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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Jun 07. 2024

발견

나는 너의 아픔과 고통으로 네가 자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올겨울에 만난 너와 지금의 네가 달라진 것을 너는 아느냐고 내가 묻는다. 그때보다 슬플지 모르겠지만 더 진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아마 이전의 너를 폐기하고 새로운 바다로 나아갈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서 다만 안온만을 바랐을 것이다. 매번 듣는 것만 듣고 매번 읽는 것만 읽고 만나는 사람도 정해져있음을 지루해하지 않는다.

그 지루함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었을까. 한없이 누군가가 미워지는 마음 앞에서 그리하여 너는 작고 작아져 더 접어지기 어려운 종이 쪼가리와 같아져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거울처럼 투명하게 들여다보여서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고 했다. 나는 너를 거울 앞에 더 자세히 비추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워하는 것에 드는 에너지는 강렬해서 미운 마음이 나는 나를 살리려 맨땅에 불질러 농사짓는 것이라 상상했다. 너의 그 말에 나도 엄마를 너무 많이 미워했고, 그래서 많이 고통받았다고 말했다. 그것도 나고, 그것도 너고. 거기서부터 사랑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내 못난 모습을 발견하는 일. 그 폐허에서 나를 일으켜 휘청이는 무릎에 손을 짚고 일어서는 일. 사랑이 만만하지 않은 것은 나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박서영의 유고 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2019)에 수록된 시 "숲속의 집"에서 한 문장을 발견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아야 심장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람이 어떤 사랑을 하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투병 중에 온몸으로 밀고 써 내려간 그가 남기고 싶었던 것도 결국엔 사랑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이 최초이자 최후의 발견이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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