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식혜 이야기

스트레스 없는 설렘

by 운촌

식혜 이야기


첫 수업 주제를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학교로 오는 길에 500mL 비락 식혜 7병을 샀다. 식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식혜 만드는 방법이야 나의 학생들이 선수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수십 번은 만드셨을 거다.


친숙한 소재 식혜로 경험에서 끄집어내어 말하기, 글쓰기, 간단한 과학 원리, 수학 계산 등을 해 보려고 한다.

나눠드린 비락 식혜를 맛있게 먹으며 식혜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부터 발표했다.


재료는 고두밥(어르신들은 죽어도 꼬두밥이라고 하신다.), 엿기름(어르신들은 죽어도 여찔금이라고 하신다.), 설탕 등등


다음은 식혜 만드는 방법을 다섯 단계로 정리해 보도록 했다.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니 내가 옳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맛있다!! 하며 한참 동안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런 다음 다섯 단계의 과정을 글로 써보게 했다. 당황하신다.


역시 말로 하는 것은 모두 선수였지만 글로 쓰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말씀하시면 내가 칠판에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써 나갔다.


엿기름 속에 있는 아밀레이즈 효소나, 효소의 최적 온도, 다당이 이당으로 분해되어 밥알이 동동 뜨게 되는 과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싶어서 죽는 줄 았았다. 아니, 못 참고 쪼금 설명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엿기름 속에 있는 아밀레이즈 효소 따위는 하나도 안 궁금하다. 밥에 들어있는 다당이니 이당이니 그것도 관심 없다. 그냥 틀리지 않고 칠판에 적힌 글자들을 노트에 적느라 나의 설명은 하나도 안 듣는다.


역시 읽고 쓰는 것이 제일 문제다. 과학과 수학은 관심 없다. 그분들은 안 틀리게 읽고 안 틀리게 쓰는 것이 제일 절박하다.


나는 또 수학을 가르치고 싶어 식혜 한 병의 부피가 500ml고, mL는 부피의 단위임을 설명했다. 500mL짜리 7병이 있으면 전체는 얼마일까요? 하며 곱하기도 하고 그것을 다시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지 못한 의욕만 앞선 교사의 욕심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mL를 그리는 데도 그분들은 한참이 걸렸다. 아직 알피벳을 모르시는 거다. 500미리 우유, 500미리 맥주...... 하며 말했던 미리가 mL임을, 부피의 단위임을 오늘 처음 배우셨다.


곱하기는 다음 기회에......

큰 수 나누기는 다음 기회에......


첫 수업을 하며 학생들의 읽기와 쓰기 수준을 파악한다. 사칙연산의 수준도 가늠해 본다. 30년 넘게 교단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지만 학습자가 달라지고 학습자의 목표와 간절함이 달라졌으므로 난 다시 초보가 된다.


새로운 시작!!! 가슴 설렌다.


스트레스 없는 설렘!!! 참 좋다.

KakaoTalk_20260217_210430890_04.png 그림 by 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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