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싸운 후 화해하기
오랜만에 오빠랑 무쟈게 싸웠다. 오빠도 나도 피곤한 나날이었다. 예민한 중에 예민한 주제가 나왔다. 그래서 아침부터 전화로 싸우고 카톡으로도 싸우고 오후가 돼서야 서로 미안하다고 했다.
싸움은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이다. 마음이 없음에도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고 부러 쉽게 잊기 어려운 생채기를 낸다.
오빠는 저녁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가 있었고,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갖고 떨어져 있자니 문득 보고 싶었다. 그래서 톡을 보냈다.
"오빠 올 때 미쯔 사와"
쓰고 보니 오빠가 보고 싶었던 건지 과자가 먹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톡을 보내고서 한참 뒤 오빠가 왔는데, 서로 ㅡㅅㅡ 이런 뚱한 표정으로 반갑다 인사도 안 하고 바라만 봤다. 톡으로 사과는 했지만 서로 얼굴을 보며 하는 진정한 사과의 과정은 아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빠 손에 들린 봉투가 왜인지 두둑해 보였다.
"미쯔 사 왔어?ㅡㅅㅡ"
오빠는 아무 말 없이 뚱한 표정으로 과자를 하나씩 툭툭 누워있는 내 앞에 떨궜다.
보자, 다이제씬.. 미쯔 두 개.. 매운 새우깡.. 닭다리 매운맛.. 헤헷?
내가 좋아하는 과자만 쏙쏙 골라온 게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 나도 뾰족한 가시마냥 오빠를 찔렀는데, 그렇게 사랑으로 감싸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또 과자를 고르며 '아.. 어떤 과자를 골라야 마음이 풀릴까?' 하며 고민했을 오빠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 또한 감동이었다.
이미 홧김에 시킨 교촌치킨을 먹고 두둑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던 터라, 하루 동안의 분노, 미안함, 후회의 응어리는 더 쉽게 풀렸다.
(근데 덜 풀린 게 남아있었는지 이날 밤 꿈에서 오빠가 나랑 잠시 헤어진 몇 달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 꽁냥 거리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됐다는 스토리의 꿈을 꿨다. 개 같은 꿈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서러워서 눈물부터 났다. 꿈인지 현실인지 불분명한 상태로
즉시 오빠를 불러 씨게 혼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빠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우리가 헤어졌던 적 조차 없다. 그냥 상처를 준 오빠가 미웠나 보다. 그래서 무의식에서나마 오빠를 밀어낸 것 같다. 악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이 사람을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서운함과 억울함을 풀어내니 오빠는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안았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어제 더 많이 대화했어야 했는데, 마음에 남아있었구나 잇다야." 듣자마자 헉하며 "아, 그런 건가 봐 ㅠㅠㅠ" 하며 울었다.)
그렇게 다음날,
여느 날처럼 각자 출근을 하며 전화를 하는데
문득 어제의 전쟁이 생각나 조금 슬퍼졌다.
"오빠.. 어제 우리가 싸웠던 게 슬퍼.."
슬퍼하는 나를 위로하며 오빠는 신선한 답을 했다.
"괜찮아, 잇다야. 정반합의 과정일 뿐이야. 우리는 싸우고 나면 항상 얻는 게 있잖아. 내 잘못된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잇다도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도 하고, 서로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잖아.
우리 관계가 잠시 한 보 퇴보했지만 다시 두 보 나아갔잖아. 그러면 그걸로 된 거야, 더 발전한 거니까!"
정반합.
헤겔에 의하여 정식화된 변증법 논리의 삼 단계.
하나의 주장인 정(正)에 모순되는 다른 주장인 반(反)이, 더 높은 종합적인 주장인 합(合)에 통합되는 과정. 이러한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정반합 이론.
싸울 때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다가도, 화해하면 둘도 없을 사랑꾼이 되는 우리가 어이없고 웃기기도 하지만.
점점 싸우는 시간도 짧아지고, 내 그라데이션 분노도 예전보다 덜하고, 사과 타이밍도 빨라졌다. 게다가 오빠가 말한 것처럼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고치기도 하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오빠는 늘 말한다. 사람이 둘만 모여도 안 싸울 수는 없어, 다만 잘 싸우는 게 중요해.
정반합,이었구나. 다행이다. 확실히 오빠에 대한 내 사랑을 더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긴 했다.
그래도, 다음 정반합 때는(?)
덜 화내고 덜 상처 줘야겠다.
미안해.
-2022.12.30 아직 연인이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