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꿈

by 백종현

표지 by chatgpt


Scene 1
내가 전통적인 목조 대저택에 있다. 을씨년스럽고 어둡다. 가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Scene 2
나는 복도에 선다. 복도의 왼편에 쪼르르 문이 7개 정도 있다. 첫 문을 밀어 열어보니 깨끗한 걸 넘어서 ‘창백한’ 화장실이다. 저택은 전통식인데 반해 화장실은 현대식이다. 나는 다음 문을 밀어 연다. 똑같은 화장실이다. 또 다음 문을 밀어 연다. 똑같은 화장실이다.
마지막 문을 밀어 열려고 하니, 아주 약간 밀리긴 하는데 뭔가에 막힌다. 나는 생각한다. "이 방에는 열린 창문이 있나? 지금 집 밖에 태풍이 불어서, 열린 창문을 통해 강풍이 들어와 이 문까지 닿고 있는 건가?" 나는 잠시 기다린다. 나의 마음에 미스터리와 호기심과 점검 욕구가 뒤섞인다. 다시 밀어보니 이번엔 문이 열린다. 같은 화장실인데, 변기에 누군가가 알몸으로 앉아있다. 아주 초췌한 사람이다. 그는 남근도 유방도 없는 '무성'이다. 그는 나이다.



관찰 및 가설 설정


'대저택'은 꿈 문법적으로 '역사와 서사가 깃든 큰 정체성'으로 읽히는 듯하다. 특히나 그것이 전통양식이고 목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런 저택 내부가 을씨년스럽고, 어둡고, 가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면, 구체적 삶(관계·취향·생활·창조·휴식 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사람의 '정체성'이 텅 비어 버린 것과 같다. 말하자면, 야망은 있는데 삶은 없는 상황. Scene 1은 그런 암담한 내면 현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후속 Scene은 '내면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 7번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화장실이 반복되는 것은 화장실로 대변되는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은 우리가 씻고 싸는 곳, 따라서 화장실의 의미는 세정·배출 등으로 정리된다. 무엇을 세정·배출하는가? 바깥 활동을 하는 중에 쌓인 먼지와 찌꺼기. 이는 상징적으로 '사회에서 받은 심리적 오염(대표적으로 피로와 수치심)'일 것이다. 하여 "화장실이 반복 출현하고, 각각의 화장실이 깨끗한 걸 넘어서 창백"하다는 건 "'나'가 살면서 느끼는 피로+수치심을 세정·배출하는 심리 기능이 강박적 루프로써 과잉 작동 중"이라는 뜻이다. 이는 대단히 '멸균'적이고, 우리는 이것이 바로 대저택(정체성)이 텅 비어버린 이유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걸 죄다 싸버리고 씻어버리고만 있는 것이다.

저택이 전통식인 데에 반해 화장실은 현대식인 것 또한 '세정·배출의 과잉/강박' 의미를 보조한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빨리 세정·배출하려면 현대식 화장실이어야 하니까.


'마지막 문이 잠시 안 열리다가 곧 열리는 부분'에 이 꿈의 난점이 있다. 만약 '나'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든가, 아예 들어가지 못했든가 했다면 꿈의 메시지가 훨씬 확정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잠깐 유예하고, 비교적 쉬운 부분들을 먼저 짚어 보자.

처음 다룰 만한 부분은 꿈속 생각이다.

"이 방에는 열린 창문이 있나? 지금 집 밖에 태풍이 불어서,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이 문까지 밀어내는 건가?"

열린 창문 : '집, 방'은 '심리 공간', '창문'은 심리 공간과 외부 현실과의 '경계면'이다. 만약 창문이 열려있다면 '나'의 내면과 외부 현실 사이의 경계가 열려 있는 상황이다. (열려있다는 것 자체가 좋거나 나쁘진 않다)

집 밖 태풍 : 재난적인 외부 현실

하여, "집 밖에 태풍이 불어서 열린 창문으로 강풍이 들어와 문에 닿는 건가?"라는 생각은

경계면이 활짝 열려서 외부의 재난이 내 마음에 그대로 유입되고 있나?

