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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15. 2020

남편의 어머니에게

이혼 후 이야기 #. 7

그곳은 따뜻하신가요.

어머니가 그렇게 찾으시던 하나님은 잘 계시는지요.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손녀들은 

이사 나가던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족하나마 제가 잘 키우고 있어요.


어머니. 

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도 아이들과 매일매일 통화하고, 종종 만나고 그래요.


아이들 편에 들어보니 제가 결혼했을 때 교복을 입고 있었던

어머니 손주들도 이제 하나 둘 결혼을 하면서 부모 곁을 떠나가네요.


애들 아빠가

저와 별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어머니를 큰집으로 모셔다 놓을 줄은 저도 몰랐어요.

제가 나갔으니 더 이상 어머니 스트레스 안 받으시게 더 잘 모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10년 넘게 다니셨던 인상 좋으신 목사님이 계시던 교회의 권사님이셨고, 동네에 5일장이 서면 갓 구운 재래김을 사러 나가셨고, 친구분들도 그곳에 계셨고, 딸들도 근처에 살아서 그곳이 참 좋으셨을 텐데 


대문을 나가면 다 똑같이 생긴 다가구 주택만 빼곡하던 

어디 나가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집만 지켜야 하는 낯선 동네, 큰아들 네로 보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머니는 거기에 모시면 안 된다고, 

병이 나실 거라고, 

교회 다니시면서 다리 운동하시고 친구분들과 단풍놀이, 시장 구경 다니시는 게 낙이라고 애들 아빠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아는 어머니는 갈 때마다 손을 꼭 잡아 주시며 잘해주시던 보청기 원장님을 뵈러 한 달에 한 번은 보청기 가게에 가셔야 했고, 수시로 막내딸 집에도 가고 싶어 하셨고, 꼭 우리 동네 그 의사 선생님한테만 가셔서 혈압약을 처방받아오셨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어머니는 저랑 살 때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이제 더 이상 원은 없어. 그저 깨끗하게 살다가 하나님 곁으로 가는 것 밖에. 절대 치매는 없어야지, 죽는 날까지 내 손주들 내 새끼들 선명하게 알아보다가 하루, 이틀만 앓고 하나님 곁으로 가야지."


칠순이 넘으신 연세에도 외출을 하실 때면 곱게 갈색머리를 빗으시고, 얼굴에 옅은 화장을 하시고 여름에는 모시 개량한복, 겨울에는 요란하지 않은 코트와 스카프를 멋스럽게 소화하시던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묶여 계시는 것을 상상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며느리인 저에게 미움을 사면서까지 지켰던 어머니의 아들과 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을까요. 

어머니는 그래도 원망 안 하시죠?

지금도 저는 가을에 홍시와 대봉이 나오면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항아리에서 조심조심 넣어두시면 그 거친 손이 생각이 나요.


곶감과 단감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나고 굴비를 보면 쑥 개떡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요. 

꽃게를 좋아하셨고 갈치를 좋아하셨고 여름엔 보신탕을 한 번씩 드셔야 기력을 찾으셨지요.


샤워를 하고 나오시면 뒷사람을 배려해 꼭 욕실에 물기를 닦아놓으셨고

수건이며 늘어난 티셔츠도 저보다 반듯하게 각을 내서 접어놓으셨지요.



아이들이 아빠와 통화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요. 

최근 몇 년 동안은 아들 외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채, 묶인 팔을 흔들며 소리만 지르셨다고 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 죽고 나서 걸어놓을 사진은 하나 쓸만한 거 있어야지, 애미야 사진 좀 찍어다오.' 하시던 어머니를 모시고 사진관에 다녀왔었지요, 칠순잔치 때 맞추셨던 그 고운 연보라색 한복을 입으셨고요.


할머니 장례에 보낸 아이들을 데리러 어머니가 계실 장례식장 앞으로 갔습니다. 

아주 잠깐, 

들어가서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라도 드려야 하나 생각했지만 아직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저를 반가워할 사람은 없어서 그냥 아이들만 데리고 돌아왔어요.


미웠던 막내며느리, 많이 서운하시죠 어머니?


더 견디지 못해서, 더 이해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어머니처럼 결국 누군가의 엄마였고

저도 어머니처럼 자식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였어요.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 어머니가 퍽이나 천국 가시겠다!"

라고 힘들 땐 나쁜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어머니는 하나님 곁에서 아주 평화롭게 잘 계실 거라는 걸요.

저에게는 미웠던 시어머니였더라도 하나님은 어머니 마음 알아주셨을 거예요.

여전히 그곳에서도 자식들을 걱정하실 테고, 기도하실 테지요.


그 시절 제가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듯,

저 또한 어머니의 아들에게 또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욕을 먹으며 살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살수 밖에 없다는 거, 어머니도 이해하시지요?



어머니의 아들은 이제 저에게 '전남편'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과거에도 앞으로도 저의 하나뿐인 시어머니입니다.


풍파 많았던 삶, 그래도 힘껏 잘 버티셨어요.

애쓰셨습니다.

저도 한세상 멋지게 살다가겠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해서,

하나님 곁으로 가실 때까지 곁에 있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곳에서도 늘 행복하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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