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
지난 2007년 10월, 한국시인협회에서는 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이하여 "10대 시인 및 대표작"을 선정하였다. 이는 1908년에 발표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한국 현대시의 기점으로 본 것이었다. (현대시 기점론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한다)
당시 국문과 교수 10인이 선정한 10대 시인과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김소월 <진달래꽃>
한용운 <님의 침묵>
서정주 <동천>
정지용 <유리창>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김수영 <풀>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이상 <오감도>
윤동주 <또다른 고향>
박목월 <나그네>
이들 시인은 모두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와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에서 10대 시인으로 선정되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대표작은 (위에서 선정된 작품들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많이 보아 왔기에 친숙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 시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큼 알고 있을까? 그들이 그러한 시를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의 삶과 시 작품은 별개로 생각하기 어렵다. 비록 시 속에서 이야기하는 화자가 있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허구라 하더라도 화자는 시인 자신이며, 작자의 생각과 삶이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삶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나는 올해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하여 <현대시인론>과 <한국현대문학사>, <시창작기초> 등을 수강하면서 현대 시인들의 삶과 시 세계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또한 과제로 그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그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흥미롭기도 했고, 의외의 면들도 많았기에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그러자 그 시인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저 멀게만,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시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해 주는 듯했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었고, 그들이 숨기고 싶어 했던 치부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들과 추구했던 이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브런치북 연재를 새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총 스물두 명의 시인의 삶과 그들의 시 작품 세계에 대해서 알아갈 예정이다. 내가 선정한 시인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주로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했던 시인들이다. 연재 순은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를 위주로 했지만,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시인들이 많기에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김소월 (1902-1934)
한용운 (1879-1944)
정지용 (1902-1950)
김기림 (1908-?)
조명희 (1894-1938)
임화 (1908-1953)
이상 (1910-1937)
윤동주 (1917-1945)
백석 (1912-1996)
조지훈 (1920-1968)
서정주 (1915-2000)
유치환 (1908-1967)
신동엽 (1930-1969)
김수영 (1921-1968)
김춘수 (1922-2004)
박인환 (1926-1956)
김지하 (1941-2022)
신경림 (1935-2024)
이성복 (1946-)
최승자 (1952-)
천상병 (1930-1993)
기형도 (1960-1989)
대부분은 많이 알려진 시인들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시인도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시인들과 문학사적 의의가 있는 시인들을 골랐다. 사실 더 많은 시인들을 선정하고 싶었지만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 이만큼이다. 빠진 시인들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만약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혹은 연재하면서 여력이 된다면 추가로 몇 명의 시인의 삶을 더 이야기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시중에는 여러 권의 현대시인론 혹은 개론서가 나와 있지만 학술 논문 수준인 것들, 혹은 시의 분석에 주력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다. 이들은 대체로 전공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가급적 딱딱한 문학 이론 대신 내 방식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솔직히 내가 국문과 전공도 아니라 그런 문학 이론을 제시하고 분석할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하기도 하지만, 읽는 이들도 그러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나도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시인들의 삶에 대해 궁금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 여정을 함께 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는 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이 연재를 위해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현대시인론>과 <한국현대문학사> 강의를 참고하였으며, 각 시인들의 평전, 시집, 해설집 등을 참고하였다. 인용되는 시는 가급적 초판본, 정본 혹은 전집에서 발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인터넷상에서 보이는 시 중에는 잘못된 것들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부족함이 많을 수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사실과 근거에 기반해서 글을 써 나갈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주관적인 판단이나 사견도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러한 부분은 독자가 걸러내어도 무방하겠다.
'내가 과욕을 부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마음은 정했다. 아무쪼록 무사히 연재를 마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