그 영향으로, 이 방에 무엇이 있는지(내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나의 시도가 막히고 있나?

라는 의미일 수 있다. 이를 더 일상적인 말로 풀면 "혹시 내가 살기가 팍팍해서 나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라고 '나'가 돌아보는 장면이다.

마지막 문을 열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의 정동은 '미스터리 + 호기심 + 점검 욕구'이다. 이는 희망적인 부분이다. 정체성이 비어버린 '나'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꿈의 '나'는 어느 정도 능동적이다. 그렇기에 앞서 다른 문도 다 열어보았던 것.

'열리지 않던 문이 잠시 기다리자 열리는 이유'는 여전히 모호하므로, 느슨하게만 정리하자. "마주함(문 열림)은 때의 문제"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주할 때가 아니라면 우린 아무리 애써도 마주 할 수 없고, 마주해야 할 때라면 우린 아무리 외면해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변기에 누군가가 알몸으로 앉아있다. 아주 초췌한 사람이다. 그는 남근도 유방도 없는 '무성'이다. 그는 나이다.

꿈의 결론부이다. 누구나 이 이미지를 음미하는 순간 직감적으로 숙연해질 것이다. 그러나 앞서 우리가 이 어두운 꿈에서도 희망적인 부분을 발견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이 장면에서도 그런 점이 보일 것이다. 지금 초췌한 사람은 '알몸'이다. '알몸'은 '취약함/무기능'이기도 하지만 '페르소나의 전면 해제'이기도 하다.

'남근도 유방도 없는 무성'은 꿈 문법상 남성적 가치-원리-기능(로고스/이성/성취)과 여성적 가치-원리-기능(에로스/감성/포용) 중 그 어느 쪽으로도 에너지가 흐르지 않는 상태이다. "그는 나이다" 꿈이 대놓고 말해주고 있다. '나'의 핵core이 분화가 꺼진 채로 세정·배출 zone에 유예되어있다.




보충


1. '나'는 이 꿈을 분석하지 않고도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다.

"(전략) 내가 너를 가뒀구나 // 너를 해방해야지"


2. 아래는 다른 사람이 꾼 비슷한 꿈인데, 좋은 보충자료가 될 것이다.

어디선가 물이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귀를 기울여보니 화장실에서 나는 것 같다. 수도꼭지가 제대로 안 잠겨 물이 새는 듯하다. 나는 그것을 반드시 잠가야 한다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혀 화장실로 튀어 들어간다. 들어가 보니, 벌거벗은 나 자신이 욕조에 누워 있다. 굉장히 피폐하고 초췌한 모습이다. 너무 무섭다.

이 꿈 역시도 오늘의 본문과 거의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화장실에서 물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것을 잠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 이것 또한 '화장실적 과잉'이다. 다만 이 꿈의 경우 꿈속 자아가 '새는 물을 잠그려'한다는 점에서, 피로/수치심의 배출·세정보다는 "감정이 새어 나오는 것"을 더 신경 쓰고 있음이 보인다. 다시 말해 이 꿈은 '처신 강박'에 대한 것이다. 꿈은 "네가 자신을 너무 많이 '잠가서' 너는 피폐해졌어. 너를 좀 더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둬보지 않을래?" 라고 말하고 있다.




정리·적용


나에겐 큰 정체성(커다란 역사·서사·야망)이 있음에도 나는 내 안에 구체적 삶(생활·창조·관계·취향·놀이·휴식 등)을 채우지 않았다. 나는 나를 생산과 표현으로 흐르게 하지 않았고, 강박적이고 과잉된 세정·배출 기능으로만 나를 소모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은 능동적으로, 때가 되어, 내 내면의 봉인 지점에 닿았다. 거기서 나는 에너지 분화가 꺼져 무력화된 나를 바로 보았다.

∴ 나는 그를 해방시켜야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