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배가 뭔데?

우리 동네 보안관 1

by 신비

딸배, 딸배

!!!!!!!!!


쉽게 말하는데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나요?


그 단어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왜 조롱이 되었는지,
누구의 얼굴 위에 붙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요?


몇 초짜리 영상 하나.
차 사이를 파고드는 장면.
신호를 무시하는 오토바이 한 대.


그 몇 초가
수만 명의 라이더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합니다.

저러니까 딸배지.


묻겠습니다.


전 국민이 쓰는 배달 어플.

하루에도 수없이 누르는 주문 버튼.


최대한 빨리요.


몇 시 몇 분 까지요.


그 한 건의 배달을 완료하면
라이더 손에 얼마가 남는지 아나요?


수수료를 떼고,
보험료를 내고,
기름값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몇 천 원이라는 걸
알까요?


그 몇 천 원을 벌기 위해

경쟁을 하면서,
빗길을 달리고,
눈길을 버티고,

차 사이에서 숨을 고른다는 걸
아나요.


앱 안에서는 단순합니다.


조리 중.
배달 중.
도착 예정 시간.


늦어지면
우리는 초조해집니다.
짜증이 먼저 납니다.


비 오는 날 사고가 나
음식을 배송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한 사람을 생각하기보다
저녁이 늦어진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늦어요?


환불해 주세요.


음식은 그냥 먹을 테니 환불요청합니다.


그가 다쳤는지보다
식은 음식이 먼저입니다.


본인 사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같은 빗길, 같은 밤.
문을 열며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요.

못 드시겠으시다면 환불 처리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이 빗길에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빗길에 고생 많으셨어요, 기사님.
조심히 다니세요.


또는 작은 음료 하나,
작은 간식 하나를 건네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 한마디에
라이더들은 놀랄 만큼 감동합니다.


왜일까요.


욕은 익숙해졌지만
존중은 낯설어졌기 때문입니다.


문 앞에서 들었던 말도 있습니다.


직접 받을게요.

카드 요청.


주문 메모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아파트 12층.

엘리베이터는 늦었고,
비에 젖은 비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기다린다.


핸드폰 화면에는
이미 다음 배달완료 시간이 잡혀 있다.
도착 예정 시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분.
4분 38초.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렀다.

마음은 급하다.
예정 시간까지,
가지 못하면 가맹점에 죄송하고,

환불 우려까지 염려해야 한다.


뒤에 배달이 밀리면
안 된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때 안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삼촌 배달 왔어.
기다리시잖아. 카드 빨리 줘.


다행이다.

심장이 잠깐 멈춘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비에 젖은 옷이 점점 차가워진다.
휴대폰은 또 한 번 진동한다.


, 기다리라 해."


공부 못하면 저렇게 배달해야 돼.
빨리 먹고 공부해.


그 말을 듣고 서 있는 라이더는
대꾸하지 않습니다.
그저 음식을 건네고 돌아섭니다.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을 전하며.


왜 비난을 받았는데 화를 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야 하는 걸까요?


배달을 한다고 해서, 누가 이 라이더의 인생을 단정 짓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는 공부를 못해서

오토바이에 오른 걸까요?


아니면

살기 위해,

책임지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걸까요.


이 선택이 쉬웠을까요?


누구나 딸배소리 들을 짓을 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은 사고가 두렵습니다.


다치면 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몇의 장면으로 모두를 묶어버립니다.


딸배.


그 단어를 던지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누르는 버튼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출발 신호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작은 말 한마디가

그 하루를 버티게 한다는 것을.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나는 모든 라이더를 무조건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위험하게 운전하고,

보행자를 위협하고,

신호를 무시하며


타인의 안전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은

분명 비판받아야 합니다.


정말 ‘딸배 소리’를 들어도 마땅한 행동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몇몇의 무책임이

모든 사람의 이름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건 비판이 아니라 낙인이 됩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지적하되,

사람 전체를 지워버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우리는 시스템이 만든 속도는 외면한 채

그 속도를 견디는 사람만 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빠르길 바라면서

위험하다고 욕하고,


편리함은 누리면서

존중은 아끼고 있지는 않습니까?


빠르게 배달 요청을 해놓고

카드 결제라서 직접 받아야 한다고 해놓고

막상 문을 열지 않으면

그 몇 분은 전부 라이더의 부담이 됩니다.


그 몇 분을 만회하기 위해

다음 길에서 속도를 올린다는 사실,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더 급해지고,

그래서 더 위험해집니다.


이 구조가

위험을 만든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지연.’

‘고객 미응답.’


하지만 도로 위에서는

그 지연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는 속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만 봅니다.


저러니까 딸배지.


정말 그 장면만 보실 겁니까.


딸배라는 단어를 던지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그가 정말 비난받아야 할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쉽게 한 덩어리로 묶어버린 건 아닌지.


이 책은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니라,

무책임한 낙인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차이를

구분해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