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국립 오페라단 에투알 박세은이 등장하기까지.
차이콥스키의 음악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하는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벌써 5년도 전인것 같다. 그때 나는 대사와 노래 없이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아, 내가 춤을 너무 우습게 봤구나.’ 라는 충격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감상이다.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의 아름다움을 진하게 깨달았다. 표현의 방법이 다양할수록 삶이 풍부해진다는 것을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말없이 몸으로 표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섬세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여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발레'라는 춤이 어릴 때의 나에게는 인위적으로만 다가왔다. 몸의 선을 극단으로 밀어부치는 듯한 느낌. 조여진 옷과 동작의 규율이 느껴졌는데, 너무 얽매인건 아닐까 생각했다. 저 춤에 자유로움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던 듯 했다. 아마 내가 무언가엔들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투사하게 된걸까. 나는 발레를 하는 발레리나에게도 발레리노 누구에게도 별로 끌리는 사람이 없었다.
한때 성공한 발레리나로 강수진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때가 있었다. 지금은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자신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발레라는 장르를 잘 몰라도 강수진은 유명할 때가 있었다. 강수진의 다 망가진 발가락 사진이 인터넷 창을 타고 떠돌고 있었던 적이 기억난다. 그렇게 잠시 텔레비전 예능에서 강수진의 이름을 만난 후, 대체로의 사람들은 잊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잊기에 좋았다. 나는 그녀의 '최초'라는 이력에 감탄하기에 바빴을 뿐. 그녀의 춤이 어느 정도의 성취와 수준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섬세함과 감동일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괜찮은' 대한민국을 대외에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고, 그 자체가 우리 삶의 응원일 수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발레리나 강수진이 얼마나 아름답건, 얼마나 예술적이건, 그걸 알아볼 수 있는 국내 수준(?)이랄게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그저 해외에서 '성취' 했다는 점, '인정'받았다는 점. 그것으로 우리는 '아- 대단한가보다.' 그 정도로만 감탄하고, 딱 그 정도 선에서 잊히기도 좋았다. 여튼 성장이 왕성한 국가적 상황에서 개인적 '성취'이기 이전에 국가적 '성취'가 더 중요하던 시절을 우리는 살아냈다. 그런 '성취'는 많고도 많다. 음악계에서는 차고 넘치고 운동선수들로도 손에 다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정명훈, 박세리가 떠오른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런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리고, 나는 1989년생의 발레리나 박세은을 SNS에서 만났다. 내 생각에 발레 공연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면 박세은을 그냥 지나쳤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의 몸이 아름다운 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손 끝과 몸짓 하나로 어떤 감정을 분명히 이끌어낼 수 있는 예술적 종합체. 어떤 말보다도 선명하고 어떤 음악보다도 때로 더 많은 화음을 가지고 있는. 춤으로 서사를 풀어낸다는 것을 생각해보긴 어려웠다, 발레 공연을 보기 전에는. 춤은 어떤 이미지만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쉽지 않은 길 위의 박세은의 '예술적' 성취가 궁금해졌다.
박세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인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혼혈 아닌 동양인으로서 최초의 수석 무용수(에투알)가 되었다. 박세은은 유학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 공부하였으며,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자신의 실력으로 입성했다. 그리고 파리 오페라 발레단 입단 10년만에 수석 무용수인 에투알(Étoile, 별이라는 의미)에 승급했다. 동양인 무용수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흔치도 않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자리에 간다는건 더욱 쉽지 않은데 말이다. 여전히 국가적 차원에서 그녀의 '성취'를 또 소비하기에(?) 바쁜터라 나 역시 거기에 동참해본다.
박세은은 유수의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난 뒤 뉴욕에서 여러 작품에 출연하고는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 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2011년에 오디션을 거쳐 한국 발레니나 최초로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러시아 발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주로 배웠는데, 프랑스식은 이와는 조금 달라 스타일 적응하는 것에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공부하고 연습했던것 같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카드리유(Quadrille·군무)-코리페(Coryphees·군무의 리더)-쉬제(Sujet·군무와 주역을 오가는 솔리스트)-프리미에 당쇠르/프리미에르 당쇠즈(Premier danseur/Premiere danseuse·제1무용수)-에투알 총 5개 등급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제1무용수까지는 무용수들의 공개 경쟁을 통해 올라갈 수 있지만, 에투알은 오페라 발레단 감독과 해당 이사회의 논의를 걸쳐 임명된다. 그렇다보니 에투알의 자리에 간다는 것은 단순한 '실력'이나 '테크닉'만 가지고 가능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박세은은 프랑스의 유력한 신문사《르 몽드(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에투알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2020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가 기존의 선진국들이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다른 선진국을 따라가기 바쁘다고 생각했던 기성세대는 그들에게 한 분야의 작은 부분이라도 인정받게 되면 그렇게 들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자리에 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를 내려가면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갖고 있는 위상이랄까, 수준이랄까에 대해 그리 놀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별로 겁도 없다. 타국들과 다를게 없거나 그보다 어떤 면에서는 우월한 지위의 우리나라의 수준에 대해 당연하다는 인식도 보인다. 나는 우리 사회가 길러놓은 근육과 면역 안에서 박세은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그녀가 발레리나로서의 성취에 이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는 요즘에는, 어떤 남성보다도 강인한 의지와 힘을 느낀다.(그녀가 임신과 출산을 하고 올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 있는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도 아직은 우리가 배울 점이다.) 우리나라가 이제서야 서서히 '박세은'과 같은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도 익숙해졌고, '박세은'과 같은 예술가를 품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강수진이 있었기에 박세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박세은은 제2의 강수진은 아니다. 또 다른 문을 열고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발레리나의 사뿐한 등장을 환영한다.
박세은에 대한 기사를 찾다 가장 최근인 2025년 2월의 보그(Vogue)와 작업한 화보를 만났다. 여전히 그녀는 발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깊이 집중하고 그것을 향한 삶은 얼마나 단순할까. 열정적으로 그 길을 가는 그녀의 손끝과 발끝에 실린 에너지와 섬세한 감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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