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연애 권장서 - 김지용 [문제적 사랑]
사랑을 권하는 일이 구태의연한 잔소리가 될까 봐 오래 망설였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 세대가 다르고, 이미 결혼을 해 생활의 안정을 찾은 '영포티'가 젊은 세대에게 사랑과 연애를 당부하는 모습이 자칫 설득력 없는 진부한 훈계로 비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고할 만한 자료도 찾고 설레는 감정도 복기해 볼 겸 OTT를 검색해 보았다.
세상에는 '연애를 주저하는 세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정말 다양한 연애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평생 솔로인 사람들, 외모가 출중한 남녀, 이별의 아픔을 겪고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 심지어는 부모까지 동반해 인연을 찾는 프로그램까지 그 종류를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시간과 감정적 에너지 소모', 그리고 '경제적 부담' 때문에 현실에서 한 발자국 비켜서서 대리 만족으로 끝내려는 세대인지, 아니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맞는 상대를 찾아 나서는 진취적인 세대인지 그 구분조차 모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은 것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함임을 나는 믿는다.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없는 환경은 어른들의 책임이지, 연애를 주저하는 청춘들의 탓이 아니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 속에서, 행복의 상대성을 인정하며 소모적인 노력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을 묻는 후배들에게 꼭 연애를 해보라고, 그것도 아주 많이 해보라고 진심으로 권한다.
따뜻한 오후, 아내와 함께 벚꽃을 이제는 찾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본 후 들른 카페는 젊은 연인들로 가득했다. 테이블마다 흐르는 달달한 공기가 숨 가쁘게 좋았다. 신기하게도 대화하는 이들의 눈빛만 봐도 테이블의 맞은편 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그 애달픈 감정, 어디를 둘러봐도 봄이었고 찬란했고 화사했다. 사랑을 '한다'기보다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사랑을 '한다'는 말은 왠지 능동적이라서 이 압도적인 상태를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역시 사랑에는 '빠졌다'는 말이 제격이다. 우리는 왜 하필 물에 빠진 것처럼 사랑에 빠진다고 할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지용은 저서 《문제적 사랑》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한다.
"사랑에 빠지는 느낌'은 아마도 그때의 우리가 물에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려워하는 사람처럼. 평소의 통제력을 잃어버린 채 사랑의 급류에 휩쓸려가는 모습이라서가 아닐까." 그 급류 속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스캇 펙은 이를 "자아의 경계가 무너진 상태"라고 표현했다. 너와 나의 벽이 허물어지고 마침내 하나가 된 것 같은 착각, 혹은 기적에 머무는 상태. 이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느 한쪽이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멈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연애를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고작 얼굴 몇 분 보겠다고 몇 시간을 달려가고, 헤어지자마자 전화를 걸어 동이 틀 때까지 목소리를 나누던 그 멍청하고도 찬란한 시간들을. 이토록 비이성적인 몰입을 '빠졌다'는 말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더 많은 청춘이 이 기분 좋은 무력감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사랑은 이 고단한 현실을 기꺼이 버티게 하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힘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매사에 이성적인 필터를 끼우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는 사랑은 아무래도 순도가 떨어진다. 성격과 재산, 배경과 학력, 심지어는 성적 취향의 디테일까지 따져가며 안전한 선택을 하려 애쓰게 된다. 내가 아닌 타자를 조건 없이 온전히 좋아해 보는 일,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사랑받아 보는 일. 그 비이성적인 투신이 허락되는 시절은 생각보다 짧다. 사랑에 울고 웃으며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그 모든 소란스러운 과정은, 사실 신이 예비해 둔 '내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필수적인 예행연습이다. 그 파도에 기꺼이 휩쓸려본 사람만이, 마침내 도착한 영혼의 항구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연애를 권하는 이유는, 사랑이 내 좁은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 주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가 살아온 세월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이 내 안으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 내가 평생 발붙이고 살아온 세계는 고작 한 칸짜리 방만큼 좁았을지 모르나, 타인의 생애가 내 삶에 포개지는 순간 나는 내가 몰랐던 음악과 가보지 못한 골목, 무심코 지나쳤던 사회의 이면까지도 그의 눈을 빌려 선명하게 보게 된다. '나'라는 좁은 방 안에서 벗어나 타인의 우주를 여행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연애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또한 연애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다정한 거울을 마주 보는 일이다. 혼자일 때는 결코 마주할 수 없었던 나의 밑바닥을 연애는 가차 없이 보여준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옹졸한지,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헌신할 수 있는 고결한 존재인지도 연인의 눈동자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우리를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든다. 세상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눈에 비친 내가 조금 더 근사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기 위해 내 마음을 더욱 유연하고 여유롭게 하고, 더 나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랑이 가득 담긴 고운 언어를 고르는 과정은 소모적인 낭비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면모를 더욱 단단히 하는 뜨거운 수련의 과정이다. 당신이 최근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본모습은 무엇인가.
나 역시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다. 지금 떠올려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찌질하고 못난 순간들이 내게도 많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보다,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스스로 마주해야 하는 수치심이 더 길고 괴롭기도 했다. 그 모든 민망하고 불편한 계절을 함께 견뎌준 사랑했던 이들에게 이제야 뒤늦은 사과를 보낸다. 역설적이게도, 그리고 조금은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 형편없던 나의 시절을 통과하며 아주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었다. 실패한 연애는 나를 깎아내는 고통인 동시에, 나의 세계를 억지로라도 확장시키는 고난이기도 했다. 나를 거쳐간 그들은 나와의 불편한 기억을 디딤돌 삼아 더 좋은 사람 곁에서 평온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부디 행복해라.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모보다 상대방을 더 의지하게 되고, 세상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게 만드는 이 마법 같은 감정. 비록 현실은 팍팍하고 가성비를 따져야 하는 시대라지만, 가성비를 따질 수 없는 유일한 영역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울고 웃으며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평생을 함께할 '내 사람'을 찾아가는 중요한 삶의 여정이다. 그러니 기꺼이 그 급류에 몸을 던져보기를 바란다. 그 무모했던 시간들이 결국 당신을 얼마나 단단하고 깊은 사람으로 빚어낼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따뜻한 봄의 기운이 만연한 지금은 무언가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이 찬란한 계절에 당신이 시작할 사랑이 서로의 일상을 다정하게 보듬는 안온한 연애이길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랑이 앞뒤 재지 않는 화려한 불꽃이기를 더 간절히 바란다. 안온함이란 대개 격정적인 연소를 통과한 뒤에야 찾아오는 선물 같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타오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에게 곁을 내어주는 법을 배운다.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곁에 맑고 건강한 에너지가 머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내가 먼저 내 삶에 단단한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될 때, 우리는 상대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그에게 편안한 그늘을 내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연애란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라는 나무를 더 깊고 단단하게 키워내는 일이다.
이 부족한 글을 읽는 당신의 이번 봄이 찰나의 설렘을 넘어, 서로의 삶에 깊은 위로와 안식이 되는 찬란한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손을 맞잡고 걷는 그 길 위로 언제나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