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D+1

이제부터 나는 그와 같은 마음인 거야

by 소피아



우리는 운명이라면서 연신 떠들어대던 그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의 운명은 적어도 같은 달에 3명은 되었을 것 같다.
양다리도 모자라 몇 명을 한꺼번에 만났을지 가늠도 안된다. 누군가 그랬다. 그놈이 차에서 대기하는 동안 데이팅어플로 여자들을 물색한다는 것을…..
오른쪽 탈락, 오른쪽 탈락

계획적이고 치밀했던 그 사기꾼은 일단 물색한 여자들의 기준도 세웠을 것이다.
돈도 뺏어야 하고 몸도 뺏어야 하니
적당히 본인이 결정할 줄도 알고, 나이도 있어야 되며, 그리고 아마도 연민을 이용한 범죄라 아이가 있는 돌싱이 제일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와 어떻게 해서든지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맞춰주고 있었다. 만나고 나니 할 말이 더 많아졌다. 그와 헤어진 직후부터 집에 돌아와서도 그와의 즐거운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새벽 5시 30분까지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듣고 하는 통화를 하면서 그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다정하고 달콤했다. 서울깍쟁이 오빠 같은 느낌의 교양 있는 말투로 목소리는 중저음에 빠르지 않은 속도로 이야기하는 그는 그야 말고 대기업 증권맨 다운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렇게 아쉬움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도 그런 것이 30시간을 깨어 있으니 몸이 견디지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들떠있는 나의 기분이 신체를 지배했나 보다. 2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다시 멀쩡해졌던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12시간을 내리 자도 못 일어났을 나인데.. 역시 사랑의 힘이란 이렇게 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피식 났다.

누군가가 나의 이 모습을 본다면 40살이 아니라 18살도 보겠지?라는 생각에 더 얼굴에는 홍조가 뜨였고 잠은 못 잤지만 전혀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눈뜨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늘 그렇듯이 그에게 연락을 했다. 어머나! 카톡을 보내자마자 그가 읽었다. 그도 잠을 한숨 못 잤다며 나에게 답장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또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그 1시간의 통화가 나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요단강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 아니면 나는 아마도 지금 이 고통을 입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지금 생각하면 그 사기꾼도 사기를 칠 목적물(?)이 생기니 잠도 안 왔나 보다. 바로바로 읽는 거 보니

그 되돌릴 수 없는 요단강 같은 통화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본인은 내가 생각나서 잠을 한숨도 못 잤고, 나의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고 집에 보내기 너무 아쉬웠다.

지수 네가 하룻밤을 보낼 준비가 안되었다면 이야기해달라.

나는 너를 존중하고 싶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너의 품에서 잠들면 잠이 잘 올 것 같다.

너의 이야기를 해달라. 너를 존중해주고 싶다.’


지금 보니 불면증은커녕 불면증 할아버지가 와도 쿨쿨 잘 것 같은 그 놈이다. 어찌나 쫓기고 다녔던 놈인지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나오자마자 범죄를 저질렀으니 이 호텔 침구가 얼마나 그립고 포근했었을까…


그렇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사기꾼은 교도소에서 같은 범죄로 4번을 복역하고 나온 만기 출소자로, 이미 경력이 화려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기꾼이나 범죄자가 본인이 사기꾼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외관상으로는 절대 모른다.
정말 나도 내가 속을 줄 몰랐다.

지금 와서 보면 거짓말 시전이고 나와 어떻게든 몸을 섞어서 하루라도 빨리 돈을 뺏을 목적으로 밖에 안 보이지만 그 당시 그가 얼마나 젠틀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정말 순진하게 그냥 안아줄 생각으로 밤을 보내고 싶었고, 나도 잠을 못 잤고 그도 잠을 못 잤으니 푹 잘 생각으로 허락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이다. 나도 잘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의 나를 타박해서 무엇하리라…..

그렇게 그는 나를 삼성동의 한 호텔의 주소를 주면서 오전 11시까지 보자고 했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고 비 오는 날 호텔 로비에서 밖에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저 빨간 우산을 드는 여자는 행복한 사람. 저 까만 우산을 드는 남자도 행복한 사람. 나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음도 났지만 떨리는 마음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믿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닌데 왜 이 사기꾼한테는 호락호락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마치 짜여놓은 각본에 내가 들어가서 마치 연극의 주인공처럼 연기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렇게 어색하게 낯선 곳에 들어섰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는 의자에, 그이는 침대 머리맡에서 서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이야기를 했다. 본인도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본인도 지금 매우 떨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나도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어쩜 이런 결도 같을까?라는 생각으로 참아왔던 가슴속의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그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그와 짧고 강렬했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기 아쉬워서 근처 카페에서 더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실 여태 그와 속 시원한 대화도 못했었고 충분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한번 만났을 때 오랫동안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게 나의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그도 알았는지 호텔 체크하웃 시간이 지나고 카페에서 못 나눴던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 그의 아버지가 전화가 계속 와서 우리는 그 여름 시원한 수박주스도 마음대로 못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지금 보니 그 전화는 아버지의 전화가 아니었고 본인이 일어나려고 거짓으로 상황을 만들어낸 픽션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나둘씩 거짓말로 본인을 채워나갔던 것이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의 아버지는 그가 말한 대로 그렇게 엄한 사람도 아니었고, 하루에도 12번을 호통치는 그런 날씨 같은 존재도 아니었다. 그의 전 부인에 대해서도 말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에게 진실이란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그의 잘 짜인 대본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와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더욱더 갔다. 이제부터 나는 그이를 생각하고 믿어주는 사람이 되었고, 그의 모든 일들에 대해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연락이 올 때면 나의 발그레한 광대는 올라가서 모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소녀 같았다. 잠시 회상해 보면 오랜만에 나의 사랑과 설렘에 대한 감정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난 그에게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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