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3월은 가장의 달력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분주한 달이다.
통장에서는 각종 교재비와 준비물 비용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집안의 공기는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팽팽하게 당겨진다. 우리 집의 3월은, 거실 한복판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새 학기 전날 밤, 거실은 흡사 패션쇼 대기실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둘째와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막내가 거실 한가운데 옷들을 펼쳐놓고 끝장 토론을 벌였다.
"언니, 이 코트가 나아, 아니면 셔츠 레이어드하는 게 나아?"
"첫날은 너무 꾸민 티 내지 마. 무심하게 입어야 기선제압이야."
둘째의 조언은 예리했고, 막내의 고민은 깊었다.
거실이 안방인 아내와 나는 소파 구석에 몰려 앉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 그 낯선 세계에 던져지기 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무장이 '옷'이라는 걸 알기에 우리는 잠자리를 펴는 시간을 기꺼이 늦췄다.
그리고 대망의 3월 첫 아침. 거실의 시계가 5시를 가리키기도 전에 불이 켜졌다.
거실 매트리스 위에서 눈을 뜬 나는 잠시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렸다. 거실 욕실 앞은 이미 줄이 서 있었고, 드라이기 소리가 정적을 깨며 거실을 가득 채웠다.
"아빠, 미안! 오늘 앞머리 진짜 중요하단 말이야."
막내가 까치집이 된 내 머리를 보며 속삭였지만, 목소리엔 이미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둘째는 거실 거울 앞에 붙어 서서 교복 깃을 수십 번 고쳐 잡았다.
평소엔 깨워도 대답 없던 아이들이 새 학기라는 이름 앞에서는 5시 기상도 마다하지 않는 전사가 된다.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아내와 나는 본의 아니게 그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받는다.
아이들이 화장품 파우치를 뒤적이는 소리, 가방 지퍼를 열고 닫는 소리, "실내화 챙겼어?"라고 묻는 다급한 속삭임들.
우리의 침실인 거실은 아이들의 '출전 준비소'가 되어 북적였다.
아내는 이불을 턱 끝까지 올린 채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 거실은 3월만 되면 공항 터미널 같네."
나는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50대의 몸은 5시 기상이 버겁지만, 새로운 학년으로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국 한 그릇이라도 먹여 보내고 싶은 것이 아빠의 계산이다.
거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옷매무새를 다듬는 아이들의 분주함이, 다른 한쪽에서는 밤새 우리의 온기를 품었던 매트리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드디어 현관문이 열리는 시간.
"다녀오겠습니다!"
전날 밤 그토록 고민하던 옷을 입고, 새벽부터 공들인 얼굴로 아이들이 나선다.
문이 닫히고 나면 거실은 다시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분홍빛 빗 하나,
삐뚤어진 실내화 가방 봉투만이 방금 지나간 폭풍 같은 아침을 증명한다.
아내와 나는 다시 거실 매트리스에 앉았다.
"이제 우리도 시작이네."
아내가 달력의 3월 칸을 보며 말했다.
학기가 시작된다는 건, 아이들이 한 뼘 더 큰 세상으로 나갔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만큼 더 단단히 거실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거실은 우리 방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꿈을 꾸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광장이다.
비록 5시부터 잠을 설쳐야 하는 '개방형 침실'일지라도, 그 분주한 소음 속에 아이들의 성장이 담겨 있다면 나는 내일 아침에도 기꺼이 거실의 불을 제일 먼저 켜는 사람이 되고 싶다.
3월의 첫 주. 거실엔 여전히 아이들이 흘리고 간 설렘의 잔향이 남아 있다.
나는 조용히 매트리스를 접어 벽에 세웠다.
오늘도 집은 무사히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