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8 설계

[2부. 기계의 눈]

by 새보음

Ch.8 설계



도면 없이 설계한다는 것.



건축가는 도면을, 엔지니어는 회로도를, 신경공학자는 뇌의 배선도를 그린다. 모든 설계의 시작은 시각적이다. 종이 위에, 화면 위에, 눈앞에 펼쳐지는 선과 기호. 나는 7년간 공간 디스플레이 앞에 서서 뉴런의 경로를 그렸다. 프로젝터가 켜질 때의 미세한 오존 냄새. 허공에 손끝을 움직이면 빛의 선이 따라오던 감각. 색을 바꿔가며 파란색이 주경로, 빨간색이 억제 경로, 초록색이 가능성의 경로. 빛으로 그린 배선도들.



나는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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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년 1월. IRIS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달.


CORTEX 본사. 사고 전에는 매일 1층 로비의 유리벽을 지나쳤다. 캘리포니아의 빛이 그 유리를 통과하며 바닥에 무늬를 만들었다. 지금은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 손목의 사원증이 게이트에 닿는 전자음. 에어컨의 미세한 진동. 로비의 대리석 바닥이 구두 굽에 전달하는 차갑고 단단한 울림. 엘리베이터까지 32보.


나는 이 건물을 새로 배우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닥터 태드."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같은 목소리가 왼쪽에서 왔다. 루이스. 로비 경비 요원. 이름은 Aria가 알려주었고, 목소리로 먼저 기억했다. 낮고 안정적인 바리톤. 말의 끝이 약간 올라가는 남부 억양. 사고 전에는 그를 의식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로비를 지나치며 유리벽의 빛만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의 인사가 건물의 첫 번째 좌표였다. 루이스의 목소리가 들리면 엘리베이터가 오른쪽 11시 방향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아침이야, 루이스."


매일 같은 교환. 그가 나를 위해 바꾸는 것은 없었다. 문을 열어주거나, 팔을 잡거나, 방향을 알려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인사를 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톤으로. 그 일관성이 지팡이 없이 걷기 시작한 발에 바닥을 주었다.


연구실은 2층. 복도에서 소독제와 납땜 플럭스 냄새가 섞여 나왔다. 그 아래 전자기기의 미세한 열 냄새. 이 냄새가 내 영역이었다. 7년간 이 냄새 속에서 일했다. 눈으로 실험 장비를 확인하고, 화면의 데이터를 읽고, 팀원들의 표정을 살피며.


지금은 소리로.


"달시, 여기요."


아르티스의 목소리. 복도 끝. 내 연구실 문 앞.


아르티스는 내가 복도에 들어서면 매번 자기 위치를 알려주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당연한 매너라고 했다.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거예요. 예의가 아니라 효율이에요." 나는 이것이 예의라는 것을 알았지만, 효율이라는 프레임이 더 받아들이기 쉬웠다.


"프로토타입 하우징 시제품이 도착했어요."


"어디?"


"당신 왼손 11시 방향."


테이블 위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금속의 차가운 곡면에 닿았다. 곡률이 균일했다. 무게 가벼웠다. 120그램 이하. 가장자리에서 3D 프린팅의 미세한 층 경계가 손끝에 느껴졌다. 첫 번째 하우징. IRIS의 외부 장치를 담을 케이스의 프로토타입.


두 달 전, 나는 이 하우징의 형태를 구술로 설계했다. 눈으로 그리던 사람이 입으로 그려야 하는 작업이었다. "전두부에서 측두부까지 호를 그리는 곡면." 말하면서 손이 허공에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형태를. 리사가 물었다. "호의 곡률이 어느 정도예요?" 나는 답하려다 멈추었다. 곡률을 말로 설명하는 것. 혀가 꼬이는 경험이었다. 혀로 곡선의 반지름을 재는 일. 눈이 하던 일을 입이 물려받았는데, 상속 절차가 순탄하지 않았다. 손으로는 3초면 그릴 수 있는 곡선을 말로는 30초가 필요했다. "두개골의 곡률에 맞추되, 접촉점은 세 곳. 전두골 좌우와 두정골 중앙. 무게는 150그램 미만." 리사 왕이 이것을 CAD로 변환했다.


