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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Feb 21. 2019

나는 오늘부터 진짜 마흔입니다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위클리 매거진 마지막 발행입니다. 총 15회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늘 뜨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이 아쉬워서 독립서점과 함께 북콘서트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인디밴드 체리립스와도 함께합니다. 

많이 많이 참석 부탁드려요.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op_hty&fbm=1&ie=utf8&query=%EC%B1%85%EB%B0%A9%EC%97%B4%EC%9D%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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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나이 40세를 이르는 말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음을 뜻한다. 이 말은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이야기에서 나왔는데, 공자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정립했다(三十而立)고 한다.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으며(四十而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60세에는 타인의 말을 받아들였고(六十而耳順),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맹자 역시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추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공손추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대신이 되셔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나라를 틀림없이 천하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답하였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다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불혹을 의미하는 마흔을 이야기할 때 이는 미혹됨이 없는 나이이기에 우리나라 대통령 피선거권이 마흔 이상이라는 해석을 들은 적이 있다. 마흔은 되어야 한 나라를 이끌 만큼 사고력을 갖춘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멀리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본인 인생을 책임지려면 역시나 마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쁜 마흔은 안 된다     


그런데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마흔이면 인맥을 넓히기보다 정리해야 하는 시기이다. 신체 및 정신 에너지를 분산하기에 조금씩 힘에 부치는 때이니만큼 다수의 넓은 인맥보다 소수의 깊은 인맥을 고민해야 한다.


사고가 났을 때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을 소수의 인맥을 깊이 있게 유지하는 것이 낫다. 보통의 인맥들은 ‘다음에 시간 날 때 가야지’ 하다가 결국 가지 않게 된다. 이런 얕아져 버린 인간관계에 실망하지 말고 가치 있는 인맥으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마흔이 되면 나잇살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구시렁거리는 입버릇도 심해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에 결국 ‘아재’, ‘꼰대’라는 폄하 발언이나 듣게 된다. 젊은 층과 무조건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현명하게 열어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입버릇이 계속되다보면 불평불만만 늘어나는 ‘나쁜 마흔’으로 보일 수도 있다. 20~30대까지는 실수를 용서해줄 수 있는 나이이다. 하지만 마흔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불평불만으로 인해 생기는 실수에 관대할 것이 아니라 냉정해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 습관화될 때가 더욱 무섭다.




호연지기를 핑계로 억지와 허세를 부리면 결국 비난만 받게 될 것이라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틀렸는데 나이를 핑계로 끝까지 우기지 말 것. 잘못은 곧바로 인정할 줄 아는 마흔이 진정 아름다운 불혹이다.


더불어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일을 잘 모르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꼭 말해야 한다고 교육시켜놓고, 정작 본인은 혼자서 끙끙 앓다가 주위 사람들의 가슴에 더 큰 대못을 박을 수도 있다. 패기나 도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더 이상 아니다. 제아무리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는 오늘날이지만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 하나쯤 있다면, 내 말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친구 하나쯤 있다면 도움을 요청해도 좋다.


한국인은 울고 싶을 때 잘 울지도 못해 속병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여 더 큰 병을 불러일으킨다. 울고 싶으면 속 시원하게 울 필요가 있다. 가슴 속에 마지막 남은 단 1그램이라도 다 털어버리는 것이 좋다. 충분히 비워줘야 새로운 것이 차곡차곡 쌓일 테니까. 그러니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믿을 만한 타인에게도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맹자 시대에는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뭐 어떤가. 남자는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이렇게 총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해도,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는 하루에도 세 번 이상 울고 싶을 때가 많다. 내가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때, 나를 두고 변하는 세상에 아찔함을 느낄 때 얼마나 눈물이 나겠는가.




과연 나는 마흔이 되어서 자신을 올바르게 붙들고 세울 수 있는 마음이 정립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작은 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를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비록 오늘날 100세,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마흔을 반평생 정도 살았다고 여길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철없이 행동할 것이 아니라, 철이 든 행동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 그런데 나는 왜 아직까지 철없이 행동하는 내가 좋을까. 이것도 문제란 말인가)



스토리로 맹자 읽기


충의를 다한 송나라 신하           


敢問夫子 惡乎長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감문부자 오호장 왈 아지언 아선양오호연지기. 


敢問 何謂浩然之氣 曰 難言也. 

감문 하위호연지기 왈 난언야.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 

기위기야 지대지강 이직양이무해 즉색우천지지간.             

        

<뜻풀이>
“감히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어느 부분에 자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맹자는) “남이 하는 말을 잘 알며, 내 마음 속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고 답했다. “다시 감히 묻기를, 호연지기가 무엇입니까”라고 하자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며 “지극히 크고 굳세며, 올바르게 길러진다면 온 천지에 가득 하게 된다”고 일렀다. — <공손추 上>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 문천상은 원나라 군대에 잡혀 원의 장군 장홍범에게 압송되었다. 그때 관원들은 그를 보고 문천상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라고 했다. 그러나 문천상은 무릎도 꿇지 않았고 절도 하지 않았다. 장홍범은 할 수 없이 예의를 갖추어 문천상을 빈객으로서 접견했다. 


또한 장홍범은 문천상에게 송나라 장군 장세걸을 향해 투항하라고 설득하는 편지를 쓰도록 했다. 그러나 문천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모를 보호해드리지는 못했을망정 남을 설득하여 부모를 배반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될 말인가.” 


장홍범이 여러 차례 강하게 압박하니 문천상은 부득이 시 한 수를 써서 건넸다. 그 시에는 ‘자고로 인생은 한 번 죽기 마련인데 단심(丹心)으로 청사를 비추리라’라는 구절이 있었다. 원나라가 그에게 투항하라고 수차례 권고하자 문천상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구하지 못한 신하로서 죽어도 그 죄가 있으니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고 소홀하게 목숨을 건지려고 하겠는가?” 


장홍범은 그의 어짊과 의로움에 감동하였지만 문천상을 연경으로 호송할 수밖에 없었다. 장홍범이 “당신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라고 묻자 문천상은 “송조의 은덕을 심히 받은 신하로서 어떻게 두 성(姓)을 모실 수 있겠는가? 나에게 죽음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까지도 옥중의 사졸들에게 태연하게 “나의 일은 끝났다!”라고 말하고는 남쪽을 향해 배례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난 후 처자식들이 와서 시신을 수습할 때 호주머니에서 그가 남긴 쪽지가 발견되었다. 


‘공자는 인(仁)을 말했고, 맹자는 의(義)를 강조했다. 오직 충의(忠義)를 다한다면 인(仁)도 잘한 것이 된다. 성현의 책을 읽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지금부터 마음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었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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