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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Oct 08. 2020

상간녀에 대한 복수를 꿈꿀때

이혼 후 이야기#. 23

전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은 엉뚱하게도 '희열감'이었다.

무엇엔가 감동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마침내 이 사람이 '쓰레기'일 거라는 증거를 찾아냈다는 느낌...


보물찾기 시간에 우연히 들춘 돌멩이 아래에서 두 번 접은 행운의 보물 쪽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동안의 내 직감이,

설마설마했던 내 조바심이

바보 같은 미련한 감정이 아니었음을 확인받는 순간인 것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멍청한 남자처럼 무릎을 꿇고 눈물 콧물 짜내며 싹싹 비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을 보니 결코 이혼하기는 글렀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남편의 외도는 내게 못 견디는 고통의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섣불리 따지다간 우스워질 것 같아

조용히 남편의 행적만 추적하고 있을 때


겉으론 티를 낼 수 없었지만

남편이 밥을 먹고 있는 것조차도 꼴 보기 싫어

지나가다가 발로 등을 찍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수시로 눌러야 했다.



늦잠을 자는 남편의 핸드폰을 가져가 몰래 열었다.


남자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가 있었다.

얼핏 보면 남자 이름인데 메시지를 보니 영락없는 여자의 문자였다.


내가 근무로 집을 비울 때는 미리 약속해서 만나왔고,

내가 갑자기 근무가 바뀌어 집에 있었던 날은

'오늘 보기로 했는데 갑자기 취소되어서 아쉽다' 문자가 와 있었다.


오늘 직장에서 회식이 있어 좀 늦을 거라는 전화를 내게 한 뒤 바로 그 여자와 통화한 흔적이 있었다.

약속 장소를 정하는 통화였을 것이다.


새벽녘

작은방의 옷을 걸어놓은 행거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남편의 핸드폰에서 그런 문자들을 마주했다.


절망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엄마를 찾느라 종알종알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핸드폰을 남편 옆에 살짝 갖다 두었다.




남편이 술을 잔뜩 먹고 퇴근한 어느 밤, 못 보던 재킷을 입고 있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 옷이 어디서 난 건 줄 아냐고 물었다. 

항우울제에 취해 비몽사몽 하던 나는 사준적이 없는 옷이라며 모른다고 했다.


남편은

'아는 후배가 도매로 싸게 물건을 파는 곳을 알아서 저렴하게 샀다.'라고 했다.


거짓말이란 걸 직감했다.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그 당시 나에게 말도 잘하지 않던 남편이 뜬금없이 옷자랑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 여자가 사준 것이었을 것이다.

 

"... 좋겠네."


 짧게 대답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그 여자를 찾아내 반쯤 죽여버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남편을 찾아가

비록 누워서 침 뱉기일지라도

'당신도 나처럼 얼마나 형편없는 배우자와 살고 있는지!'

동질감마저 사이좋게 나누고 싶었다.


아내의 불륜에 땅을 치며 우는 그 집 남편을 보는 것이,

그래서 그들의 관계에 대해 분노하는 또 다른 사람이 나오는 것이

내겐 보상인 것 같았다.


어디든, 지나가는 누구한테든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불륜의 증거를 곳곳에서 감지할 때마다

머리에 쥐가 나는 듯이 아득했다.



귀마개를 오래 하고 있다가 갑자기 뺄 때처럼

귀가 번쩍 뜨여 주변의 작은 소리도 고통스럽게 크게 들렸다.


조용! 조용 좀 하라고!! 제발!


귀를 막고 머리를 흔들었다.



법정에서 요구하는

모텔방의 현장이라던가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성행위를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불륜이라 의심한다는 남편의 조롱과, 아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 중이라 온전치 못하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소문을 들으면서 나는 더욱 그 여자를 향한 증오심과 복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깊은 관계인지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조롱하는 남편이라는 작자가 감싸고도는 그 여자,

그 여자를 절반쯤 죽여 놓아야만 네가 고통스럽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나와 마주한 그 여자는 시치미를 뗐고

나는 의심병 도진 여자가 되었다.


남편이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에게 지금껏 조롱당하고 무시당한 것도 억울한데  생판 모르는 여자 그것도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는 여자조차 나를 놀린다는 생각에 눈이 뒤집히고 있었다.


...

어떻게 하면 복수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여자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할까

온통 그 생각만 했다.


 무렵 상담치료를 받았던 상담 선생님께서는

내 시선 끝이 향하는 곳을 우려하셨다.


좋지 않은 방향이라고 했다.


