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할 수 없는 광야
고향 집의 온기조차 수치스러워 도망치듯 들어온 곳이었다.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언덕 위, 20년 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 폐교.
지성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더 이상 등수를 매기지 않고,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이 버려진 공간이 설계도를 잃어버린 자신의 초라한 내면과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성에게 허락된, 오직 신과 단둘이 마주 서야 하는 ‘광야’였다.
지성은 차 트렁크에서 독일제 레이저 수평계를 꺼냈다.
수억 원대 프로젝트를 완수할 때마다 그의 곁을 지켰던,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신(神)의 대리인이었다.
그는 먼지 자욱한 교실 한복판에 삼각대를 세우고 전원을 켰다.
지성에게 이 장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무너진 자신의 세계를 다시 수직으로 세워줄 유일한 ‘율법’이었다.
90도의 직각을 맞추지 못하면 파멸할 것이라는 공포가 그를 다시 장비 앞에 세웠다.
띠익—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고 붉은 레이저 선이 교실 벽을 날카롭게 훑었다.
지성이 기대한 것은 반듯한 수평선이었으나, 붉은 선이 가리킨 현실은 처참했다.
썩은 기둥은 레이저를 비웃듯 오른쪽으로 굽어 있었고, 내려앉은 천장은 수직의 질서를 거부한 지 오래였다.
지성은 그 붉은 선 끝에서 자신의 폐부를 찔러오는 서늘한 자각을 느꼈다.
‘내가 고칠 수 있을까? 아니, 나 하나도 못 고쳐서 여기로 도망쳐온 내가 대체 무엇을 바로잡겠다는 건가.’
그것은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었다.
평생 '수평'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온 건축가가, 정작 자신의 삶이 지독하게 비틀려 있었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 찾아오는 거룩한 두려움이었다.
내 힘으로 세상을 규격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율법)이, 썩은 나무 기둥 하나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찰나였다.
쾅—
거친 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지성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장비를 감싸 쥐었다.
문가에는 흙 묻은 장화를 신은 노인이 서 있었다.
이 동네의 이장이었다.
“아이고, 저 빨간 불빛은 뭐여? 쥐 잡는 거여? 아니면 클럽이라도 차릴라고?”
이장은 지성이 신성시하는 레이저 선을 흙 묻은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들어왔다.
지성의 미간이 좁아졌다.
“...조심해 주십시오. 수천만 원짜리 정밀 장비입니다.”
“장비? 에이, 이런 고물 건물에 뭔 장비여. 임 소장, 저 굽은 나무가 왜 저러고 있는 줄 알아? 50년 동안 저 자리에서 애들 비 안 맞게 하느라 휘어버린 거여. 굽은 놈은 굽은 대로 쓸모가 있는 법인디, 서울 양반들은 죄다 반듯한 것만 찾어.”
이장이 툭 던진 말은 지성의 가슴에 날카롭게 박혔다.
지성에게 '굽은 것'은 도려내야 할 암세포였지만, 이장의 세계에서 그것은 사랑으로 시간을 견뎌낸 훈장이었다.
이장은 흙내와 비릿한 감자 냄새가 올라오는 검은 비닐봉지를 지성의 구두 앞코에 툭 내려놓고는 미련 없이 나갔다.
“가져가. 찌부러진 놈들인디 맛은 기가 맥혀.”
혼자 남은 지성은 붉은 레이저 선이 그 투박한 감자 봉투 위를 가로지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반듯한 직선이, 세상에서 가장 뒤틀린 생명을 비추고 있었다.
지성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폐교를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쳐질 수 없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하지만 지성은 다시 망치를 쥐었다.
아직은 항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썩은 기둥을 갈아내고 다시 수직을 세우면, 자신의 무너진 세계도 예전처럼 견고해질 것이라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쾅—!
낡은 나무를 향해 내리친 첫 번째 망치질의 진동은 기둥이 아니라, 지성의 텅 빈 가슴 안쪽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적막한 교실에 울려 퍼진 그 둔탁한 소리는 건물을 수리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박제되어 있던 지성의 자아가 처음으로 비명을 지르며 균열을 내는 소리였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차가운 달빛이 폐교의 뒤틀린 그림자를 마룻바닥 위에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설계도도, 조력자도 없었다.
세상의 수업은 끝났고, 광야의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성은 떨리는 손으로 망치를 고쳐 쥐며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완벽한 설계자가 되길 꿈꿉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반듯하게만 살 수는 없습니다. 90도의 직각 속에 나를 가두려 할수록, 불안의 하중은 우리를 더 깊이 짓누를 뿐입니다.
50년을 견디느라 휘어버린 나무가 누군가의 비바람을 막아주는 거룩한 훈장이 되듯, 우리의 부서짐 또한 실패가 아닌 살아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일지 모릅니다.
나의 연약함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비뚤비뚤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낼 때 비로소, 우리는 나를 짓누르는 불안으로부터 첫 번째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완벽이라는 무거운 설계를 내려놓고 지성이 마주한 이 광야의 수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90도 밖의 무질서 속에서 지성이 찾아낼 '진짜 조화'를 기대하며, 2부에서 계속해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