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아웃

무너진 세계관

by 연휘

사무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정교했다.


하지만 지성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까부터 기묘한 각도로 일렁이고 있었다.


지성은 책상 위에 놓인 설계도를 거칠게 펼쳤다.


수백억짜리 프로젝트의 운명이 걸린 최종안이었지만, 오늘따라 선들이 검은 실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발단은 고작 0.1mm의 틈이었다.


처음엔 그저 거실 바닥의 작은 흠집이라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갔다.


‘이 틈이 사실 지반 침하의 전조라면? 기초 공사가 잘못되었다면? 결국 이 집이 무너져 내린다면?’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성의 커리어와 인생 전체의 붕괴로 확장되었다.


똑— 똑—


벽시계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렸다.


지성은 만년필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가까스로 이성을 붙들었다.



“이 대리, 자료 폰트 9포인트에 장평 95%로 맞추라고 했을 텐데. 이 작은 간격 하나가 전체 도면의 신뢰를 깨뜨린다는 거 몰라?”


지성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메스처럼 직원의 자존심을 도려냈다.


사실 그는 직원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세계가 기울고 있다는 공포를 감추기 위해, 아주 작은 오차라도 ‘통제’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이다.


직원이 나가고 혼자 남은 사무실, 지성은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했다.


‘아니야, 지성아. 넌 최고 전문가잖아. 그건 그냥 노후 주택의 흔한 균열일 뿐이야. 진정해.’


억지로 생각을 고쳐먹자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래, 별일 아닐 것이다.


그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며 발표 자료를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사건은 그 복도에서 터졌다.


회의실로 향하는 긴 복도 벽면, 매끄러운 유리 안쪽의 디지털 디스플레이 위로 붉은색 자막의 뉴스 속보가 흘러가고 있었다.


[속보] 도심 지반 침하로 인한 빌딩 붕괴 사고 발생, 인명 피해 확인 중...


순간, 지성의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잠재웠던 불안이 아침의 그 0.1mm 균열과 순식간에 강력한 자석처럼 결합해버렸다.


지반 침하... 빌딩 붕괴... 뉴스 속의 그 끔찍한 단어들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연희동 자신의 집에서 일어날 미래의 예고편처럼 보였다.


‘뉴스에 나올 정도면... 우리 집도 안전할 리 없어. 지금 이 순간, 내가 없는 사이 거실이 주저앉아 연우와 아내가 그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 처박힌다면?’


불안은 이제 비논리적인 광기가 되어 지성의 전신을 훑었다.


기사와 균열, 그리고 가족의 생사. 이 세 지점이 하나의 비극적인 설계도로 완성되자 지성의 뇌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위이잉—


프로젝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거대한 제트기 엔진 소리처럼 귓전을 때렸다.


수십 명의 투자자가 지성을 주목했다.


그는 단상에 올라 리모컨을 눌렀다.


“이번 설계의 핵심은... 하중의 완벽한 분산과... (쿵, 쿵, 쿵—) 안정성...”


안정성.


그 단어를 뱉는 순간, 억눌러왔던 뉴스 기사의 잔상이 폭발했다.


화면 속 빌딩의 수직선들이 피처럼 번져 내리더니 기어코 주저앉기 시작했다.


연쇄 붕괴.


그 환영은 멈추지 않고 연희동 집으로 뻗어 나갔다.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연우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이 설계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내가 그 0.1mm를 막지 못해서 내 딸이 죽어가는구나.


“소장님? 임 소장님!”


누군가의 목소리가 수면 아래의 외침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지성은 숨이 턱 막혔다.


공기가 사라진 진공 상태.


시야가 하얗게 멀어지는 화이트아웃(White-out)이 시작되었다.


지성은 자신이 평생 떠받치고 있던 그 무거운 설계도 뭉치들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의 하중에 깔려 질식해가는 자신을 목도했다.


툭—


단상을 잡고 있던 지성의 손등 위로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아침에 쏟아진 우유 방울처럼 차갑고 무심했다.


지성은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유능함으로 세상을, 그리고 가족을 지탱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건축가는 정작 자신의 호흡 하나 붙잡지 못한 채 차가운 회의실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쾅—


지성의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조명이 멀어졌다.


그의 감긴 눈앞엔 여전히, 거실 바닥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까지 집어삼킨 거대한 균열이 아가리를 벌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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