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의 배신

0.1mm의 선전포고

by 연휘

임지성은 ‘각(角)’에 목숨을 거는 남자였다.


그의 아침은 알람 소리가 아닌, 정적 속의 강박으로 시작된다.


침대 옆에 놓인 슬리퍼는 정확히 11자 평행을 유지해야 했고, 욕실의 칫솔들은 키 순서대로 서 있어야 했다.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 지독한 습관은 그를 업계 최고의 건축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를 단 한 순간도 편히 쉴 수 없는 피곤한 인생으로 몰아넣었다.


지성에게 ‘수평’은 물리적 상태를 넘어선 신념이었다.


그것은 세상이 아직 나의 통제 아래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날 아침도 완벽한 대칭을 확인하며 넥타이를 매듭지은 참이었다.


출근 전, 마지막 서류를 챙기기 위해 거실 끝에 위치한 서재 문손잡이를 돌리던 순간이었다.


쩍—


손바닥을 타고 불쾌한 저항감이 전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공기처럼 매끄럽게 맞물리던 티크 원목 문이 걸려 멈춰 섰다.


지성은 멈칫했다.


다시 문을 뒤로 당겼다가 밀었다.


끼이이익—


날카로운 마찰음이 정적을 찢었다.


문틀과 문짝이 부딪히며 내는 비명이었다.


지성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는 슬리퍼를 신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문틈 사이를 예민하게 훑었다.


“경첩이 풀린 건가?”


그럴 리 없었다.


나사는 단단했다.


문제는 문이 아니라 바닥이었다.


수천만 원을 들여 깐 최고급 대리석이, 육안으로는 식별조차 불가능할 만큼 왼쪽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건축가인 그가 가장 혐오하는 재앙,


"부등침하(不同沈下)"


: 지반이 약한 쪽의 땅이 꺼지며 건물의 뼈대를 뒤트는 현상.


...


건물 전체가 함께 내려앉는다면 수평이라도 유지하겠지만, 한쪽만 야금야금 꺼져 내려가는 침하는 결국 모든 수직과 수평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말도 안 돼. 내가 직접 암반까지 확인한 땅이야. 이 땅이 나를 배신할 리 없어.’


지성은 수평계를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액체 속의 노란 공기 방울이 정중앙을 비웃듯 한쪽 구석으로 비겁하게 치우쳐 있었다.


그 작은 방울의 움직임이 마치 지성이 쌓아 올린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선언처럼 보였다.


순간, 지성의 가슴 속에서도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한 허무가 차올랐다.


심장이 엇박자로 뛰며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내가 세상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무너지는 순간 찾아오는, 거대하고 파괴적인 공포.


그것은 건물의 하자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근본부터 전복되고 있다는 전조였다.


“아니야, 내가 고칠 수 있어. 나사만 조이면 돼.”


지성은 서랍에서 드라이버를 꺼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드라이버를 움켜쥐었다.


그는 경첩의 나사 홈에 쇳날을 박아 넣고 온 힘을 다해 돌렸다.


끼릭, 끼리릭.


쇠와 쇠가 맞물려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성은 나사산을 뭉개버릴 기세로 드라이버를 밀어붙였다.


문틀을 억지로 비틀어서라도 이 기분 나쁜 기울어짐을 교정해야 했다.


내 인생엔 단 0.1mm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지성의 신앙이자,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뼈대였다.


하지만 그가 나사를 조일수록, 거실 통유리창 너머의 스카이라인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세상의 모든 수평이 무너지고,


지성은 발밑이 거대한 싱크홀처럼 꺼져 내려가는 지독한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닫혀야지... 닫히라고! 왜 안 닫혀!”


그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쾅 닫았다.


하지만 문은 닫히지 않았다.


억지로 조여진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고, 문틀은 지성을 비웃듯 더 큰 균열을 드러냈다.


기울어진 바닥 위에서, 천재 건축가 임지성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평생 공들여 세운 그 어떤 벽도, 사실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지성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드라이버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챙그랑.


신경질적인 금속음이 고요한 거실을 채웠다.


인생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었다.





[연재 안내]
​본 소설 《부등침하: 수평의 배신》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이번 주만 특별히 금요일(27일) 오후 5시에 2화를 미리 공개합니다.


​무너진 기초 위에서 다시 긋는 단 하나의 선, 지성의 사투를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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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