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게 보내야하는데...
혼자였던 삶과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와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삶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난 남들과 다를꺼라며 특별할 줄 알고 살아온 시간들이 꽤 길었는데 그 생각의 단편을 시원하게 깨뜨려줬다. 물론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 하지만 그 행복안에서 내가 내려놓고 포기해야하는것들의 범위가 꽤나 넓고도 깊었다. 내 몸이 몇 개도 아니면서 다 이루고 살지 알았나보다. 다 잘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랬던만큼 후폭풍은 갈수록 커진다. 이번에 아주 큰 폭풍이 휘몰아쳤었다. 얼마전 아이가 독감에 걸렸고 떨어지지 않는 고열로 입원치료를 해야했다. 종종 입원했었기에 크게 개의치않았는데 그 독감은 나를 비켜가지 않았고 아이옆에서 이틀을 수액을 맞으며 버텨야했다. 저녁이면 남편이 퇴근하고 병원으로 왔지만 남편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았다. 몸이 곪으니 마음이 덩달아 곪기 시작했다. 아픈아이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내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난 회복이 되지않았고 나의 마음은 어루만질틈도 없이 산산조각났다. 입을 닫았고, 귀도 닫았고, 무표정했으며 그렇게나 소중한 가족들이 싫어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남편이 심각하게 물었다. 혹시 자기가 잘못한게 있느냐고? 뭔가 큰일이 생긴거냐고! 그 물음들에 나는 바싹마른 모래사막처럼 건조하게 아니.. 없는데.. 왜... 가 끝이었다. 그렇게 내 자신도 돌보지 못하겠는데 부모님께 연락이 왔다. 아빠께서 노무법인의 영업에 귀가 열리셔서 나라에서 무조건 보상이 되는건지 아시고는 직업병에 대해 요양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며 그 영업사원의 말에 홀딱 넘어가신거였다. 그리곤 내게 그 사람의 명함을 사진찍어 보내신다. 그래, 물론 자식으로서 알아봐야한다. 당연히 알아봤다. 근데 왜, 그게 당연해야할까? 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부모님의 청춘이 자식을 위해 희생된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도 더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고, 아빠도 본인 인생을 즐기며 살아오셨지만 가족을 위해 한 순간도 허투로 하지 않으셨으니 효도해야한다고 세뇌아닌 세뇌를 하며 지내왔다. 오빠인 장남이 든든히 챙기지 않아 항상 부모님의 많은것들을 내가 챙겨야했고, 자연스레 부모님도 내게 기대셨다. 무거웠다. 두려웠다. 부모님의 나이가 드시면서 경제적활동도 줄어들고 노후준비도 안되어있는걸 보면서 솔직하게 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내 형편도 그리 녹녹치 않은데 내가 아니면 안될것같은 그 모든게 나를 옥죄고 있었나보다. 그 모든게 이번에 터진거였다. 아빠와 큰소리로 다투고 일주일을 넘게 엄마아빠와 통화를 안했다. 하기싫다. 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싶다가도 부질없을것 같았다. 대화는 서로의 할말과 기분에 따라 금새 끝날것 같고 오히려 더 악화시킬것 같았다. 누가 내 마음을, 이 답답함을 알기나 할까? 이해는 할까? 형편이 여유로우면 아빠가 그런 영업에 돈 때문에 귀가 열리시진 않았겠지..싶으니까 더 속상했다. 엄마아빠의 지나온 인생을 내가 판단내릴수는 없지만 계속 엄마아빠는 왜 이렇게밖에 못살아왔냐고 탓을 하고 있었다. 며칠 남지 않은 올해를 이렇게 원망속에서 보낼 수는 없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폭풍속에 있다. 이런 마음을 가졌다는걸 후에 얼마나 후회할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솔직히 내마음만 보듬고 싶다. 엄마아빠 생각에 또 마음이 아프지만 엄마아빠를 더 잘 보듬으려면 지금 나를 더 다독거려 줘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