어둠 속에서 손으로 집을 배운 것처럼, 나는 입으로 기계를 그리고 있었다. 내 손이 느끼는 것이 내 설계의 언어가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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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S의 아키텍처를 설명한다.


기존의 시각 BCI는 모두 같은 접근법이었다. 카메라 → 이미지 처리 → 전기 자극 → V1(일차 시각피질). 눈을 카메라로 대체하고, V1을 자극하여 '빛의 점'을 만드는 것. 하지만 V1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은 한정적이었다. 최선의 결과가 저해상도 흑백. 60×60 픽셀 수준. 2041년 현재, 어떤 기업도 이 벽을 넘지 못했다.


나의 V1은 60% 괴사했다. 이 접근법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돌파구였다.


IRIS는 V1을 우회한다. 외부 카메라가 환경을 촬영하면, AI가 이 데이터를 뇌의 "내부 이미지 생성 언어"로 변환한다. 이 변환된 신호가 고차 시각피질(V2, V3, V4, V5)과 전두엽 시각 영역에 직접 전달된다. 뇌가 꿈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경로로. 뇌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자기가 만든 이미지'로 인식하게 하는 것.


핵심은 "뇌의 내부 이미지 생성 언어"를 해독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아르티스의 연구가 필수적인 이유다. 그녀가 15년간 연구한 것, 시각 없이 자란 뇌에서 시각피질이 다른 감각을 처리하도록 재배치되는 메커니즘. 이 재배치의 역방향을 이해하면, 뇌가 내부적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의 문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르티스는 이 문법의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 사전으로 번역기를 만들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뇌의 지도를 펼쳤다. 피질의 주름이 산맥처럼 솟아 있고, 신경 다발이 강처럼 흐르는 지형도. 이 풍경을 나는 눈이 아니라 숫자로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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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팀 회의.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참여자: 나, 아르티스, 리사 왕(CTO), 마이클 첸(신호처리), 사라 옐리네크(신경외과 자문), 제이슨 파크(AI/ML), 그리고 핵심 연구원 세 명.


리사가 들어올 때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소리가 났다. 마이클은 블랙커피 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앉았다. 긴장할 때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제이슨은 중요한 논의가 시작되기 전마다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는 소리를 냈다. 사라는 조용했다. 하지만 펜을 돌리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났다. 사라가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시각 없이 팀을 관리하는 법. 경영학 교과서에는 없는 항목이었다.


나는 회의실의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왼쪽에 아르티스. 오른쪽에 리사. 이 배치는 의도적이었다. 아르티스의 촉각 리딩 BCI가 보내는 미세한 진동음이 왼쪽 귀에서 일정한 배경음을 만들었고, 리사의 키보드 타이핑은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이 두 소리가 내 좌표계의 기준점이 되었다.


첫 번째 회의에서 커피를 엎질렀다. 오른쪽에 있다고 기억한 잔이 실제로는 2센티미터 더 먼 곳에 있었다. 손가락이 잔의 옆면을 쳤다. 넘어지는 소리. 액체가 테이블 위에 퍼지는 소리. 방이 조용해졌다. 2초. 리사가 뭔가로 닦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동정이었다. 나는 "다음 안건"이라고 말했다. 목소리가 단단했다. 일부러.


1월 14일 회의.


마이클이 말했다. "신호 변환율 문제가 있습니다. 카메라 데이터를 신경 신호로 변환할 때 지연 시간이 120밀리초 이상이에요. 자연 시각의 지연은 50밀리초 미만입니다."


"120밀리초." 나는 이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렸다. "병목이 어디야?"


