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by chatgpt
내가 '버스'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다. 장시간 이동했다는 설정이다. 여기는 입국심사소이다. 미국인 꼬마 직원이 검은 정장과 타이를 갖추고 버스에 올라탄다. 꼬마는 눈 한 번 훑는 것으로 방문자들의 자격과 목적을 이해하고 이내 환영 인사를 건넨다. “Greetings!”라는 정중한 인사가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 나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의 하단이 열리고 거기 들어있던 짐가방들이 제 주인에게 잠시 돌아간다. 사람들은 가방에서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만 꺼내어 몸에 소지하고 불필요한 것은 가방에 그대로 남겨둔다. 그러면 가방은 어떤 카트에 실려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어딘가로 옮겨진다.
내 가방을 열어보니 들은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가방을 그대로 카트에 싣는다. 그러나 직후에, 나는 "너무나 작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가방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진다. 그런데 이미 담당 직원이 와서 내 가방을 카트에 싣고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그에게 멈춰달라고 소리치지만 그는 그 소리가 안 들리는 듯하다. 그가 걷는 속도는 내가 뛰는 속도보다도 빠르다. 나는 지나가는 카트 옆에 마침 서있던, 내 고등학생 시절 체육 선생님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건장한 선생님조차도 카트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 꿈은 내용상 마치 지난 화에서 다룬 꿈의 후속/변주인 듯 보인다. 그럴 만도 하다. 이 꿈은 지난 화의 '나'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꿈을 두고 보통 '통과 의례 꿈'이라고 부른다. 통과 의례 꿈은 "당신이 (삶을) 통과하고 있다"라고 승인해 줌과 동시에 그에 걸맞은 심화 과제를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다. 사람이 그 통과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꿈은 어떤 통과를 다루고 있는지, 또 어떤 과제를 부여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내가 '버스'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다. (중략) 미국인 꼬마 직원이 검은 정장과 타이를 갖추고 버스에 올라탄다. 꼬마는 눈 한 번 훑는 것으로 방문자들의 자격과 목적을 이해하고 이내 환영 인사를 건넨다. “Greetings!”라는 정중한 인사가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
바다 건너의 먼 외국을 '버스'로 갔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빠른 이동'을 대변한다면 버스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느린 이동'을 대변한다. 하여, 꿈은 '나'가 '미국'이 대변하는 가치에 '게 눈 감추듯 후다닥'이 아니라 꽤나 진득하고 현실적인 방식(grounded way)으로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버스는 그 공공성으로 인해 이동의 공적 맥락(시간성, 역사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 꿈의 맥락에서 '미국'은 무엇을 대변하고 있을까? 보통은 '나'가 실제 미국에 대해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사를 차치하고 보편적인 분석 관점으로 짚어보자면, 일반적으로 미국은
외국 중에서도 '인접권 외국(일본 등)'이 아니라 '꽤 먼 외국'으로 여겨지고 (멀다는 것은 지리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화적 의미도 포함)
가능성/기회가 '열려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여 우리는 이 장면을 두고 "'나'가 멀리 있고 열려 있는 새 세계에 도달한 장면"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꼬마가 나온다. 앞선 5화의 꼬마가 Divine Child였다면, 이 꿈의 꼬마는 Divine Child이면서도 다른 역까지 겸하고 있다. "눈 한 번 훑는 것으로 방문자들의 자격과 목적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Divine Child적 성격이 보이는 와중에 '정장과 타이를 갖춘', 흡사 입국 심사관의 모습에서 문지기(Gatekeeper)적 성격이 보인다. 문지기는 통과 의례 꿈에서 대부분 등장하는 원형이다. 아무나 통과시켜 주면 안 되고 통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꿈이 "Greetings!"에 힘점을 찍은 것으로 보아 이 꿈의 문지기는 확실히 우호적이다. 즉, 이 꿈의 본론―과제―는 '입국 자체'에 있지 않다.
