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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Sep 17. 2020

양육비 연체해봐 가만두지 않겠어!

이혼 후 이야기 #. 8

-내년에 복직하고부터 줄게... 안 준다는 게 아니잖아! 지난달에도 간신히 아껴서 보내준 거야. 이해보다는 조금만 참아줘, 부탁할게-


매달 말일에 입금되어야 하는 양육비가 며칠째 소식이 없었다.

10개월 뒤부터 양육비를 다시 준다는 답장이 왔다.


-당신 새끼 때문에 하는 육아휴직이랑 내 애들 양육비랑 무슨 상관이야! 이번 주 안으로 보내. 언제 보낼 건지 얘기해. 안 하면 양육비 직접 지급명령 신청한다-


단 하루라도 양육비가 늦으면 가만 안 둘 준비가 나는 늘 되어있었다.

최근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 들었다.

'내가 애 낳던 날에도 일하고 온다고 가더니 무슨 육아휴직이야?'



전남편의 아내는 초등학생밖에 안 되는 한창 엄마가 필요한 아들을 떼놓고 재혼을 하여 또다시 아이를 낳았다.


'그래, 뭐 그 여자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며 어차피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이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자는 아직 돌도 안된 아이를 두고 나가버렸다.

주말 딱 하루만 아이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이미 떼놓고 온 아들도 있고, 다시 재혼해서 낳은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또 두고 나가고....

어쩜 만나도,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걸까.


아직 유를 먹는 아이를 놓고 가버린 애엄마 덕분에 어디 맡길 데도 없던 전남편은 결국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가까이 살던 누나들도 아이를 봐주지 않으려 했다.

처자식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누나들이 자기 마음 같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알려나.


엄마자격도 없는 여자라고,

내 어머니한테 함부로 하는 여자라고,

정규직이 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고,  

돈 돈 거릴 거면 애들 내놓으라고 나에게 큰소리치던 남자였다.


누나는 졸지에 홀아비처럼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딱한 남동생에게 반찬을 해다 나른다고 했다.


내 조카들 올케한테 주지 않고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키울 거라고 협박했던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이 올케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걸 알고나 있냐며

우울증에 절어 손을 떨던 나에게 말했다.

항우울제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며 겨우 버티고 있는 나를 찾아와 언성을 높였던 누나들이었다.




아내를 쫓아내고 아이들 친권마저도 10만 원에 팔고 어머니도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기다렸다는 듯이 새 출발을 하던 이 남자에게 남은 건 희끗한 흰머리와 이제 돌을 갓 넘긴 딸 하나와 몇 푼 안 되는 매달 휴직수당이었다.


수없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눈물 흘리고 빈손으로 집을 나오고 이혼소송을 거치면서 내가 얻은 건 경제적인 독립과 이제는 내 키를 훌쩍 넘는 든든한 아이들, 그리고 악착같이 모은 내 명의의 재산, 그리고 다시 찾은 자존감이었다.


이 사람과 나는 남이었다.

돈이 없고 휴직을 하는 건 그가 꾸린 가정에서 일어난 그 집 사정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봐줄 것도, 봐줄 이유도, 배려할 것도 없었다.




-내년에 준다고? 본인 먼저 살겠다고 애들 양육비를 제일 먼저 끊겠다? 

나라에서 돈이 없으니 내년까지 기본 생활비도 안 주겠다면 어떻게 할 거야? 가만 안 있겠지? 나도 그래!-


-양육비 의무도 져버린 아빠가 애들 볼 권리는 주장할 수 있을까? 

애들 안 보겠다는 거지? 두 달 연체되면 직장으로 양육비 직접 지급명령 신청 들어갈 거야. 

분명히 말하지만 말일까지 밀린 거 입금해. 

그때까지 애들 못 보는 건 기본이야. 애들한테도 얘기할 거야-


-빚을 내서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있는 거라도 다 긁어서 보내. 

엄마로서 당연한 거야 나는. 

내 새끼 어떻게든 키울 거니까 피 터지게 싸워서라도 다 받아낼 거야-



의무를 다 할 때까지 집요하게 압박했다.

전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뺏길까 봐 조용히 살 여자라고 생각했다가 이혼소송도 불사하는 것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생각보다 독한 여자였다는 것을.


당신은 나를 너무 쉽게 봤어.


-두 달치 밀린 거 보내. 한 달치 금액만 보내면서 1개월씩 꼬박꼬박 양육비 밀리는 거 더는 용납 안 해. 다음주내로 정상으로 입금 안되면 기관에 올리려고 법원 서류도 준비해놨어. 이런 걸로 하기 싫은 연락하게 만들지 마-


상황이 나에게 불리하던 과거에는 숨죽이고 엎드려 있었지만 내가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라면 가차 없이 다신 고개도 못 들게 찍어내려야 했다.


그것이 내 아이들과 관계된 것이라면 더욱 피도 눈물도 없어야 했.

양육비 직접 지급명령에 관련된 서류를 등기로 받아두고

행정절차를 모두 알아본 뒤 활시위를 놓기 직전 다시 한번 경고했다.


-애들한테 쓰여야 할 양육비까지 못쓰고 내가 그것 때문에 힘들고 짜증이 나면 결국 애들 손해야. 

잘 크는 거 보려면 자꾸 일 만들지 마. 


그리고 사정 얘기하지 마,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잖아? 

이딴 것으로 신경 쓰기도 지친다. 


이제 말로 안 하고 그냥 행정 처리할 거야. 

가압류되면 더 피곤할 거니까 신경 쓰게 만들지 마-



전남편은 문자를 받고 얼마 있지 않아 입금을 했다.


매달 말일만 되면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들과 관련된 것에서만큼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낼 준비를 언제나 하고 있었다.


오랜 마음고생과 암수술 이후 몸은 급속도로 기력을 잃어갔다.

내가 아프면 당장 아이들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었다.


언니와 동생은 내 안색이 죽기 직전 사람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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