"AI 변환 단계요. 카메라 이미지를 '뇌 내부 이미지 언어'로 번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


"아르티스."


"네."


"교차양상 재배치에서 뇌가 촉각 입력을 시각적 패턴으로 전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였지?"


아르티스가 잠시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할 때의 소리(의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나는 배우고 있었다.


"피험자에 따라 다르지만, 훈련된 선천성 시각장애인의 경우 50~80밀리초."


"그 경로가 V1을 거치지 않는 거지?"


"네. V1 우회 경로예요. 체감각피질에서 직접 고차 시각 영역으로."


"마이클, AI가 하려는 것과 아르티스의 피험자 뇌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이 같은 거야. AI가 카메라 데이터를 '번역'하는 대신, 아르티스의 뇌가 쓰는 경로의 패턴을 학습시켜. 번역이 아니라 모방."


키보드 소리가 빨라졌다. 마이클이 계산하고 있었다.


"가능할 수 있어요. 아르티스의 뇌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아르티스?"


"제 뇌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로 쓰겠다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에 질문이 있었다. 다른 종류의 질문이. 하지만 나는 그것을 놓쳤다. 그때는.


"맞아. 당신의 뇌가 37년간 만들어온 경로를 IRIS의 AI에게 가르치는 거야."


"알겠어요."


아르티스가 동의했다. 하지만 '알겠어요'의 톤이 이전 회의에서와 달랐다. 나는 표정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미세한 차이를 기록만 하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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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두 번째 장벽.


프로토타입 시뮬레이션 중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실험 동물의 뇌에 신호를 전달하는 테스트. 내가 들은 것은 소리뿐이었다. 장비가 바닥에 떨어지는 금속음. 사라의 짧은 탄성. 리사의 "전원 끄세요." 동물에게서 발작 반응이 나왔다. 연구실이 조용해졌다. 실패의 침묵은 성공의 침묵과 무게가 달랐다. 공기에 한 겹이 더 쌓이는 것 같았다.


2주간 설계를 전면 재검토했다. 내가 만든 것이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발작의 원인은 자극 패턴의 동기화 오류였다. 그리고 이 오류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른 접근법을 보았다.


신경 자극 프로브의 정밀도 문제. IRIS가 목표로 하는 해상도(HD급, 1920×1080)를 달성하려면 수십만 개의 독립적인 신경 채널이 필요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숫자.


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었다.


"수십만 채널이 필요한 건, 픽셀 단위로 자극하려고 하기 때문이야."


리사에게 말했다. 연구실에서. 3월의 어느 오후. 비가 오고 있었다.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


"맞아요."


"뇌는 픽셀 단위로 보지 않아."


"..."


"꿈을 생각해봐. 꿈에서 보이는 이미지 그건 픽셀로 구성된 게 아니잖아. 뇌는 '개념'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나무를 볼 때 V1이 경계선을 추출하고, V2가 텍스처를 분석하고, V4가 색을 처리하고, IT(하측두피질)가 '이것은 나무다'를 인식해. 하지만 꿈에서 나무를 볼 때는 IT가 '나무'라는 개념을 활성화하고, 상위에서 하위로 신호가 내려가면서 이미지가 생성돼. 탑다운."


리사의 호흡이 변했다. 이해의 순간. 숨이 한 번 얕아지는 것. 이전에는 이것을 표정으로 읽었다. 눈이 미세하게 넓어지는 것. 지금은 호흡으로.


"픽셀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개념을 자극하겠다는 거예요?"


"맞아. 수십만 채널이 아니라, 채널 조합의 활성 패턴으로 개념을 자극하는 거야. '나무', '얼굴', '움직임', '빛', '거리'. 뇌에서 이런 고차 개념은 하나의 뉴런이 아니라 수십 개 뉴런의 동시 활성 패턴이야. 이 패턴을 고차 시각피질에 주입하면, 뇌가 스스로 이미지를 조립해."


