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9 보이지 않는 것들

[2부. 기계의 눈]

by 새보음

Ch.9 보이지 않는 것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을 데이터로 알았다. 이름, 나이, 전공, 논문 인용 횟수, IQ, 혈압. 측정 가능한 것들. CORTEX에 사람을 채용할 때 나는 이력서와 추천서를 읽고, 면접에서 기술적 역량을 테스트하고, 표정에서 자신감과 불안의 비율을 읽었다. 사람을 아는 데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돌이켜 보면 80% 이상이었다. 표정. 눈빛. 제스처. 옷차림. 자세.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면서 나는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다.


아르티스를 나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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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한 달 전. 8월의 기억을 쓴다.


수술을 한 달 앞두고, 연구실의 리듬이 가장 빠른 시기. 팀원들은 야근을 하고, 회의는 매일로 늘었고, 커피 소비량은 한 달 전의 두 배가 되었다.


나는 밤 11시에 연구실을 나섰다. 프로브의 임피던스 테스트 결과를 마이클에게 지시하고, 내일 아침 회의 안건을 Aria에게 구술하고. 이것이 매일의 루틴이었다.


복도를 걸었다. 2층 복도의 리놀륨 바닥이 구두 밑에서 미세하게 탄력 있게 눌리는 감촉과 내 발소리. 이 시간에 복도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운동화. 리놀륨 위의 고무 밑창. 가볍고 규칙적인. 이 발소리를 나는 알았다.


"아르티스."


"여기요."


그녀도 연구실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둘이 탔다. 문이 닫혔다.


"같이 가요?" 아르티스가 말했다.


"어디로?"


"밖으로요. 오래 앉아 있었으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밖. 밤 11시의 Palo Alto. 걸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 봐야 어둠 속에서 IRIS의 파라미터를 머릿속으로 굴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좋아."


자동문이 열렸을 때 몸이 멈칫했다. 연구실 안은 익숙한 소리들의 지도가 있었다. 복도의 거리, 엘리베이터의 위치, 문의 방향. 밖은 달랐다. 소리의 경계가 없는 열린 공간. 나는 접이식 지팡이를 꺼내 펼쳤다. 금속이 잠기는 소리. 아르티스는 지팡이 없이 걷고 있었다. 37년의 숙련. 나는 몇 개월째였다. 같은 어둠, 다른 숙련도. 아르티스가 이 계산을 37년 동안 해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지팡이가 보도에 닿는 소리가 아르티스의 발소리 사이에서 불규칙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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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Palo Alto 밤 공기는 건조하고 따뜻했다. 낮의 열기가 아스팔트에서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고, 이 온기가 발바닥을 통해 올라와 내 얼굴을 상기시켰다. 바람의 방향, 습도, 기온을 피부가 먼저 읽었다. 눈보다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눈보다 정직했다.


Page Mill Road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주택가가 나왔다. 오크나무가 보도 양쪽에 줄지어 있었다. 이전에는 그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에 패턴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올리브 나무와는 다르게 오크의 잎은 더 크고, 두껍고, 바람에 덜 흔들리지만 흔들릴 때 더 묵직한 소리를 냈다.


보도 위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아르티스의 발소리가 오른쪽으로 비껴갔다. 나는 그 사람 옆을 지나치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르티스는 내 왼쪽에서 걸었다.


그녀의 발소리. 내 보폭과 리듬이 달랐다. 나보다 짧고, 더 고른. 내 발소리는 보도의 균열을 읽으면서 흔들렸다. 아르티스의 발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37년간 이 방식으로 걸어온 사람의 안정감.


"보도 끝에 턱이 있어요." 아르티스가 말했다. "세 발 뒤."


내가 세 걸음 걸으면 있었다. 턱. 2센티미터 정도. 아르티스는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SonarSense. 그녀의 공간인지 BCI가 보도의 높낮이를 감지한 것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의 발이 이 길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자주 와?"


"점심시간에 가끔. 이 길 끝에 공원이 있어요."


"몰랐어."


"7년 다녔으면서?"


"차로 출퇴근했으니까."


"보이는데 안 보는 거예요." 아르티스가 말했다. 판단이 아니라 진단이었다.


