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과자 연대기 1

새우깡 : 빗살무늬에 새겨진 생의 짭조름한 기록

by 아까그놈

새우깡의 봉지를 뜯는 행위는 마치 오래된 앨범을 펼치는 것과 같습니다. 투박한 붉은색 봉지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갈색 빛깔의 스틱들. 그 표면에 촘촘하게 새겨진 빗살무늬는 마치 세월의 나이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새우깡은 기름에 튀긴 여느 과자와는 다릅니다. 뜨겁게 달궈진 소금 위에서 구워내어, 그 식감이 훨씬 담백하고 견고하죠. 입술에 닿는 첫 느낌은 거칠고 건조하지만, 어금니로 힘을 주는 순간 "바작!" 하고 부서지며 숨겨왔던 새우의 풍미를 폭발시킵니다.


과자 표면에 미세하게 붙어 있는 소금 알갱이들은 혀끝에 닿자마자 침샘을 자극하고, 씹을수록 올라오는 곡물의 단맛과 새우의 감칠맛은 왜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마법의 주문이 탄생했는지를 증명합니다. 다 먹고 난 뒤 손가락 끝에 남은 그 짭짤한 가루를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쪽 빨아 먹어야만 비로소 한 봉지의 의식이 완성됩니다.


새우깡은 화려한 조명 아래보다는 어둑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특히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리는 밤이 적기입니다. 습기 머금은 공기와 대비되는 새우깡의 그 '건조한 바삭함'은 일종의 심리적 방어막이 되어줍니다.


세상의 소음이 빗소리에 묻히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 새우깡 한 봉지와 맥주 한 캔을 곁들여 보세요. 눅눅해진 감정의 결을 바삭한 과자가 한 겹씩 닦아내 주는 기분이 듭니다. 이때 새우깡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씹어 삼키는 도구가 됩니다.

새우깡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만날 수 있는 친구, 혹은 수십 년을 함께 산 반려자와 먹을 때 가장 맛있습니다.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좋습니다. TV 채널을 돌리며 봉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다가 서로의 손가락이 스칠 때, 그저 "너 다 먹었냐?" 한마디 툭 던질 수 있는 사이. 그런 편안함 속에 새우깡의 짭조름함이 스며듭니다. 어색한 침묵을 메워주는 것은 화려한 수사학이 아니라, "바작, 바작" 거리는 무해한 소음이면 충분하니까요.


혹시 어린 시절,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던 바닷가의 풍경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사람뿐만 아니라 새들까지 유혹하는 그 보편적인 맛. 새우깡은 어쩌면 우리가 자연과 그리고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내미는 가장 작고 만만한 '화해의 손길'일지도 모릅니다.


새우깡의 그 빗살무늬처럼 우리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도 독자들의 손이 자꾸만 가게 만드는 짭조름한 매력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