"뇌마다 '나무'를 표상하는 패턴이 다를 텐데."


"그래서 학습이 필요해. IRIS는 내 뇌에 맞춰 캘리브레이션해야 해. 하지만 아르티스의 데이터가 있잖아. 시각 없이 자란 뇌에서 개념이 어떻게 표상되는지의 기초 문법을."


리사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이러면 프로브 수를 줄일 수 있어요. 수십만이 아니라 천 개 이하로."


"512개."


"512..." 리사가 숫자를 반복했다. "급진적이에요."


"급진적인 게 아니라, 원래 뇌가 하는 방식이야. 우리가 그동안 카메라의 방식으로 뇌에게 말하려고 했던 거지. 뇌의 방식으로 말해야 해."


나는 이 아이디어에 확신이 있었다. 확신. 빛의 부재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이 감각.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를 파악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것. 이것이 내 방식이었다. 눈이 있든 없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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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작업을 나는 보지 못한 채 진행하고 있었다.


설계 문서를 쓸 수 없었다. 구술했다. 회로도를 그릴 수 없었다. 리사가 대신 그렸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볼 수 없었다. 마이클이 숫자를 읽어주었다.


이것이 나를 분노하게 했을까. 그때는 아니었다. 나는 분노를 효율의 문제로 치환했다. "시각 인터페이스 없이 일하는 건 20% 느려. 감수할 만해." 이것이 내 계산이었다.



진짜 분노는 다른 곳에서 왔다.



4월의 어느 날. Aria(내 개인 AI 비서)가 뉴스 브리핑을 읽어주었다.


"SenseJustice 시위 확산. 서울, 런던, 상파울루에서 동시 시위. '감각 빈부격차 해소법' 제정 촉구. 시위대 발언: '같은 세계에 살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다.'"


나는 이 뉴스를 들으면서 다음 항목으로 넘겼다.


"CORTEX 관련 뉴스. 이사회 보고서 유출. CORTEX의 IRIS 프로젝트가 시각 BCI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에 대한 분석. '감각 격차의 최상위 계층을 위한 기술'이라는 비판."


"다음."


"감각 부채(Sense Debt) 관련 뉴스. 감각 BCI 구독 만료 환자 인터뷰입니다."


목소리가 바뀌었다. 떨리는, 젊은 목소리. "구독을 끊은 지 2주째예요. 색이 사라졌어요. 원래 볼 수 있는 색인데, BCI가 보여준 채도에 익숙해져서— 진짜 세상이 회색으로—"


"다음."


너무 빨리 넘겼다. 감각 증강에 적응한 신경회로가 입력 차단 시 과활성화되는 현상. 메커니즘은 알고 있었다. 논문으로. 목소리로는 처음 들었다.


나는 이 뉴스들을 배경 소음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IRIS 개발에 집중해야 했다.


세상의 문제는 나중에 돌아올 것이다. 내가 만드는 기술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를.


그때의 나는 듣고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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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제이슨의 AI 모델이 첫 번째 학습을 완료했다.


그 전에, 아르티스의 추가 뇌 스캔이 있었다. fMRI 촬영실에서 나는 모니터링 룸에 앉아 스피커를 통해 아르티스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MRI 기계의 웅웅거리는 소리 사이로 아르티스의 호흡이 들렸다. 평소와 달랐다. 약간 빠르고, 약간 얕은. 나는 이것을 데이터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션 아티팩트의 가능성으로 분류했다. "아르티스, 호흡을 좀 고르게 해줄 수 있어?" 스피커 너머로 1초의 사이가 있었다. "네." 호흡이 안정되었다. 스캔이 완료될 때까지 다시 흔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1초의 빠르고 얕은 호흡이 기술적 노이즈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뇌의 언어를 기계에 넘기는 사람의 불안이었다.


