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by chatgpt
비가 내리는 밤. 막차가 이미 끊겼다는 걸 아는데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도로에 경찰차 여러대가 지나간다. 저기 어딘가에 사건이 벌어진듯 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있다가, 어느새 내 옆에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보이는 아이가 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이가 나보고 뭘 기다리냐고 묻는다.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이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 방향에서 버스가 온다. 아이와 나는 버스에 탄다. 승객이 적당히 있어서 여유롭다. 아이는 의자에 앉고, 나는 앉을 자리가 많은데도 아이의 옆에 선다.
버스의 운행은 신비로운 질서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이번 정류장이 삼각지라면 다음 정류장은 그 인근이어야 하는데, 이 버스는 삼각지→혜화→쌍문동같은 식으로 먼 거리를 건너뛴다. 그런데 한 정거장에서 다음 정거장으로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짧다.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절대로 '속력'때문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이다. 나는 문득 이 버스의 운행방식 때문에 내가 내릴 곳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걱정한다. 그러나 이내 나는 내가 내릴 곳을 원래 모른다는 것을 상기하고 "그렇다면, 내릴 곳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 '놓칠' 곳도 없다"라고 깨닫는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삶의 이동이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 목적을 내가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강박. 속도와 광증 속에서 어떻게든 자기를 통제해보며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에 무의식은 어떤 위로를 건네는지, 이 꿈을 분석하며 알아보자.
비가 내리는 밤. 막차가 이미 끊겼다는 걸 아는데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비가 내리는 밤'은 시야가 제한되고 이동이 어려워지는 배경이다. 이것이 '막차가 끊겼다'는 설정과 어우러지면 더더욱 '이동이 불가능해보이는 삶의 국면'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도 꿈속 자아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이는 '제도적 루트'가 종료되었음을 인지하면서도 '이동 의지'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이다. 즉 "불가능을 알면서도 기다리기". 꿈 전체 맥락상 '나'의 이런 기다림은 차분해보이며, 더 나아가 '헛된 기다림'으로 남지 않고 어떤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꿈의 기다림은 미학적/윤리적 의미를 띤다.
도로에 경찰차 여러대가 지나간다. 저기 어딘가에 사건이 벌어진듯 하다.
꿈이란 게 얼마나 '섬세한' 영상인지를 보여주는 대목. 꿈에서 흔히 '여러대의 경찰차'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시스템/힘'이다. 그런데 이 꿈의 경찰차는 '나'에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저기 어딘가에 벌어진 사건"을 향해 가고 있다. 즉 이 꿈의 경찰차는 '나' 혹은 특정 대상에 대한 단속/감시가 아니라 '세계의 사건성을 대변'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왜 비가 내리고, 밤이고, 막차가 끊겼는가"에 대한 설명처럼 보인다. 조금 과하지만 그래도 일상적인 말로 풀어보자면, 지금 꿈은 "네 이동이 멈춘 듯 느껴지는 것은 네가 게으르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다. 지금 세상이 '사건 상황'이라서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나보고 뭘 기다리냐고 묻는다.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이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 방향에서 버스가 온다.
'아이'를 만약 "'나'의 유년 기억 심리체"로 해석한다면 그건 너무 약한 해석이다. 그러기엔 이 꿈에서 아이가 너무나 대단한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정규 루트'를 초월해있는 새로운 이동 수단을 불러온다. 이건 흡사 소환invoke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 꿈의 아이는 '생기발랄'보다는 '엄근진'하다.
'아이― 신'에 대한 전설은 무수히 많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신성에서 어느정도의 소년성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은 그런 모티브를 두고 Divine Child라는 원형으로 분류한다. 그러니 "'나'가 꿈에서 신을 만났다"로 비약하는 대신, "'나'의 꿈에 Divine Child 원형이 등장했다."라고 조심스럽게 표현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 이 꿈의 아이가 소년적 신성·순수성·창의력·자유로움 등의 의미를 포괄하게 된다. 정리하면- 이 장면은 'divine child가 표상하는 가치-기능-원리가, 정규 루트를 초월한 이동 수단을 불러오는 장면'이다.
아이와 나는 버스에 탄다. 승객이 적당히 있어서 여유롭다. 아이는 의자에 앉고, 나는 앉을 자리가 많은데도 아이의 옆에 선다.
"승객이 적당히 있어서 여유"로운 것으로 보아 꿈이 순탄함/쾌적함을 강조 하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붐비지 않는 선에서, 이 여정을 함께하는 다른 인격들도 있음' 또한 의미한다. 이는 생각보다 큰 위로이다. 왜냐면 여기서의 버스는 보통 버스가 아니라 '정규 루트를 초월해있는 비범한 버스'이고, '비범한 삶'에는 보통 길동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위로는 버스 승객이 '나'의 내면 인격을 표상하건, 실제 '비범한 삶을 사는 다른 동료들'을 표상하건 언제나 유효하다.