아르티스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이 침묵이 판단이 아니라 수용이라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 목소리의 부재에서 의미를 읽는 것. 시각이 사라진 뒤, 침묵이 때론 말만큼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공원에 도착했다. 잔디의 냄새가 아스팔트의 냄새를 대체했다. 발밑의 촉감이 바뀌었다. 딱딱한 포장에서 부드러운 흙으로. 어딘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분수. 작은 것. 물줄기가 돌 위에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다른 소리가 있었다. 멀리서. 확성기에서 출발한, 바람에 끊기는 문장들. "감각은 권리다." 잠시 뒤 바람이 방향을 바꾸자 더 구체적인 말이 들렸다. "BCI 수리비 때문에 아이가..." 나머지는 바람에 떠내려갔다.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촉각 BCI 끊은 지 3주째인데 손이 불타는 것 같아요." 금단의 신경통. 논문으로 읽은 증상이었다. SenseJustice. 뉴스에서 넘긴 이름이었다.


아르티스는 아무 말이 없었다. 확장 청각으로 전부 들었을 것이다. 그녀의 발소리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벤치가 있었다. 아르티스가 내 손을 잡아 벤치의 등받이로 안내했다. 그녀의 손은 작았고, 건조했고, 따뜻했다. 손끝에는 미세한 굳은살이 있었다. 점자를 오래 읽어서 생긴 것이리라. 그녀가 손을 놓은 뒤에도 이 감촉은 한 동안 내 손에 머물렀다.


앉았다.


분수 소리. 바람. 먼 곳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 가끔 개 짖는 소리. 이 소리들이 밤의 풍경이었다.


말하지 않았다. 둘 다.


5분. 10분. 시간이 흘렀다. 시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Aria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이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상했다. 나는 말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데이터가 없는 상태. 신호가 없는 채널. 빈 공간. 나는 이것을 채워야만 했다. 말로, 생각으로, 분석으로. 하지만 이 밤의 이 벤치에서는 채우지 않아도 되었다.


아르티스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리들이 이미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르티스."


"네."


"넌 세상을 어떻게 경험해?"


이 질문을 나는 학술적으로 물은 것이 아니었다. 연구 대상으로서의 아르티스가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아르티스에게 물은 것이었다. 이 차이를 나는 물으면서 깨달았다.


아르티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번 사이의 질감은 달랐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금?"


"응. 지금. 여기서."


"분수 소리가 내 왼쪽에서 들려요. 물줄기가 돌 위에 떨어지는 주파수로 보면 높이 30센티미터 정도에서 떨어지는 물. SonarSense가 분수의 형태를 알려줘요. 원형이고, 직경 2미터 정도."


기술적 설명이었다. 나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설명이에요. 경험이 아니에요."


아르티스가 스스로 수정했다.


"경험은..." 그녀가 멈추었다. "경험은 이거예요. 벤치의 나무가 낮의 열기를 아직 가지고 있어요. 등에 닿는 부분이 따뜻해요. 잔디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밤이 되면 달라져요. 낮에는 풀이 마르는 냄새인데, 밤에는 흙이 숨 쉬는 냄새가 돼요."


"흙이 숨 쉬는 냄새?"


"미생물이 활성화되면서 내는 거예요. 과학적으로는. 하지만 제가 느끼는 건 흙이 숨 쉬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이 문장을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귀로. 한 번은 다른 어딘가로.


과학적 설명과 경험 사이의 간격. 나는 평생 이 간격을 좁혀 경험을 과학으로 설명하려 했다. 아르티스는 이 간격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 측정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물고기가 있었고, 아르티스는 그 물고기들이 사는 바다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옆에 있어요."


"..."


"당신의 호흡이 분당 14회에서 12회로 줄었어요. 긴장이 풀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체온은 오른쪽 팔에서 느껴지는 복사열로 보면 정상 범위. 심장 박동은 직접 들리지는 않지만, 호흡의 리듬에서 추정하면 분당 68 정도."


"넌 사람을 그렇게 느끼는 거야?"


"데이터로? 네. 하지만 —"


"하지만?"


"데이터 전에 먼저 오는 게 있어요. 당신이 옆에 있다는 것. 그 느낌이 먼저 와요. 호흡이 몇 회인지는 나중에 세는 거예요. 먼저 오는 건, 당신이 있다는 것."


