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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Feb 26. 2024

62. 스코틀랜드에서 달리를?

스코틀랜드 켈빈그로브 미술관

집 떠나 먼 여행길.

이국만리 장소에서 만나는 낯익은 작품은 여행객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마치 먼 나라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양 반갑기까지 하다.


에든버러에서 출발한 스코틀랜드 여행은 장엄한 자연과 역사가 깃든 고성들,

괴물이 나온다는 네스호를 지나 '보니 프린스(Bonnie Prince Charlie)'의 전설 같은 이야기(https://brunch.co.kr/@cielbleu/254 참조)가 전해오는 스카이(Skye) 섬을 지나 맥도널드 가문의 대학살(https://brunch.co.kr/@cielbleu/147 참조)이 있었던 글렌코(Glencoe) 계곡을 짠한 마음으로 지난다.


아일리언 도난(Eilean Donan)--5세기 순교자 도난의 계시로 13세기에 지어진 성. 스코틀랜드 40대 scenic point 중 한 곳이다.
네스 호와 어커트 성(Urquhart Castle):13세기 요새로 지어졌으나 17세기 이후 폐허로 남은 성이다
스카이 섬의 일출
스카이 섬의 Kilt Rock
글렌코 계곡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글래스고(Glasgow)에 도착하면 이번 여행의 화룡점정이 될 켈빈그로브 미술관(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 이 기다리고 있다.


1901년 개관했다니 100년이 훌쩍 넘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미술관 겸 박물관이다.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 같은 다른 세계적 박물관들에 비하면 22개 전시실과 8000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아담한(?) 미술관이다.


캘빈그로브 미술관 겸 박물관 전경

여러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이집트 전시실까지 있는 캘빈크로브 미술관이지만 가장 독특한 전시실로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화가인 매킨토시의 작품을 전시한 'Mackintosh and the Glasgow Style' 관을 뽑을 수 있다.

렘브란트 전시실(좌), 몽마르트의 풍차, 1886, 고흐(우)
꽃 파는 여인, 1901, 피카소
매킨토시 전시관

프랑스에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가 있다면 이곳 스코틀랜드에는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1868-1928)가 있다.

19세기말 아르누보의 대가로 알려진 매킨토시의 작품은 글래스고 도시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장 나 다운 것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어디서나 진리다.

사진 중앙의 기하학적 느낌의 의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디자인이다.


'The Head', 2006, Sophy Cave

1층 동관(East Court)에는 특이한 전시물이 우리의 시선을 잡는다.


공중에 매달린 50개의 머리들.


누구는 섬뜩하다고 하고, 누구는 재미있다고도 하는 캘빈그로브의 명물 'The Heads'다.

2006년 Sophy Cave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50개의 얼굴들은 제각각의 표정으로 하나도 같은 표정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작가의 작품 의도가 맘에 든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 각자의 생각과 아이디어의 자유를 뜻하는 작품이라니 뮤지엄에 꼭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이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흥은 오로지 보는 이의 몫이라는 나의 생각과 딱 일치하는 작품 아닌가.


이제 긴 여정 내내 마음에 품고 왔던 작품을 마주 할 차례다.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1904-1989)의 '성 요한 십자가의 예수(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달리의 1951년 작이자 캘빈그로브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면서 스코틀랜드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뽑히는 작품이다.


달리의 '성 요한 십자가의 예수'

이전까지 십자가의 예수님을 이런 각도에서 그린 화가는 없었다.


달리는 십자가에 박힌 못이나 피 흘리는 예수님의 모습, 가시 면류관등 십자가형(Crucifixion) 하면 연상되는 고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고통받는 예수님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십자가 처형이 주는 고통과 의미를 신적인 아름다움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그려냈다.


'역시 달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처리는 16세기 스페인의 수도사가 이미 그린 적이 있다.


수도사 성 요한(Juan de la Cruz:1542-1591)은 기도 중 환시에서 본 광경을 스케치로 남겼는데 원본은 현재 스페인 아빌라(Ávila)의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


작품의 제목에 '성 요한의 십자가'란 표현이 들어간 이유다.

성 요한의 스케치 원본(좌)/ 성 요한의 스케치와 달리의 그림을 분석한 전시실 설명서(우)

성 요한의 스케치를 달리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십자가 밑의 배경이 된 곳은 달리가 1930년부터 1982년까지 거주한 바르셀로나 북쪽의 포트 리갓(Port Lligat)이다.

 

이곳은 달리가 거주했던 저택을 달리 뮤지엄으로 조성해 놓은 조용한 항구도시다.


한적한 포트 리갓 전경

포트 리갓이 배경으로 그려진 달리의 다른 작품 '최후의 만찬(The Sacrament of the Last Supper)'도 소개하고 있었다.

The Sacrament of the Last Supper, 1955, Dali,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여기서 문득 피카소의 말이 생각난다.


'유능한 예술가는 카피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는.


독특한 시선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에 접목하는 지혜를 가졌던 달리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긴 여행의 끝에 만난 독특한 달리의 작품에 정신이 번쩍 든다.

글래스고에서 만난 달리.

긴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 반갑고 신선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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