가서 빌리고 해결했다.


그간 ‘대행’했던 것들을 혼자 해보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지만, 귀찮고 피곤한 면도 있었다. 위기상황 시 당황할 때마다 도움을 받았고 홀가분하다가도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다. 가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는 갖고 있는 것보다는 '갖지 않은 면'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경향이 있다.




고독한 여행을 통해, 갖고 있는 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한 순간 고통은 힘을 잃었어요.
왜냐하면 남은 것이 잃어버린 것보다, 아주 훨씬 더 많았거든요."

ㅡby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中


에너지 넘치는 아들이 이렇게 보고 싶을지는 몰랐다. 제주에 오기 전, 홀가분함에 비명을 지를 줄 알았는데, 웬걸. 오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아들’이었다.


아… 내가 부인하고 버거워했지만 뼛속까지 난 이미 ‘엄마’였구나. 그랬구나… 스스로가 ‘부족한 엄마’라는 틀을 씌우고 자가평가를 끊임없이 했지만, 이미 난 ‘충분한 엄마’였다.


수, 목 tv'n에서 새로 방영한 ‘아는 와이프’를 봤다. 어쩜 저렇게 리얼한지… 와이프가 바뀌는 장면에선 ‘남편’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출산 이후 많은 갈등과 싸움 속 포기와 짜증 사이를 오가던 부부 사이. 그런데 이곳에 오니 참 허전했다.


원수 악수 싸우고 난리 쳤지만, 그럴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구나… 독설을 퍼붓더라도 옆에 누군가 있고, 그 대상과 오랜 시간 함께한다는 건 무의미한 게 아니라는 거,


최근 엄마의 친한 친구분 남편 분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평소 사이가 크게 좋지도 않은 건조한 관계였기에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옆에 없는 허전함이 엄청나다는 말이 생각났다. ‘악처’가 소크라테스를 만들었지만, ‘악처’ 덕분에 소크라테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겠다.


지금까지 '당연하고 귀찮아한 것'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다. 꽤 비싼 돈 주고 깨달은 거지만, 남은 인생에서 귀한 '자산'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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