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15
온통 어둠 속에서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밤.
한동안 우왕좌왕 하였다.
어린 아들이 어둠에 겁먹을까 거실등을 켰다.
그러다 다시 내 안에서 솟아나는 두려움으로
거실등을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무수히 반복하면서 나는 자꾸만 쪼그려 앉아서
방바닥을 기다시피 하였다.
아들은 그런 나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가끔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이기도 하였다.
어린 아들에게 지금 엄마는
이상한 놀이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어느 순간, 그만 아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였다.
진정 가슴 아프고, 서럽게도 미안하였다.
어둠 속에서
나는 여리고 가는 그 몸뚱이를 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아들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너한테서 아빠를 빼앗아 버려서
정말, 정말 미안해....
이제 막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아이에게서
나는 아빠라는 존재를 없애버린
모진 엄마가 되어 버렸다.
아직은 아빠보다는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할 나이지만,
어쨌든 아이는 언젠가 아빠를 찾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 것인가.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
엄마는 왜 아빠랑 함께 살지 않아?
아이가 물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대답을 할 것이다.
어떤 답을 할 것인지
그 대답을 마련하기 위해서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지금 나의 아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정말....
정말....
미안해. 아들아........
2008. 2. 29.
이제는 많은 면에서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교제살인이 일어나고 있고,
이혼하자고 말했다가
죽는 아내들도 많다.
이 당시에 그는 저녁마다 문자를 보냈다.
마치 집 앞에서 올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밤이면
불을 켜는 것이 두려웠다.
이미 별거를 합의했고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다.
낮에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각자 마음을 접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다 날이 바뀌면
그의 태도와 마음이 또 바뀌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그의 마음을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만날 때는
좋은 사람이다.
이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사람은
헤어짐이 성숙한 사람이다.
최선을 다해 보고도 아니라면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에게 항상 말했다.
잘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별이 닥치면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끝인데 뭐가 ‘잘’ 끝나는 거냐고.
하지만 나는 답한다.
시작이 중요한 만큼 마무리도 중요하다.
늘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어디가 끝인지 사라져 버린
사람도, 일도 많다.
특히, 사람의 관계는
더더욱 마무리가 중요하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