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해피엔딩을 쫓는 동화는 살아남을 수 없다.

by Seriel J

백설공주는 마녀가 건넨 독사과를 먹고 죽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깊은 잠에 빠져 결국 깨지 못했다.
콩쥐는 새어머니와 팥쥐의 구박을 받으며 평생을 그 삶에 안주하며 살아갔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인간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후회를 안고 소가 된 몸으로 평생 일만 했다.
12시가 지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모습을 본 왕자는 신데렐라를 향한 마음을 거두었다.
의좋은 형제는 직접 표현하지 않고 밤마다 몰래 쌀가마니를 옮겨 주다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결국 서로 예민해져 싸운 뒤 의절했다.

이런 결말도 있지 않은가?
어릴 때 접한 동화는 하나같이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물거품이 되는 인어공주가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유년 시절의 나는 동화로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선은 늘 악을 이기고 보답을 받았다.
그래서 동화책을 빨리 읽고 해피엔딩을 직접 봐야 마음이 편했다.
그 시절 소녀에게 주어진 작은 희망이었다.
결국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위험한 희망이었다.
해피엔딩만 존재하는 곳은 없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현실은 녹록지 않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그러나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노력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해 포기하는 순간들도 있었기에.
그 뒤에 따라오는 실패했다는 생각, 좌절감 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늘 차선을 찾으며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늘 스스로와 타협점을 찾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화 같은 경험들이 실제로 존재할 확률이 몇 퍼센트가 될까?

인생의 결말은 늘 열려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말의 방향은 다양했다.
선택의 연속과 스스로와의 타협은 '사유의 방'을 만들어 고립시킨다.
고립된 '사유의 방'에서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스스로 시험지를 만들어 고사를 치르는 격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비롯한 희망. 중요하다.
건강한 흐름의 노력. 중요하다.
여전히 중요한 것 투성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뀐 지금, 다섯 살 여섯 살 아이들도 사춘기, 오춘기, 육춘기를 겪는 지금.
몇 세 고시가 이루어질 정도의 씁쓸한 면모를 드러내는 요즘은 예전과 같은 뻔한 이야기보다는 다양성을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완성의 미학은 오히려 현실이고 진실과 가까이 닿아있음을 들려주어야 한다.
변해야 한다.

뻔한 목적을 벗어나는 결말.
현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공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흐름에 걸맞은 감정과 컨트롤을 배우는 '사유의 방'이 필요하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0화너 내일도 살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