버스의 하단이 열리고 거기 들어있던 짐가방들이 제 주인에게 잠시 돌아간다. 사람들은 가방에서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만 꺼내어 몸에 소지하고 불필요한 것은 가방에 그대로 남겨둔다. 그러면 가방은 어떤 카트에 실려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어딘가로 옮겨진다. 내 가방을 열어보니 들은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가방을 그대로 카트에 싣는다. 그러나 직후에, 나는 "너무나 작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가방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진다.
거의 직유이다. 새 세계에 들어가려면 '소수의 정말 본질적인 가치'만을 체화하고, 그 외의 것―다양한 종류의 미련―은 보내버려야 한다고. 이건 단순 정리가 아니라 통과의례적 선별이다. 하여 '나'의 가방에 들은 게 없다는 것은 이 꿈의 맥락상 '준비된 바가 없음'보다는"'나'가 이 전환을 위해 군더더기 없는 상태로 잘 준비되어 있음"에 가까워 보인다. 만약 꿈이 '준비된 바가 없음'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중요한 소지품(여권 등)이 없어서 입국이 거절됨' 따위의 시나리오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이미 "Greetings!"라는 인사를 받은 후이다.
"너무나 작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가방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을 수 있다"에 관련하여 이 꿈의 핵심이 자리하고 있다. '못 꺼냈을 수도 있는 뭔가'에 형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관념적인 냄새가 난다. 하여 '나'의 불안은 다음처럼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불신 루프 : 외출 때마다 "혹시 가스불 안 껐나?"라고 생각하거나, 이미 7번 검토한 차트를 12번 검토하는 그런 계열이다. 가스불은 꺼져 있을 것이고 차트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미세한 의무 / 책임감 : 어떤 새 국면으로 들어가려 할 때, 실제로는 마땅히 정리해야 할 걸 다 정리한 것인데도 "혹시 내가 의무를 저버리고 떠나는 건 아닌가"라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버리기 아까운 미세한 정체성 조각 : 정체성의 허물을 벗는 과정에서 큰 허물은 벗었더라도 작은 습관·관계 잔여물·자기 이미지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 있다.
소중한 핵심 : 이건 조금 역설적이다. 가방에서 꺼내지 못한 것이 어쩌면 살아있는 핵심, 씨앗, 영감, 증표일 수 있다. 이 경우 마땅히 버려야 할 걸 못 버린 게 아니라 챙겨야 할 진짜 핵심을 놓친 것
모두 가능한 의미이지만 맥락 상으로 1번, 2번 항목이 강해 보인다. 왜냐면 '나'의 불안이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했을 수 있다"라는 '가정적 반신반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즉, 이 꿈은 실제 누락보다는 '누락 가능성에 대한 강박적 재점검 충동'을 더 강하게 다루는 듯 보인다. 다만 4번도 일단은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다음 파트 때문이다.
이미 담당 직원이 와서 내 가방을 카트에 싣고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그에게 멈춰달라고 소리치지만 그는 그 소리가 안 들리는 듯하다. 그가 걷는 속도는 내가 뛰는 속도보다도 빠르다. 나는 지나가는 카트 옆에 마침 서있던, 내 고등학생 시절 체육 선생님에게 소리쳐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건장한 체육선생님조차도 카트를 따라잡지 못한다.
본질로서 몸에 지니기로 결정한 것 외에, 떠나보내는 것들은 회수할 수 없다고 일러주는 대목이다. 꿈이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을 활용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나'는 그 선생님에 대해 '규율 일변도의 마초적 남성'이 아니라 '친근하고 쿨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 "친근하고 쿨하고 피지컬 좋은 교사적 에너지조차도 떠나가는 것들을 회수할 수 없다" 즉 이 장면은 충분한 힘· 속도· 의지력· 근성· 추격으로도 넘을 수 없는, 삶의 '본질적 비가역성'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꺼내지 못한 뭔가'에 관련된 불안을 다루면서 우리는 후보군을 나누었고, 그 후보군을 또 크게 두 갈래로 나누었다(1+2 / 4). 그래서 꿈에 대한 가설도 두 갈래로 나뉜다.
