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의 짧고 깊은 삶이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
"너무 짧게 살다 갔는걸요. 안타까운 이 죽음이 이 책을 넘어서요.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글로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죠. 글로 삶을 보여주는 사례는 너무도 많아요. 그래서 글이 좋은 경우에, 삶이 어떻든 일단 그 글이 나왔다는 것에 조금은 마음이 흔들리잖아요. 물론 글대로 살지 못한 사람은 많겠지만요. 글대로 산다는 건 다른 영역이잖아요. 그게 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한가요. 그런데 이 사람은 도대체 뭔가요. 글보다 삶이 더 궁금해요. 이 사람은 글보다 삶이 더 진했을 것만 같아요. 이 사람의 글은 그 자신의 삶을 일부도 못 담았을 것만 같아요. 언어의 한계를 느낀달까요. 이렇게 사고가 깊은 철학자의 문장에서도요. 그녀의 삶을 다 담지 못했다는 게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걸요. 물론 모든 철학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걸 다 쓰고 죽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요... 일찍 죽은 사람은 제법 있지만, 이렇게 쓰던 사람인데 일찍 죽었다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이... 서른셋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건 너무 아쉬운데요. 그녀가 조금만 더 살다 갔다면... 어떤 글을 더 썼을까요..."
<시몬베유 노동일기>(박진희 옮김)는 읽고도 갈증이 났다. 이 책 말고도 더 없을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더 갈증이 났다.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 제법 오래전에 알게 된 철학자였다. 나중에 생각이지만, 철학자라는 단어로는 조금 모자란다. 사상가이기 이전에 행동가였고 생활인이었고 실천가였다. 여러 철학 에세이들에서도 간혹 만나는 이름, 그러나 아직 그렇게 많이 유명해지지는 않은 이름. 책의 내용에서 몇 줄 밖에 없어도 궁금해지는 철학자들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시몬 베유라는 이름에 오래 머물렀다. 교양인이 되고 싶어 철학에 기웃대다 그마저도 요즘은 좀 멀리 있지만 말이다.
시몬 베유가 살아간 세계대전의 시대에 등장한 여러 철학자들과 달리 그녀는 실제 생활에 뛰어들어 연구하고자 한 철학자였다. 연구를 위해 책상과 글과 책을 파고든 것이 아니라, 삶 자체로 뛰어들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데카르트, 플라톤, 칸트의 철학을 이해하여 철학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그 능력으로 리세(고등학교)의 여러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그녀는 철학을 가르치고 철학을 공부하는 것만이 그의 삶의 목표나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듯이 세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자주 시위하고, 가난한 사람들만큼 적게 먹겠다는 실천을 한 것은 단순한 코스프레가 아니었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직접 농부들과 섞여 일을 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독일을 탈출한 사회주의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1933년에는 소련에서 추방된 트로츠키를 파리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소련과 노동자 계급을 주제로 트로츠키와 열띤 논쟁을 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에서 함께 생활하고 일하며, 기계가 노동자들의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고 생각하여 좌절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무정부주의자 부대에 가담하기도 하고, 후에 프랑스 망명정부에 들어가 반나치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1943년 4월 결핵과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틈틈이 글을 쓰고, 삶을 글에 녹여내려 하였지만 그녀는 글과 문자를 숭배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실천했던 혁명가의 모습이, 자신을 오롯이 현실에 내던진 앳된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두꺼운 렌즈의 안경 뒤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이 현실에의 단호함과 삶에 대한 고단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오이디푸스를 연상케 한다.
그녀는 유대인 부부에게서 태어났지만, 유대교와 구약성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을 비판했다. 그 선민의식의 과잉이 대를 물려 내려오면서 히틀러를 낳았다고 일갈했으며,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낱낱이 고발했다. 그녀의 사상은 뿌리 깊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서구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을 이야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신비주의와 기독교적 사랑(박애), 그리고 동양의 사상들에게 해법을 찾으며 유럽이 처한 현실의 문제점을 직시했다.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불교의 붓다, 도교의 도 같은 내용으로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선한 신에 대한 공부를 통해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을 구별하지 않아도 되는 신앙이 인간성의 회복과 전쟁의 흉포로부터 인간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언뜻 그녀가 사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대체로의 사람들을 더 괴롭힐 수 있는 적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가장 인간적인 문명이 육체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명"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노동'이라는 단어는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자들이 독점하면서 덫씌워진 이미지들이 있다. 어떤 말이 오염된다는 현상의 대표적 예시라고 생각한다. 시몬 베유는 노동이라는 단어를 사회주의자들만 독식하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경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노동의 종류를 나누고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을 상급자와 하급자로 나누는 구조를 인정하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지지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시몬 베유는 그런 단계의 불필요함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그저 인간의 존엄성을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고자 한 것 같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어떤 종교도 이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함께 일해보면 안다, 노동자도 사람이고 농민도 사람이고 모두 다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삶 속에서 펜과 종이를 든 책상 앞 철학자의 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보려 하면서 철학의 이유와 본질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책 속에서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현실에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간 존엄성의 보전을 위해 모두가 '노동'이라는 단어 밖에 서 있지 않아야 한다고 그녀는 이야기했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누군가의 위에 있고, 누군가가 누군가의 아래에 있다는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 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이다. 말살된 인간성이 누군가의 인간성을 말살시키려 할 것이므로. 나는 누군가의 인간성을 말살시키려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간성이라고 온전할 리 없다고 본다. 모든 폭력적 상황에서는 피해자만 가득할 뿐. 누구도 가해하지 않았다는 슬픈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맞아본 사람이 사람을 때리더라.'는 생활 속 비극을 우리는 모두 안다. 그래서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세계에서도 시몬 베유의 사상은 현실감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어디론가 자꾸 오르려고 한다. 시몬 베유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동력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할 것 같다. 높이 오를 곳이 있다는 것을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생을 찾아보기란 너무도 부족한 흔적들 밖에 없다. 짧은 생을 사회 참여 등으로 남긴 저작물이 많이 찾아볼 수도 없거니와 거의 사후에 출판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중력과 은총>이라는 책은 두껍지 않지만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는 언어들로, 문장의 힘과 의미가 시보다도 더 강렬하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그 힘과 응축된 에너지를 지금 다시 등장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