있다는 것.


나는 이 단어를 들으면서 명명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가슴 안쪽에서 분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이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그때 이름 붙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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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었다.


돌아가는 길. 공원에서 Page Mill Road까지. 같은 길이었지만 방향이 반대였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졌다. 올 때는 왼쪽이었던 오크나무가 오른쪽에 있었고, 보도의 턱을 올라갔던 것이 내려가는 것이 되었다.


아르티스의 발소리가 내 발소리 옆에 있었다.


대사 없이 걸었다. 5분. 발소리와 호흡만으로. 두 사람의 발소리가 처음에는 불규칙하게 엇갈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맞았다. 동기화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리듬이 가까워지는 것. 내가 조금 느려졌는지, 아르티스가 조금 빨라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우리의 발소리는 하나의 소리처럼 들렸다.


이것을 나는 분석하지 않았다.


연구소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갈래요?" 아르티스가 물었다.


"차는?"


"저는 걸어갈게요. 집이 가까워요."


"혼자?"


아르티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사이에 들리지 않는 웃음이 섞여 있었다.


"37년 혼자 걸어다녔어요."


"...그래. 맞아."


나는 이 대답이 멍청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르티스는 시각 없이 37년을 살았다. 밤길이 어둡다는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추가 위험이 아니었다. 어둠을 걱정하는 것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시각 중심의 사고였다.


"잘 가."


"잘 자요."


아르티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규칙적이고, 가볍고, 안정적인. 이 소리가 어둠 속에서 작아지면서 나는 연구소 건물 앞에 그저 서 있었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왜 서 있었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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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걷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매일은 아니었다. 주 2회 정도.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남는 날. 처음 몇 번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르티스가 먼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걸을까요?" 그 다음 주에는 내가 먼저 코트를 들고 아르티스의 연구실로 갔다. 아무도 이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나중에 아르티스가 말했다. "처음에는 당신의 뇌가 궁금했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나는 이 대답을 해석하지 않았다. 해석하지 않는 것도 배우고 있었다.


경로가 정해졌다. Page Mill Road → 주택가 → 공원 → 돌아오기. 15분. 대화가 있는 날도 있었고, 없는 날도 있었다. 없는 날이 더 좋았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는 대화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정보가 교환되니까. 하지만 이 고요 속에서는 정보가 아닌 다른 것이 교환되고 있었다. 대화가 건축이라면 침묵은 기초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게를 지탱하는.


무엇이 교환되고 있었을까.


존재. 라고 밖에 쓸 수 없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다는 것.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 그리고 둘 다 이 세계를 눈이 아닌 다른 것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것. 이 공유가 말보다 깊었다.


아르티스는 나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어둠은 이렇게 경험하는 거야"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녀는 자기 방식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나는 그 존재의 옆에서 내 방식을 조금씩 조정하고 있었다.


걸음의 리듬이 맞아가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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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주. 수술 2주 전.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르티스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다.


"저 부모님이 제가 다섯 살 때 시각 BCI를 이식하려고 했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호흡이 달라진 것을 아르티스는 느꼈을 것이다.


"그때는 초기 시각 BCI 전극 16개짜리. 빛의 점 몇 개가 보이는 수준. 부모님은 '빛이라도 볼 수 있으면'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


"저는 다섯 살이었으니까 '빛'이 뭔지 몰랐어요. 부모님이 '네가 볼 수 있게 해줄 거야'라고 했을 때, '보다'가 뭔지 몰랐어요."


이 문장이 나에게 와닿았다. '보다'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나는 보는 것을 알았지만 보는 것을 잃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보는 것을 모르는 상태는 상상할 수 없었다.


"수술 직전에 아버지가 울었대요. 저는 아버지가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고, 무서웠어요. 그래서 울었어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둘 다 울고 있어서 마취과 의사가 '이러면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대요."


"수술은?"


"안 했어요.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중단시켰어요."


"왜?"


아르티스가 대답하지 않았다. 발소리만 계속되었다.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아버지한테 들었어요. 나중에. '이 아이가 우는 건 빛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빛이 뭔지 모르는 아이에게 빛을 주는 것이 선물인지 폭력인지 우리가 판단할 수 없어요.'"