1. '나'가 만약 강박적 재점검 or 미련 회수 시도에 빠져있다면 이 꿈은 "쿨하게 가라 / 보내라"로 읽힌다.
2. '나'가 만약 자신의 소중한 핵심을 놓치기 일보직전이라면 이 꿈은 "그건 한 번 놓치면 회수할 수 없으니 잘 챙겨라"로 읽힌다.
하여, 이런 꿈은 해석에 있어서 '개인사 반영 검증'이 아주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내가 요즘 어땠지?" 하는 의문에 빠진다. 우리가 여러모로 바쁘고 정신없게 살기 때문이다. 개인사 반영 검증은 사건적 흐름보다도 정서적 흐름을 중점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자기 기분이 어떤지 느낄 새도 없는 우리에게는 꽤 어려운 작업이다. 심지어 "아, 이 꿈은 내 어떤 개인사에 딱 맞아"라고 느껴지는 꿈조차도 사실 더 뜯어보면 어느 한 현실 국면만을 지시하지 않는다. 모든 꿈은 본질적으로 중층적이다.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설을 모두 인정하되, 어느 것이 주가설이고 어느 것이 부가설 일지를 따지는 '무게 배분'이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용하는 방법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보통 내가 이 영화(꿈)를 만든 감독이라고 상상하며 "나는 무슨 의도로 이것을 '나'에게 보여주는가?"를 추론한다. 그 방법을 이 꿈에 적용한다면, 내 기준에 "쿨하게 보내라"라는 메시지는 매끄럽게 느껴지는 반면 "소중한 핵심을 놓치지 않게 조심하라"라는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덜 매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만약 "조심하라"라는 의도로 이 꿈을 만든다면 다음처럼 연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1. '나'가 가방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것이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는 것이 꿈 말미에 밝혀진다. 그래서 '나'는 입국 심사를 통과하지만 밥을 사 먹지 못하거나, 미국에 거처를 잡지 못한다.
2. '나'가 가방을 확인해 보는 장면에서, 가방 안에 시각적으로 뭔가가 분명히 있는데 '나'의 꿈속 자아는 '아무것도 없네'라고 생각한다. '나'는 꿈 말미에 (혹은 각성 직후에) 이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연출이 "조심하라"라는 의도에 맞는, 더 직접적이고 더 꿈 문법적인 연출이다. 그런데 이 꿈은 '그래서 그 가방 안에 뭔가가 정말로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건 요점이 아니라는 듯이. 하여 나는 ['나'가 만약 강박적 재점검 or 미련 회수 시도에 빠져있다면 이 꿈은 "쿨하게 가라 / 보내라"로 읽힌다.]를 주가설로 유지하면서 조금 다른 보조가설을 세우려고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보조 가설 : '나'는 자기가 이미 작은 본질을 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서 자꾸 '눈에 보이는 준비물'을 외부에서 찾아 회수하려 한다.
나는 공적이고 현실적이고 진득한 방식을 거쳐서 새로운 세계(삶의 국면)에 도착한다. 나의 진입은 허가되고 심지어 나는 그 세계로부터 환영까지 받는다.
통과 의례로써,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려면 자기를 비우고 꼭 필요한 본질만을 체화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보내야 한다. 나는 일견 이미 잘 비워져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혹시 내가 보내면 안 되는 것 까지도 보내버리면 어떡하지? / 내가 체화해야 할 본질을 체화하지 못했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나 새 세계에서의 '미련 털어내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힘·근성·추격으로는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 삶의 통과 의례적 국면은 본질적으로 비가역적이기 때문이다.
∴ 나는 나의 소양을 의심하고 재차 확인하는 대신에, 내가 충분히 준비되었음을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나는 보낼 것은 쿨하게 보내고 새 세계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