"커스는 남편과의 관계 개선이에요. 지금 그 여자에게 복수한다는 것에 꽂혀서 정작 남편과의 사이는 점점 험악해지고 남편의 심기를 더 건들고 있는 형국이에요.

과연 이것이 도움이 될까요?"



남편의 심기?

내가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단 말인가.


억울해 죽겠는데,

초췌한 얼굴의 나를 비웃듯이 화려한 화장을 한 여자가 또박또박 받아치는데 내가 누구의 심기를 염려하고 조심한단 말인가!


그럴수록

어떻게 하면 이 여자에게 고통을 줄까를 매일 생각했다.

 

직장을 알고 있으니 전화를 걸어 민원을 넣을까 아니면 타이어에 펑크를 낼까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컴컴한 밤, 여자가 산다는 아파트로 갔다.

딱히 뭘 하고자 하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그 아파트 주차장에 가 있었다.

여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웠다.



이제 그 여자를 향한 분노나 저주는 거두세요.


...

 "선생님은 보살이신가요?"

 목구멍까지 말이 올랐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내게 놓여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 그 증오심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딱히 방법이 없음에도

이 모든 불행 중 하나인 지푸라기를 잡고 나는 울고 있었다.


엉엉 울었다.


이승에 원한이 가득한 귀신에게

이제 그만 잊고 저승으로 가라는 도사님의 말씀처럼 들렸다.


"그럼 나는요?

내가 억울한 건요?

남편이랑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이유로 그 여자를 그냥 두라고요?

그냥 얌전하게 보내주라고요?

그 여자가 나를 비웃었다고요.

내가 힘들다고요 선생님!"


아이가 떼를 쓰듯 울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악을 쓰는 나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을 접었다.

더 이상  그 여자에게 내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했다.


여자를 용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몰아내기로 했다.

담고 있으면 있을수록 썩는 부분이 점점 커져가는 듯했다.


풋내기 같은 나를 비웃었겠지만,

남편조차도 편들어주지 않는 불쌍한 애엄마로 보였겠지만, 직장에 찾아가 머리채를 잡고 흔들거나 그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면서 망신을 주고 싶었던 나의 소박한 계획은 실행하지 않기로 했다.


여자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 뻔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아이들을 두고 나올 수도, 아이들을 뺏어 나올 힘도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다.

 





지인 중에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사는 사람이 있다.

괴로워하다가 상간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그 여자가 혼쭐이 나게 소송을 하고

남편 면상을 시원하게 한대 갈기고

유책배우자임을 증명하여 쿨하게 이혼해서 나올 거면 충분히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남편과 살기로 했으면서

쉽게 이혼해주는 게 오히려 행복을 비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투쟁하듯 소송장을 썼다.


그 과정에서 집안의 분위기는 늘 살얼음판이었으며

이혼을 해주지도 않은 채 남편의 불륜을 낱낱이 공개하느라 시부모, 남편과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늘 불행하고 울 것 같은 엄마의 얼굴과,

각방을 쓰는 것도 모자라 집안에서 으르렁대는 부모의 모습을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결국 소송에서 이겨 위자료를 받아냈고 남편에겐 반성한다는 각서를 받아냈다고 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불행해 보였다.


니들 때문에 저런 형편없는 아빠와 살고 있는 엄마가 이렇게 이렇게 힘들어라는 표정으로 늘 호소를 하고 있었다.


겉으론 이상 없는 가족 같았지만 속은 짓무르다 못해 썩어내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녀의 삶이 행복할까....



나 역시

여자를 용서한다는 것 아니, 잊는다는 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정작 분노한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여전히 나에게 사과하지 않는 남편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들은 체하지 않던 남편은

그 여자를 건들면 나에게 속을 보였다.

그것도 아주 한심해하고 적대시하는 마음을 말이다.


내 살을 내가 찔러서 피가 나나 안 나나 확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복수에 집착할수록 나는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갔고 멘탈이 무너진 심약한 여자로 보이고 있었다.


남편과 여자에게 겨눈 칼끝을 노려보고 있을 시간에

그런 내 뒤에 서 있는

내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한번 더 보아주고

아이들과 한번 더 눈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고 했다.


전남편을 떠올리면

그 여자가 함께 생각이 난다.

내가 평생을 가지고 가야 하는 기억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 그나마 퇴색이 되어가겠지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두 사람 모두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며

지금 그들이 결코 나보다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 나를 위로한다.




전남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치욕은 

"개새끼!"라는 욕이 아니라


'이건 진심인데 나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

라는 솔직한 말이었다.



직접 하지는 못했다.

그건 너무 슬픈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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