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선염과 중국

아이를 품다 #17

by 채온




거의 석 달을 엄마와 함께

집에서 지내는 것에 길든 H가

좀처럼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난주 목요일, 어린이집에 가면서 H는

계속 가기 싫다고,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서 울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선생님의 손에

넘겨주고 뒤돌아 섰다.


그 전날 아들을 데리고 학교에 나갔으나

전혀 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눈물 어린 눈동자를 떨어뜨려두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만난 아이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행복감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있으면서도

몇 시간 만에 만난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잉~’ 하고 조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아들을 안으면서 생각한다.

이제는 혼자서 이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그리고 부산에는 또 작은 아들이 있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마침, 나는 중국 쓰촨 성으로 떠날

서류를 제출하고 오는 길이었다.

학교에서 마련된 자리에 지원을 한 것인데,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지금의 이 시점에서

당분간 한국을 떠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은 상황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가장 크게 걸리는 문제는 역시 아이들.

H와 W.

친정어머니가 걱정 말라며 봐주신다고 하셨지만,

지금이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할 때라는 것을

아는 처지에서 선뜻 지원하지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과연 아이들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마음의 번민은 그칠 날이 없었다....


그저께 저녁, H가 초저녁부터 자자고 투정을 부렸다.

8시도 채 되지 않아 침대에 드러눕는 아이.

나는 왜일까 걱정하면서 아이의 이마를 만졌다.

불덩이 같았다.

상체는 뜨거웠지만 다행히 하체는 괜찮았다.


그때부터 10분 간격으로

아이를 들여다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점점 온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기운이 없는 듯, 열기에 지쳐 늘어진 듯

고꾸라져 잠이 든 아이...


아이의 이마를 몇 번씩 되짚어 보면서

어디가 아플지 체크해 보았다.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기에

목감기로 목이 부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해열제를 찾아서 자는 아이를 깨워 먹였다.

보통 열이 잘 떨어지는데

그날따라 열이 내리지 않았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새 아이를 만져보며 보냈다.


아침 일찍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편도선염이란다.

어쩜... 나 역시 어릴 때 편도선염으로

꽤 고생이 심했었다.

결국 중학교 1학년때, 수술을 했고,

그 이후로는 훨씬 수월하게 보냈었다.


자식도 편도선염이라니...

앞으로 아이가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

그나마 덜 고생하며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픈 아이는 더욱더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역시나 울면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맡겨졌다.


이번 학기는 월화수목 나흘이 강의다.

그래서 아프더라도 내가 봐줄 수가 없다.

돌아서면서...

아이가 아플 때, 내가 중국에 가 있으면 어떡하나

한숨을 쉬어 본다.


이래저래 나는 내 고통을 덜어보자고

중국행을 지원하였는데,

아이를 생각하면 또 이도저도 못할

어미가 되어 버린다.


목요일은 아침 9시부터 강의라,

7시 반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세상에!' 하면서 쳐다본다.


그 이른 시간에 저런 어린아이를 맡기는 어미라니...

하는 시선이다. 나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늘 학교에서 최종 결정이 나왔다.

나의 중국행은 무산되었다.

한국과 중국대학 사이에

여러 문제가 생기면서

지원자였던 나는 어이없이 주저앉게 된 셈.


새로운 경력과 어학실력을 갖추고자 했던 나는

그 점에서는 꽤 실망스럽고 속이 상했지만,

어린이집에 H를 데리러 가면서는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이번 학기 교재비와 이 달 치 보육비를 입금하고

원복을 받아 들고 오는 길.


나는 H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H야, 넌 엄마랑 떨어져 살 운은 아닌가 보다.

우린 같이 살아야 할 운명인 거야."

"응!"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파워레인저만 들고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엄마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면서

이 삶을 살아가련다.

엄마의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또 우리 H와 W를 더욱더 잘 키우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이 엄마는 그렇게 살아가련다.


2008. 3. 6.




2026. 3. 5.


2008년 3월에 쓰촨 성으로 가는 길이

좌절되었다.

그때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2008년 5월에 쓰촨 성에 지진이 일어났다.

딱 두 달 전 내가 가려고 했던 곳이

엄청난 재해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가지 못한 것은 천운인가.


지난해, 후배가 1년 동안 잘 다녀온 곳을

나는 갈 수 없어 마음이 상했다.

왜 하필 내가 가려할 때

문제가 생기나 원망도 했다.


그런데 지진이 났다.

처참한 상황이 계속 뉴스에 중계되었다.


갔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나고 보면,

인생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마다

늘 답안을 마련해 두었다.

어떤 건 정답을 잘 찾기도 했고,

어떤 건 요행히 받아먹기도 했으며,

어떤 건 멍청이처럼 허공만 들이받았다.


누가 만들어 놓은 숙제인지 모르나

나는 거의 낙제생에 가깝다.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많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길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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