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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 Bleu Aug 22. 2024

71. 많을수록 꼭 좋은 건 아니다.

특별한 회화 기법: 그리자유(Grisaille)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의 르네상스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1525,1530-1569)'이 있다.

그는 풍경화와 농촌 풍경을 주로 그리던 화가로 '피터 브뤼겔'하면 보통 이런 작품들이 떠오른다.

The Harvesters, 1565, Metropolitan Museum of Arts, NY
Hunters in the Snow, 1565,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눈에 익은 그림들이라 '아하~ 이 사람.' 하며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그런데 런던의 코톨드(Courtauld) 미술관에는 여러 명작들 사이에서 유독 시선을 잡는 특별한 작품이 있다.

바로 이 작품.

'피터 브뤼겔'의 1565년 작품이다.

'Christ and the Woman Taken in Adultery', 1565, Pieter Bruegel the Elder, Courtauld Gallery, London

그림의 내용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성경 이야기인 예수님과 간통죄로 끌려온 여인이 만나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유명한 말을 네덜란드어로 바닥에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림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독특한 색채가 눈길을 잡는다.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화폭을 알록달록 채색하지 않고 주로 회색이나 회색에 가까운 색조를 이용하여 완성하는 '그리자유(Grisaille)'란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리(gris)'는 프랑스어로 '회색'이라는 뜻이고 '그리자유(Grisaille)'는 '회색조'란 뜻이 된다.

회색 및 채도가 낮은 한 가지 색으로 모든 색상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녹녹한 작업은 아니다.


이 화법은 14세기경부터 네덜란드를 비롯 플랑드르 지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치 잔뜩 찌푸린 겨울 하늘색 같은 회색을 주로 다루는 '그리자유'는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에 많이 그려졌고 '그리자유'라는 용어는 17세기에 와서야 화법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16세기 화가였던 '피터 브뤼겔', 화가 본인은 '그리자유'란 용어를 사용도 못해 본 셈이다.


'그리자유' 기법은 처음에는 교회의 제단을 장식하는 제단화(altarpiece)의 일부(주로 바깥쪽 날개와 하단 부분)나 조각을 모방하는 스케치, 유화의 밑그림 등에 주로 쓰였다.

회색의 음영만으로 조각품처럼 보이게 그려 낼 수 있어 조각보다 회화가 우수함을 보임과 동시에  실제로 조각보다 비용도 적게 들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체 채색 없이 몇 가지 색 만으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어 수련 과정에 있는 예술가들도 많이 사용했지만  절제된 색상만으로 완성해야 하기에 빛의 역할이 매우 중요시되어 숙달된 재능이 요구되는 기법이기도 하다.


같은 기법을 회색이 아닌 갈색이나 녹색으로 그리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갈색으로 그린 그림을 '브루나유(Brunaille)', 녹색으로 그린 그림을 '베르다유(verdaille)'라고 부른다.

이 용어들도 17세기부터 사용되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화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7-1337)'가 있다.

그는 일치감치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성당(Scrovegni Chapel:1305년 완공)'의 프레스코 벽화 하단에 '그리자유' 그림을 남겼다.

스크로베니 성당의 북쪽 벽화(위키미디어)/하단에 그리자유 그림이 보인다.

예수의 일생을 그린 프레스코화 하단 부분에 그려진 '그리자유'를  수 있다.

바로 위의 프레스코화 중 왼편에유명한 그의 대표작 '애도(Lamentation,1304년)'가 보인다.

이 벽화의 그리자유 그림을 확대해 보면 다음과 같다.

Injustice(불의), Infidelity(부정), Wrath(분노)/좌로부터

이 성당은 당시 파도바의 고리(?) 대금업자였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의 의뢰로 만들어졌다.

중세에는 고리대금업자나 은행가들이 천국에 가려면 모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돌려주거나 아니면 교회에 기부해야 된다고 믿었기에 요즘 우리가 볼 수 있는 많은 성당이나 제단화등이 기부자들의 모습을 담은 채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벨지움의 겐트에 있는 '성 바보 성당(St Bavo's Cathedral)'에는 제단화의 최고 걸작으로 뽑히는 '겐트 제단화(Ghent Altarpiece:1432년 완성)'가 있다.


북구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1390-1441)'와 그의 형 '후베르트 반 에이크(Hubert van Eyck:1385/90 – 1426)'가 완성한 대단한 제단화다.


제단화의 전체 모습(위키미디어)

이 제단화의 날개 바깥쪽에는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 두 성인의 모습이 그리자유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두 성인의 옆에는 역시 이 제단화를 주문한 당시 겐트 시장이자 성공한 상인이었던 유도커스(Jodocus Vijd)와 그의 부인 리스베트(Lysbette)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겐트 제단화의 양 날개를 닫은 모습. 가운데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이, 양옆으로 주문자 부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위키미디어)

이렇듯 전체 작품의 부속작으로 그려지던 '그리자유'를 '피터 브뤼겔'이 독립적인 작품으로 그려내어 이 기법의 장르를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피터 브뤼겔'은 단순한 색감이 줄 수 있는 독특함과 매우 세련된 기법으로 '그리자유'를 그렸는데 그의 작품은 오직 3편만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런던의 코톨드에 소장된 작품(이 작품은 외부 반출이 금지되어 있어 코톨드에 가야지만 볼 수 있다.)이고 두 번째 작품은 뉴욕의 프릭(Frick Collection)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The Three Soldiers'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때 영국왕 찰스 1세가 소장하기도 했던 작품으로 세명의 독일 용병 보병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를 그리고 있다.

'란츠크네히트'는 15,6세기 용맹을 떨치던 스위스 용병에 비교되던 독일 용병으로 당시 많은 화가들이 주제로 삼았던 용병들이다.

'The Three Soldiers', 1568,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Frick Collection, New York

세 번째 작품은 영국의 Upton House가 소장하고 있는 '성모의 죽음(Death of the Virgin)'이다.

거의 흑색의 음영과 성모를 비추는 조명만으로 완성한 그의 또 다른 수작으로 뽑히는 작품이다.

Death of the Virgin,1564, Upton House, Warwickshire, UK


'피터 브뤼겔'의 아들(Pieter Bruegel the Younger)이 아버지의 그림을 채색화로 그린 그림을 감상해 보자.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느낌은 다르겠지만 색상을 최소화한 '그리자유' 그림이 주는 매력과 화가의 탁월한 기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ieter Brueghel the Younger,1600, Philadelphia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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