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영원을 살 수 있어서

봄볕의 배웅 - 줄리 입 윌리엄스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

by Rain

주일 중 유일하게 허락된 토요일의 휴식이었다. 몸은 침대 시트 속 바닥까지 자꾸만 가라앉으려 했다. 밀린 책장을 넘기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서관 책 반납 말고는 아무 일정 없는, 그야말로 '소중하고 한가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오늘 우리 데이트하자.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당연히 최신 영화나, 내가 그리 선호하지 않는 쇼핑 같은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는 예상 밖의 장소를 꺼내놓았다.


"우리, 내 친구 보러 다녀오자."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잠든 추모공원에 가자는 제안이었다. 장례를 치른 뒤 내내 마음이 쓰였을 텐데, 초행길 운전이 겁이 나 내가 쉬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모양이다. 눈은 떠졌지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밍기적거리는 나를 보며 아내는 "그냥 다음에 갈까, 여보?" 하고 조심스레 배려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숨은 아쉬움을 나는 안다. 마음먹었을 때 가지 못하면 몸은 가벼울지언정 마음은 내내 무거워지리라는 것을.


"아냐, 다녀오자. 당신 친구 잘 있는지 보고 오자."


그 한마디에 아내의 몸짓이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가벼워졌다. 걷는 대신 통통 튀어 다니며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정성껏 싸서 도시락을 챙겼다. 광릉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길 위에서 아내는 혼자 올 엄두가 안 났다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내가 기쁘니 내 마음속 피로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비록 곁에 없어도 기억한다는 건 결국 사랑한다는 뜻이다. 기억하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를 영영 곁에 머물게 할 수 있다. 시차가 다른 먼 외국에서 지내는 친구를 대하듯, 평소에는 각자의 일상을 무심하게 살다가 어느 좋은 날 문득 보고 싶어질 때면 이렇게 달려와 얼굴을 마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소식이 생겨도 이제는 먼저 연락을 건넬 수 없으니, 그럴 땐 차라리 직접 찾아와 눈을 맞추며 전하는 편이 훨씬 다정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영원을 살면 되는 것이다.


추모공원은 뜻밖에도 아주 근사했다. 봄 내음이 완연한 꽃과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봉안당은 마치 고급스러운 클럽하우스 같았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직원들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따스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깔린 그곳은 슬픔보다는 온기가 먼저 느껴졌다.
직원이 석문을 열어주고 자리를 비켜주자, 한 뼘 높이에 세 뼘 너비의 작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의 시작과 끝이 정갈하게 적힌 유골함 곁으로, 찬란했던 순간들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내 친구 안녕, 보고 싶었는데 빨리 못 와서 미안해."


아내는 다정하게 첫인사를 건넸다. 사진 속 친구는 소중한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서사는 유골함에 새겨진 날짜에서 멈춰 있었다. 훗날 딸아이의 졸업식이나 결혼식 사진 속에, AI가 빚어낸 허상 말고 진짜 그녀의 얼굴이 없을 것을 생각하니 같은 딸을 가진 부모로서 마음 끝이 아려왔다. 아내는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웃으며 한참을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친구 딸, 나중에 괜찮다고 하면 당신이 때때로 챙겨줘."


인생의 큰 고비마다 엄마의 빈자리를 친구가 채워주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하면'이라는 조심스러운 전제를 달았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는다. 누군가의 부재를 메우는 것은 그를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의 곁을 내어주는 일이다.


봉안당의 긴 창으로 봄볕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남겨진 친구가 보내는 따뜻한 배웅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 사람과 나눌 미래의 풍경까지 함께 잃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겨진 이들이 그 풍경을 대신 기억하고 함께하고자 애쓰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눈부신 애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오늘 좋았지만 내일은 다시 슬퍼질지도 모른다. 슬픔은 두고두고 소리 없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다정한 온기들이다. 함께 길을 나서고, 샌드위치를 입에 넣어 주고, 쏟아지는 햇살을 함께 바라보는 그 사소한 일들이 모여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창가에 머물던 그 눈부신 봄볕이 아내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홀로 자라날 아이의 생 위에도 오래도록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는 토요일 오후였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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