아르티스의 뇌 데이터(15년간 축적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EEG(뇌파), MEG(뇌자도) 기록)를 양자 프로세서에서 학습한 AI가, 촉각 입력 패턴과 고차 시각 영역의 활성 패턴 사이의 '문법'을 추출했다.


제이슨이 보고했다. "패턴 매핑 정확도가 예상보다 높습니다. 89%."


"목표는?"


"95 이상이면 프로토타입 가동 가능합니다."


"아르티스, 추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뭐?"


"데이터 삭제 권한을 제가 가져야 해요. 언제든. 이상하게 동작하면 중단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나는 구두로 동의했다. 문서화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는 당연한 조건이었다. 나중에 이것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르티스가 말했다. "이 AI가 학습하는 건 제 뇌의 패턴이에요. 시각 없이 37년을 산 뇌의. 이 패턴을 시각을 잃은 지 6개월 된 당신의 뇌에 적용하면 불일치가 있을 거예요."


"그건 캘리브레이션으로 보정해."


"기술적으로는 그래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건 기술적 불일치가 아니에요."


나는 잠시 멈추었다.


"무슨 불일치?"


"저는 시각을 모르는 뇌예요. 당신은 시각을 잃은 뇌예요. 같은 어둠이 아니에요. 제 어둠에는 빛의 부재가 없어요. 처음부터 빛이라는 카테고리가 없으니까. 당신의 어둠에는 빛의 잔상이 있어요. 그 잔상이 IRIS가 생성하는 이미지와 간섭할 수 있어요."


과학적으로 유효한 지적이었지만 나는 이것을 기술적 문제로 분류했다. "빛의 잔상이라면 시각 기억의 간섭이지. 캘리브레이션 과정에서 필터링할 수 있어."


아르티스가 말을 멈추었다. 2초.


"그래요. 기술적으로는."


그녀가 이 문장을 반복할 때 '기술적으로는'이라는 단어에 미세한 강조가 있었다. 나는 이것을 들었지만, 의미를 따라가지 않았다. IRIS의 프로토타입 완성이 4개월 앞이었다. 집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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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데이비온이 연구실에 왔다.


그가 2층에 올라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데이비온의 영역은 1층이었다. 그가 2층에 올라오면 무언가를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옆의 빈 회의실. 문이 닫혔다. 데이비온이 앉는 소리. 의자가 삐걱거렸다.


"이사회에서 질문이 나왔어."


"무슨?"


"IRIS의 상업화 계획."


"아직 프로토타입도 안 됐는데."


"프로토타입이 되기 전에 계획을 세워야 투자가 유지돼. 알잖아."


알았다. 이것이 데이비온의 일이었다. 기술이 완성되기 전에 시장을 만드는 것.


"뭘 제출했어?"


"세 단계 로드맵. 1단계 의료용 시각 복원. 실명 환자 대상. FDA 승인 경로. 2단계 시각 증강. 정상 시력 보유자의 감각 확장. 기존 감각 증강 BCI 시장 진입. 3단계 군사/산업 응용."


3단계. 나는 이 단어에 걸렸다.


"군사 응용?"


"이사회가 원하는 거야. 정확히는 방산 쪽 자문위원."


"나는 동의한 적 없어."


"동의/비동의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계야. 실제 계약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계약의 시작이야."


데이비온이 짧은 한숨을 쉬었다. 거의 들리지 않는. 하지만 나는 들었다.


"달시. 이 기술이 너 혼자 다시 보는 것으로 끝나면 CORTEX는 문을 닫아. IRIS 개발비만 이미 1,200만 달러야. 이사회는 투자 회수 계획을 원해."


"투자 회수는 의료 시장만으로 가능해."


"의료 시장만으로는 5년이야. 이사회가 기다려줄 기간은 3년이야."


나는 계산했다. 숫자. 항상 숫자. 감정이 아니라 숫자.


"3단계는 빼."


