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일요일이다. 오전 11시에 성당미사를 간다. 몇 없는 유학생들로 꾸려진 성당 성가대에서는 나 같은 음대 지망생들은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미 현지 음악대학에 합격한 정식 학생들과는 좀 차이가 있겠지만 오후에 친구와 다니는 개신교회의 성가대와는 좀 다르다. 기대가 크니 동기부여가 된다. 과연, 그렇다. 오후 2시에 도착한 교회 예배는 철저하게 친구와의 관계로 간다. 어떤 곳이든 일단은 하느님은 있으려니 한다. 신은 어디든 있다고들 하지 않나.
오늘은 교회 성가대들이 예배 후 교포 권사님 댁에서 모여 식사를 한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직 교회의 성가대는 아니다. 이제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성당과는 다르게 이곳의 성가대원은 이미 꽉 차 있고 무엇보다 난 이곳에서 성가대를 할 생각이 없다. 친구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시험 준비하며 성당 성가대 악보 외우기도 버겁다. 교회 성가대 관계자가 불러 주지도 않는다. 오늘은 교회 예배 후에 그냥 혼자 기숙사로 가려는데 이미 나와 친분이 생긴 성가대 또래들이 같이 가자고 한다. 혼자 밥 먹을 내 모습이 측은 했으려나. 친구는 그냥 맘대로 하라 했지만 불타는 이타심으로 가득 찬 일부 성가대원들의 권유에 난 거의 끌려간다. 나는 성가대원이 아니라고! 나는 불청객의 신분을 정말 싫어한다고! 너무나 복잡한 교통을 거쳐서 겨우 도착한 그 커다란 권사님 댁은 잔치가 벌어져 있었다. 그곳은 풍성한 한국식 먹거리와 많은 교포 어른들도 즐비했다. 아름다운 친교의 현장. 다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버려진 나는 한 구석 식탁에 덩그러니 머문다. 식사 준비로 바쁜 그 순간 나를 발견한 권사님이 나에게 오신다. 농담이라도 하면서 친절을 베푸시려고 오는가. ‘성가대도 아닌데 왜 오셨어요?’ 웃으면서 얘기하는 건 나쁜 말은 아닐 거야. 대답으로 눈웃음을 드리고 바쁜 사람들을 뒤에 두고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정원이 넓은 집을 나온다.
어제 나와 신나게 데낄라 30잔을 나눠 마신 미국 교포 출신인 천재 물리학도 동생이 뒤에서 부른다. ‘형. 그렇다고 가냐.’ 한국말이 서툰 귀여운 말투로 무거운 말을 들으니 비현실적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상황을 관찰한 눈치가 빠른 녀석에게는 씩 웃고 나선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교통 지식으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 진땀이 난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이솝우화의 ‘늑대와 두루미’ 편이 계속 생각이 난다. 친절의 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