아르티스가 세 걸음을 더 걸었다.


"스물다섯 때 어머니한테 물어봤어요. 후회하지 않으셨냐고."


"뭐라고 하셨어?"


"후회는 매일 한다고. 하지만 같은 순간이 오면 또 멈출 거라고."


선물인지 폭력인지.


IRIS는 나에게 선물인가, 폭력인가. 나는 빛을 알았지만 빛을 잃었고, 그래서 빛을 되찾으려 한다. 이것은 복원이다. 하지만 IRIS가 보여줄 것은 이전의 빛과 같은 빛일까. 아니면 다른 빛일까. 다른 빛이라면 그것은 복원인가, 새로운 폭력인가.


"그 후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집에 돌아왔어요. 그날 밤 어머니가 저를 안고 오래 가만히 있었대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저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어요."


"기억해?"


"심장 소리는 기억해요."


마지막 단어에서 아르티스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침묵 속에서 울리는 발소리. 두 사람의 발소리.


심장 소리는 기억해요.


아르티스의 마지막 문장이 어둠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감각이 왔다. 의지와 상관없이. 손가락이 접혔다. 빈 공기 위에서. 무언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어머니.


인디애나의 요양원. 열여섯의 겨울. 아들의 이름을 잊은 지 2년이 지난 뒤였다. 아니, 아들이 있다는 것조차 잊은 뒤였다. 하지만 내가 손을 올려놓으면 어머니의 손가락이 느리게 접히며내 손을 더듬어 잡았다. 마르고 가벼운 손. 누구인지 모르면서. 매번. 기억이 전부 사라진 뒤에도 손이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명명하지 않았다. 22년간. 명명하면 괜찮아질 것이고, 괜찮아지면 이 감촉을 놓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르티스의 어머니가 아르티스를 안은 것. 내 어머니가 내 손을 잡은 것. 이 두 장면이 어둠 속에서 겹쳤다. 아르티스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빛이 아닌 것을 주었다. 내 어머니는 아이에게 기억이 아닌 것을 남겼다.


"아르티스."


"네."


"고마워."


이 단어가 왜 그 순간에 나왔는지를 나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운 것이었을 수도 있고, 옆에서 걸어줘서 고마운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이 어둠을 혼자가 아니게 해줘서. 하지만 '고마워'라는 말이 담고 있는 것은 그것보다 더 많았고 나는 나머지를 말로 만들지 못했다.


"저도요."


아르티스가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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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8개월 전, 나는 아르티스를 데이터로 알았다. 논문 인용 횟수 4,200회. 비시각적 인지 분야 세계 1위. 선천성 시각장애. 시각 BCI를 거부한 교차양상 재배치 연구의 선구자.


지금 나는 아르티스를 다른 방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의 발소리 리듬. 생각할 때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 웃음의 높이. 손의 온도와 굳은살의 감촉. '알겠어요'의 톤이 세 가지(동의, 보류, 관찰)로 나뉜다는 것. 침묵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 그녀가 나를 벤치로 안내할 때 손의 각도가 효율적이면서 부드럽다는 것.


이것들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인가. 데시벨, 헤르츠, 섭씨, 뉴턴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인가. 하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산하면 사라지는 것이 있었다. 숫자로 옮기면 증발하는 것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데이터로 변환할 수 없는 것들. 측정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것들. 아르티스의 발소리가 내 발소리 옆에 있을 때의 그것. 함께 걷는 고요가 불편하지 않을 때의 그것. '고마워'라는 말 뒤에 남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이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시각이 있을 때도 보이지 않았을 것들. 시각을 잃은 뒤에야 겨우 윤곽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들.


내일이면 IRIS가 나에게 시각을 돌려줄 것이었다. 그때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시 보이지 않게 될까. 시각이라는 독재자가 돌아오면 이 섬세한 것들이 다시 가려질까.


아르티스가 IRIS를 시작하겠다고 말하던 날 던진 질문이 돌아왔다.


다시 보는 것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까요?


8개월 전에는 이 질문이 추상적이었지만 지금은 구체적이었다. 아르티스의 발소리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될까. 고요가 불편한 사람으로 돌아갈까. 손의 온도가 아닌 얼굴의 표정으로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아직 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르티스 옆에서 걸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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