"그러면 —"


"2단계까지만. 의료용과 증강용. 그것으로 3년 안에 흑자 가능한 모델을 만들어."


"가능은 해. 하지만 —"


"'하지만'은 나중에."


데이비온이 다시 침묵했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알았어. 3단계는 빼고 제출할게."


이것이 그때의 나와 데이비온 사이의 거래 방식이었다. 나는 선을 긋고, 데이비온은 그 선 안에서 최대한을 만들어냈다. 이 균형이 CORTEX를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데이비온이 이사회에 제출한 것과 내가 동의한 것이 같지 않았다는 것을.


이것은 배신인가, 현실주의인가. 훨씬 나중에 이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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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의 시간이 기술의 진전으로만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계절을 놓치고 있었다. 아니, 놓친 것이 아니라 등록하지 않은 것이었다. 1월의 연구실 창밖에서 빗소리가 내려오던 것이 어느새 새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복도에서 리사의 스웨터 섬유 냄새가 사라지고 반팔의 선크림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 봄에서 여름으로의 전환이었다. 스프링클러 소리가 에어컨 소리와 겹치기 시작했을 때가 7월이었다. 나는 이 소리들을 들었지만 달력을 넘기지 않았다. 눈으로 보는 계절은 풍경이 바뀌는 것이었고, 귀로 듣는 계절은 악기가 바뀌는 것이었다.


아르티스가 내 커피에 설탕을 넣기 시작한 것을 3주 뒤에야 알았다. 맛이 아니라 아르티스가 컵을 건넬 때 잠깐 멈추는 소리로. 스푼이 잔에 부딪히는 횟수가 한 번 더 있었다. "설탕 넣었어?" "야근이 늘었으니까요." 이것이 아르티스의 돌봄이었다. 설명 없이, 허락 없이, 단지 소리 하나가 추가되는 방식으로.


7월. 프로토타입 완성이 2개월 앞.


연구실의 리듬이 빨라졌다. 발소리가 빨라졌고, 키보드 소리가 늘었고, 커피 냄새가 짙어졌다. 야근이 많아졌다. 나는 이 변화를 소리와 냄새로 측정했다.


7월 어느 저녁. 연구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나와 아르티스만.


아르티스가 건너편 데스크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그녀의 TouchRead BCI가 보내는 미세한 진동음. 가끔 Aria에게 속삭이는 소리. 이 소리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반려였다.


"아르티스."


"네."


"왜 이 프로젝트에 있어?"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뜻이에요?"


"IRIS가 성공하면 시각 BCI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하지만 당신은 시각 BCI를 거부한 사람이잖아. 시각이 없어도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고 증명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남이 시각을 되찾게 해주는 프로젝트에 왜?"


아르티스의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돌린 것 같았다.


"당신은 시각을 잃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하잖아요."


"그래."


"저는 시각을 모르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해요."


"..."


"제가 시각을 거부하는 건 시각이 나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제 뇌에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뇌는 달라요. 시각을 알던 뇌예요. 그 뇌에게 시각을 돌려주는 건 강제가 아니라 복원이에요."


"그 구분이 항상 명확해?"


"아니요. 전혀."


아르티스가 웃었다. 작은 웃음. 이 소리를 나는 처음 들었다. 6개월간 함께 일하면서. 미소는 있었다. 목소리의 톤이 살짝 올라가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하지만 소리 내어 웃는 것은 드물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거예요.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복원과 강제, 치료와 변환, 되돌리는 것과 새로 만드는 것. 이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싶어요."


나는 이 대답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과학자의 호기심. 경계의 현상에 대한 학문적 관심. 나는 이것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 연구 동기로 정리했다.


하지만 아르티스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녀가 이 프로젝트에 있는 또 다른 이유. 그것은 나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 과정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무엇을 잃게 될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것.


