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넌트 에일리언
취업이민 영주권에는 EB1,2,3 이렇게 3개의 카테고리가 있는데요, 당시에는 보통 가장 많이 진행하는 EB3가 거의 정체 중이었어요. EB1은 제가 자격이 되지 않았고요. 다행히 제 경력이면 EB2를 진행해 볼 수 있다고 해서, EB2로 진행하게 되었죠. 하지만 당시 제 연봉이 조금 적은 편이어서 혹시나 그게 문제가 될까 봐 무척 마음 졸이며 신청했어요.
그렇게 영주권을 신청하고 기다리던 중, 2007년 1월 딸아이가 태어났어요. 처음에는 출장으로 오게 된 미국에서, 이제는 영주권을 기다리는 가운데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거지요. 새벽에 시작된 진통에, 도와주시려 오셨던 장모님과 아이를 태워 병원으로 가던 길, 병원에서 제가 주차하는 동안 아내와 장모님이 먼저 들어가시던 장면, 계속되는 진통을 견디며 무통주사 맞기를 기다리던 새벽, 그리고 마침내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자르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밤새 주무시지도 못하신 장모님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병원으로 돌아와 작은 병원 입원실에서 아내와 아기와 함께 첫 밤을 보내는데,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 해야 하나 두려웠던 기억도 나네요.
이전 글에서 돈을 아끼려고 회사에서 점심을 지어먹었다고 했잖아요? 물론 가끔은 나가서 사 먹기도 했어요. 차이나타운의 한 딤섬집을 좋아해서 일본인, 한국인 동료들과 종종 나가서 먹고 오곤 했지요. 이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어요. 그날의 일기입니다.
점심때 회사 사람들과 함께 차이나타운에 가서 딤섬을 먹고 왔다. 회사에 돌아오니 USCIS로부터 이메일이 와있었다. Notice mailed welcoming the new permanent resident.
영주권 발급을 알리는 우편물이 발송되었다는 거였어요. 2002년 11월 출장으로 입국한 지 4년 4개월, 2003년 4월 취업비자로 입국한 지는 4년 만에 permanent resident, 영주권자가 되었습니다.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려 몇 년 더 일하려고 했는데, 몇몇 동료들이 권고사직되는 등 회사 사정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저도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헐리웃 영화의 VFX 작업을 하던 Rhythm & Hues, 애니메이션 회사 DreamWorks, Disney Animation, 그리고 Irvine에 있는 게임 개발사 Blizzard, 또 다른 게임 회사인 Midway LA, Heavy Iron Studios, 그리고 Disney 산하의 게임 스튜디오인 Disney VR Studio 등등.
이중에 MidWay, DreamWorks, Disney VR, Heavy Iron과 전화 인터뷰를 했고요, Midway는 떨어졌고, Heavy Iron은 프로그래밍 테스트를 하기로 했고, Blizzard는 마침 그때 한국에서 있던 행사 때문에 Blizzard 관계자들이 자리를 많이 비워 전화 인터뷰가 5/31로 미뤄진 상황에서 Disney VR Studio는 전화 인터뷰 합격, 회사를 방문해서 in house 인터뷰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Disney VR Studio에 방문해 보니, Square USA 출신으로 제가 일하던 S사에서 일하셨던, 저랑 일한 시기가 겹치진 않지만, 제가 이전 회사 다닐 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서 안면이 있던, 한국분 L 씨가 계셨어요. 그래서 면접을 마친 뒤, 그분과 회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회사가 무척 좋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실제로 면접하면서 제가 느낀 분위기도 역시 좋았고요. 합격하게 되면 다음 주 중에 연락을 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백일 기념으로 스튜디오 사진 촬영을 하기로 해서 LA 다운타운에 있는 사진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있었는데 Disney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를 채용하기로 했다면서 이런저런 다음 절차를 안내해 주는 통화였어요. 그런데, 워낙 큰 회사고 하다 보니까 처음 3개월은 계약직으로 시작하고, 그 뒤에 잘 적응하면 정직원으로 전환한다는 거예요. 다들 그렇게 한다면서. 그때 제게 들었던 생각은, "그러면 아이 건강보험은 어떻게 하나?" 뿐이었습니다. 계약직 기간에는 건강보험을 지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지금도 궁금한데, 그런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정직원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입사하지 않겠다고요. 수화기 너머의 HR 직원은, 기대하지 않은 반응에 무척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내부에서 상의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알겠다고 하면서 통화를 마무리했지만 무척 긴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날, 다시 Disney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첫날부터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요. 그리고 입사일을 조율한 뒤, 다니던 회사에 이야기했는데 당시 상황이 어렵던 회사는 제 퇴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2007년 6월 11일 월요일부터 Disney에서 일하게 되어 9년 가까이 일하게 됩니다. Disney에서 보낸 9년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이렇게 저는 미국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