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말씀을 한 데 모아보니

성경독후감 2. 복음서를 한꺼번에 읽어보니

by 김은식

신약을 읽기 시작하면 곧 지루함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흔히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가 누구를 낳고 …’라고 표현하는 종류의 지루함이다. 물론 비슷한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공관복음서 세 권(마태, 마가, 누가)이 연달아 놓여 있어서 그런 느낌을 주는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낳는 이야기를 넘어가고, 각 권의 복음서 나머지 부분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은 이어진다. 언젠가 날 잡고 네 권의 복음서를 한꺼번에 읽어낸 뒤에야 그것이 예수께서 몇 가지 말씀을 반복해서 하시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태·마가·누가·요한, 네 권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실제로 하신 말씀만 한 데 모아 읽어보기로 했다. 예수는 어떤 이야기를 가장 자주, 가장 집요하게 반복했을까? 예수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기적의 종류를 분류하거나 비유를 주제별로 정리하지도 않았고, 그저 거칠게 말씀의 주제와 결론 중심으로 메모하면서 정리를 해봤다. 사도들의 해석과 전언도 다 빼고, 예수가 직접 입으로 내뱉은 문장들만 따라가며, 반복되는 어휘와 명령, 호소와 경고에 밑줄을 그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말들은 계속 겹쳐졌고, 어떤 주제들은 변주를 거듭하며 되돌아왔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네 가지, 넓게 잡아도 다섯 가지 정도였다.


첫째는 믿으라는 말씀이었다. 물론 믿으라는 대상과 내용은 몇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겹치며 모이는 것은 있었다.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예수가 반복해서 말한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신뢰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귀하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말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하나님이 너희를, 그러니까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 아버지가, 또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어라.


둘째는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너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당연히 너희도 서로를 사랑해야 하지 않느냐는 가르침. 혹은 이웃은 물론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급진적인 요구였다. 예수에게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이었고, 선택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누가 옳은가를 따지기 전에 누구 곁에 설 것인가를 묻는 말씀이었다.


셋째는 실천하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는 틈날 때마다 말과 행동의 어긋남을 질책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 “열매 없는 나무”, “반석 위에 짓지 않은 집” 같은 비유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옳은 말을 아는 것과 옳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예수는 집요할 정도로 강조한다.


넷째는 기도하라는 말씀이었다. 즉, 하나님과 소통하라. 예수는 제자들에게 복잡한 기도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직접 말하고 묻고 구하라고 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통로였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니,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기도는 말하자면 하나님과 사람을 묶는 끈이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안전장치라는 의미로 읽혔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 모든 말씀을 관통하는 배경으로 하나님 나라가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뚜렷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믿음과 사랑, 실천과 기도가 모두 하나님 나라라는 현실과 배경을 전제로 이야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서 그 앞뒤의 에피소드를 보니,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예수님은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를 이렇게 반복해서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거듭 설명하셨구나.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과 제자들은 저렇게나 엉뚱하게 듣고 저렇게나 딴소리를 하며 저렇게나 철없이 굴었구나. 문득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고 짜증나고 거듭 좌절하셨을지 상상이 됐고, 그래서 혼자 계실 때 푹푹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대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2000년의 시간을 건너 그의 말씀을 쥐고 사는 나 역시 그를 좌절시키는 또 한 사람임도 함께 느껴졌다.


나는 이 연재에서, 이 네 가지(혹은 다섯 가지) 말씀을 중심으로 성경을 다시 읽어보려 한다. 이것은 신학적 정리를 시도하는 작업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을 기준 삼아, 내가 성경을 읽으며 무엇을 느꼈고, 어디서 멈칫거렸으며, 어떤 질문 앞에 서게 되었는지를 기록한 성경 독후감이다. 정답이 아니라 어리석은 한 사람이 피곤한 스승 예수 앞에서 그 좌절감과 우울감을 느끼다가 문득 떠올린 생각의 흔적을 따라가는 글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짚어두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읽다보니 의외로 예수님의 말씀이 복잡하지는 않더라는 것. 그리고 50년 동안 여러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듣고 또 들었던 이야기와 빈도와 강조점이 아주 정확히 겹치는 느낌은 아니라는 것.


물론 내가 정확히 읽었고 목사님들은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중 설교 시간을 통해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이 있었을 수도 있고 여럿이 더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으리라만, 어쨌든 좀 덜 다뤄지거나 덜 강조된 말씀 중에서도 우리가 읽고 나눠볼 이야기가 좀 있지 않나 싶더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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