'나'가 "자리가 많은데도 아이 옆에 서는" 모습이 중요하다. 이 모습에서 divine child와의 자발적 동행 의지가 보여지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지켜주는' 모습 같기도 하다. '나'는 내면의 신적 아이를 저버리고 싶지 않고, 그와 동행하고 싶고, 그를 보호하고 싶어한다.
이 버스는 삼각지→혜화→쌍문동같은 식으로 먼 거리를 건너뛴다. 그런데 한 정거장에서 다음 정거장으로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짧다.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절대로 '속력'때문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이다.
비범한 버스에 걸맞은 아주 비범한 운행 방식이다. 삼각지→혜화→쌍문동과 같은 '비연속 점프'로 보아, 이 버스는 거리 ·속력 ·시간이 작용하는 선형적 인과가 아니라 다른 인과를 따라 운행되고 있다. "속력 때문이 아니다"라는 자각은 이에 대해서 꿈이 의도적으로 제공한 메타-힌트이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과를 따르고 있는 것인가?
의미의 인과이다. 이 버스는 지금 '의미의 그물망'을 누비고 있다. 의미의 그물망은 비선형적이다. divine child가 소환한 버스의 운행방식으로서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다. 이 꿈은 거의 대놓고 말하고 있다. '나'의 삶 혹은 삶-인식이 선형적 원칙을 뛰어넘어, 의미 기반의 비선형적 원리가 작동하는 국면으로 전환될 것임을. 생각해보라. 비선형적이지 않은 삶이 있는가? 우리는 늘 선형적으로 사고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삶이 선형적이던가? 우리가 거리·속력·시간을 생각할 때, 세상은 늘 '의미의 연결'로 답한다.
나는 문득 이 버스의 운행방식 때문에 내가 내릴 곳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걱정한다. 그러나 이내 나는 내가 내릴 곳을 원래 모른다는 것을 상기하고 "그렇다면, 내릴 곳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 '놓칠' 곳도 없다"라고 깨닫는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타당하다. 선형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는, 우리의 선형적 사고를 넘어서서 작동하는 삶 속에서 "이대로 간다면 내가 뭘 놓쳐버리고 말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우린 원래 내릴 곳을 모른다. 그러니 '어디를/뭔가를 놓친다'는 것도 없다. 이 부분은 완전히 직유이다. 꿈은 '나'에게 목적지 강박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삶은 '내가 정한 목적지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가면서 목적지를 찾는 과정'이야"라고. 이건 체념이 아니라 해방이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가 목적지 강박을 내려놓는 동시에 '나'에게 목적지가 저절로 드러난다. '나'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꿈 본문 자체가 워낙 완결적이라 검증·보충할 부분이 많지는 않다. 꿈 내용만 봐도 꿈 꾼 사람의 개인사가 짐작될 정도. 당연히 이 꿈은 '나'가 커리어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꾼 것이다. 꿈이 굉장히 적절한 조절· 보상작용을 한 셈인데, 이 꿈은 그런 용어로 일축하기 아쉬울 정도로 "현인의 가르침"에 가까워 보인다. 이것이 무의식이 하는 일이다. 무의식은 가장 깊은 위로를 건네며, 그 위로는 '정서적 위안'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실제로 성장시킨다.
굳이 짧게 보충할 점 하나를 꼽자면, 아이가 소환한 탈 것vehicle이 일반적인 버스라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용, 고래, 말 등 상징이 풍부한 동물을 소환했거나 비행기 혹은 UFO를 소환했다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특정 이동 수단의 특정 성격'이 훨씬 강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꿈에서 아이와 '나'는 일반적인 버스를 탄다. 버스는 실제 현실과 그리 멀지 않은 이동 수단이며, 공적public이다. 이것을 통해 비범한 이동이 일어난다. 하여 우리는 '나'의 삶이 현실성과 공공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비범한 전환을 이루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무겁고 불확실한 전환기. 나는 정규 루트가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만 '기다리는 힘'을 놓지 않는다. 세상은 일견, 이동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divine child―내 안의 소년적 신성·순수·창의력·자유로움―이 나와 함께하며, 그는 나에게 '정규 루트를 초월하는 이동'을 제시한다. 나는 자발적으로 그와 동행하고, 그를 지킨다.
우리의 이동은 여유롭다. 정규 루트를 초월한 우리의 이동은 시공 인접성에 근거한 선형방식이 아니라 의미망에 근거한 비선형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그런 초월적 성질을 가진 이동 안에서 목적을 잃고 헤맬까봐 잠시 걱정하지만, 이내 삶의 불가지성unknowability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강박을 내려놓는다. 그러자 어떤 진정한 도착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