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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Jan 31. 2019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수 있는 미움 받을 용기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역사는 충언하는 자를 고귀하게 기록하고 존경심으로 기억하지만, 당시에 그러한 충언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성품이 대쪽 같다 한들, 생과 사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중국 진나라 말기에 충언을 하고서 목숨을 잃은 신하 한생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당시 초패왕(楚覇王)을 자처하며 천하통일 직전까지 내달렸던 항우가 한나라 유방에게 패해 결국 천하를 내주고 말았던 사건은 유명하다. 역사상 가장 의외의 결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생은 함양을 도읍으로 정하는 문제 때문에 항우에게 옳은 말을 하였다가 목숨을 잃고 만다. 반면 유방은 함양이라는 지역을 정복한 후 그곳이 마음에 들었지만 번쾌와 장량 등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간언을 경청한 뒤 그곳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전쟁을 즐겨 숱한 백성들의 목숨을 잃게 하고, 충언하는 신하를 잡아다 불에 태워 죽이는 게 낙이었다는 악마 같은 왕. 결국 신하인 무왕(武王)이 제후들을 규합해서 주왕을 징벌하였는데 당시 맹자는 이에 대해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과연 신하가 왕을 징벌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맹자는 현답을 내놓았다. “일부(一夫): 한 명의 남자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조선시대의 폭군 연산군에게 거침없이 직언을 하던 김처선 역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진 역사이다. 반면 숙종 시절, 어명을 받아 영남 지역을 1년간 암행하고 돌아온 이관명이 숙종의 잘못을 직언한 적이 있었다. 이때 다른 신하들은 그가 임금의 기분을 언짢게 하였으니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숙종은 5품 교리에서 2품 정경의 반열로 그를 승진시킨다.


이처럼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미움 받을 용기’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용기들이 모이면 세상이 바뀌고,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변화란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라도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그렇게 해야 그 모습을 지켜본 누군가가 동참해주고, 이러한 작은 목소리가 쌓이고 쌓여 큰 외침이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사회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지만…     


차별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커져 외침이 되고, 이 외침이 결국 변화로 이어지는 상황이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신하들의 충언들 역시 반드시 스스로를 위해서 올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내 나라를 사랑하였기에, 후손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기에 목숨을 건 충언이 가능했던 것이다.


차별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날, 이를 바꾸고자 하는 목소리와 외침, 그리고 행동들에 귀 기울임과 동시에 박수를 보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유교 문화권이라는 핑계 속에서 잘못된 악습을 이용하여 그동안 여성을 편견의 시각으로, 도구의 시각으로, 하대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인정과 반성이 전제되었을 때 사회가 변화할 수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공자께서도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라 말씀하셨다.




물론 잘못된 관행을 올바로 바꾸려는 노력이 정당한 가치를 훼손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한다거나, 독단적인 아집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만 옳고 타인은 모두 틀렸다는 사고방식은 더없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여성 편견의 시각을 평등으로 바꾸려는 노력 못지않게 아랫사람에 대한 하대 또한 변화시켜야 할 문화가 아닌가 싶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들어 공공장소에서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충돌은 서로 간에 혐오를 일으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가 이처럼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될 줄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누군가는 나서서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공존과 이해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직장에서의 문제도 심각하다. 자신의 감정을 쉴 새 없이 거칠게 표출하는 상사를 누가 존경하고 따르겠는가. 여전히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폭언, 폭행, 추행 등이 신문기사에 오르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변화의 움직임이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거대한 태풍으로 몰아쳐야 할 것이라는 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내 목소리를 정확하게 내는 데 주저하는 것이 사실이다. 피해를 입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저와 망설임, 충분히 이해한다. 그냥 약간의 피해를 보더라도 조용히 평범하게 살면 더 큰 손해는 입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를 희생시켜 가면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나’라는 인물이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모두들 철석같이 믿고 있기에 변화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본다.
타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용기 있게 말해본다.
그러한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용기를 갖고서 외쳐본다.
‘내부 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고,
권력을 가진 이를 중심으로 ‘배신자’라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뜨거워진 자신의 양심에
당당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당신이 있기에 세상이 올바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제대로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내가 곁에서 힘이 되어주겠다고.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라고.


변화와 차별에 맞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도 모르게 보수적인 마음가짐으로 변화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경험해와서인지 또다시 그러한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충분히 마음속에 품고 있다. 불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는 없어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겠노라고.


‘그래도, 그래도…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또다시 주저하고 고민하게 되는 나이인가 보다. 미안하다, 세상아.




스토리로 맹자 읽기


천여 명의 죄인을 대신해 외치다      


孟子曰: 仁之勝不仁也 猶水勝火, 

맹자왈: 인지승불인야 유수승화, 


今之爲仁者 猶以一杯水 救一車薪之火也, 

금지위인자 유이일배수 구일거신지화야, 


不熄則謂之水不勝火 此又與於不仁之甚者也, 亦終必亡而已矣. 

불식즉위지수불승화 차우여어불인지심자야, 역종필망이이의.           


<뜻풀이>
맹자가 말했다. “어진 것이 어질지 못한 것을 이기는 것은 물이 불을 이기는 것과 같으니 오늘날에 어진 것을 행하는 사람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 한 수레에 가득히 실려 있는 땔나무의 불을 끄려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불이 꺼지지 않으면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니 이것은 불인한 일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 심한 경우로 원래 그가 가지고 있는 어진 것마저 결국에는 잃게 된다.” — <고자 上> 




초나라 왕 유영과 그의 방사 안충, 왕평 등은 제멋대로 황제의 옥기와 도장을 제작하였는데 그만 그것이 고발돼 모반죄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방사 안충과 왕평은 심문을 받을 때 고문이 무서 워 이 사건에 무관한 몇몇 관원들을 끌어들였다. 당시 한랑이 이 사건을 심리하였는데 안충과 왕평이 적발한 것에 가짜가 있음이 의심되어 검토를 한 후 명제에게 보고하였다. 


명제는 한랑의 보고를 듣고 오히려 한랑에게 대노하여 그를 끌어내 곤장을 치게 했다. 한랑이 끌려 나가기 전 그는 굳세게 말했다. 


“저는 이미 일 년간 차사로 일했지만 아직도 소유의 간사한 자들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늘 죄인들 때문에 억울함을 당하여 멸족이 되는 재난이 있을 줄 압니다. 그렇지만 저는 할 말이 있습니다. 엄중한 것을 절대 가볍게 말하지 않으며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지 않으며 이렇게 하여야만 능히 너그러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고관대신들이 안건들을 확대해서 처리하는 것을 뻔히 알고 또한 억울한 사건과 잘못된 안건이 줄줄이 나오고 있음을 뻔히 알고서도 누구 하나 폐하 앞에서 그것을 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할 말은 다 했으니 폐하께 서 저를 처단하십시오!” 


명제는 한랑의 말을 듣고 한참 멍해 있다가 한랑의 말에 도리 가 있음을 깨닫게 되자 노기가 점점 사라졌다. 명제는 다시 명령 을 내려 한랑을 석방하게 했다. 이틀이 지난 다음 날, 명제는 친히 낙양 감옥에 가서 죄인들의 명단을 검사하고 천여 명이나 되는 수인들을 석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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