이것을 나는 훨씬 나중에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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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에 귀가할 때마다 현관 앞 올리브 나무 소리가 들렸다. 바람의 강도에 따라 다른 소리. 건조한 여름 바람에 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1월의 빗속 소리와 전혀 달랐지만, 나무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 9개월간의 설계가 매일 다른 장벽에 부딪히는 동안, 이 나무만이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종류의 안정을 주었다. 이 나무가 닻이었다. 9개월간 내가 표류하지 않은 것은 이 뿌리 덕분이었을 것이다.


8월. 최종 조립.


하우징부터 512채널 신경 프로브까지, 모든 구성 요소가 준비되었다. 리사가 조립을 진행했다.


나는 완성된 프로토타입을 만져보았다.


하우징의 곡면을 손으로 따라갔다. 카메라 렌즈의 유리가 차갑고 매끄러웠고, 프로브 연결부의 미세한 핀들이 손끝에 걸렸다. 바늘 끝보다 가는 것들이 촘촘히 배열된 밀도.


이것이 내 눈이 될 것이었다.


"9월 15일." 내가 말했다. "첫 가동."


"안전성 시뮬레이션 결과, 신경 손상 확률 0.3% 이하." 리사가 말했다. "사라 선생이 수술 프로토콜을 확정했어요."


0.3%. 1000분의 3. 높지 않았다. 하지만 0은 아니었다. 고차 시각피질에 추가 손상이 생기면 IRIS뿐 아니라 꿈에서의 시각도 잃을 수 있었다. 남은 마지막 시각마저.


하지만 이 위험은 감수할 만했다.


감수할 만하다. 이 판단이 나의 것이었는지, IRIS에 대한 집착의 것이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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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수술 전날.


집. 서재. 칠흑.


내일이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무언가가 바뀔 것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IRIS의 기술 사양을 머릿속에서 점검했다. 512채널 프로브. 카메라 시야각 180도. AI 변환 지연 47밀리초. 해상도 목표: 초기 저해상도에서 캘리브레이션 후 HD급까지. 모든 숫자가 맞았다. 준비는 완벽했다.


완벽. 이 단어를 쓸 때마다 무언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나는 해독할 수 없었다.


아르티스에게 전화했다.


"내일이야."


"알아요."


"긴장돼?"


"저는 안 돼요. 당신은요?"


나는 정직하게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긴장'이라는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다. 두려움... 기대... 설렘... 감정들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하나의 덩어리로 가슴 안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모르겠어."


또 이 단어. 7개월 전에는 쓰지 않던 단어를 아르티스를 만난 이후로 요즘 들어 쓰임새를 찾게 되었다.


"괜찮아요." 아르티스가 말했다. "모르는 게."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고른 호흡이 들렸다.


"아르티스."


"네."


"내가 다시 보게 되면 네 얼굴을 제일 먼저 보고 싶어."


이것은 계획된 말이 아니었다. 입에서 나온 뒤에야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분석의 방어선을 우회한 문장. 분석 없이 나온 말.


아르티스가 침묵했다. 3초.


"제 얼굴은 눈이 없어도 알 수 있을 텐데요."


"..."


"하지만 고마워요."


전화가 끊긴 뒤. 어둠.


내일이면 이 어둠이 걷힐 수 있다. 9개월간의 설계가 작동하면. 도면 없이 만든 것이 빛을 만들면.



도면 없이 설계한다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만드는 것. 과학자는 이것을 '가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설이라는 단어로 담기지 않는 것이 있었다. 9개월간 어둠 속에서 내가 만든 것은 가설이 아니라 기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기도. 이 단어를 나는 과학자로서 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달리 다른 단어가 없었다.


도면 없이 눈을 감고 그린 설계도.


내일이면 이것이 빛이 되거나, 어둠으로 남거나.


전화기에서 아르티스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통화를 끊기 직전에 말한 것.


"이상하게 동작하면 중단해요. 약속해요."


"약속할게."




아직은 어둠이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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