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PTSD가 올 것 같다.
‘성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PTSD가 올 것 같다. 대표님의 단골 멘트이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매일 수십 번씩 듣는 그 말. 스타트업 특성상 빠른 성장과 변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에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주말만 되면 정말 하루에 20시간씩 잠만 잤다. 휴대폰 알림음에 잠이 깰까 봐 아예 꺼두고 잠들었는데, 그 때문에 가족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쾅쾅쾅!’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나가보니 동생이 숨을 헐떡이며 화를 냈다.
“왜 또 전화가 꺼져있어? 엄마랑 다 걱정하고 있잖아!”
“아, 미안… 새벽에 알림이 울려서 끄고 잤나 봐 몰랐어”
“그니까 애초에 저녁에 미리 문자라도 남겨놓으라고 했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사람들의 연락을 무시하고, 대화조차 할 기운조차 없어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조금씩 번아웃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평생 이렇게 치열하게 일만 하며 사는 게 당연한 건가?’
오늘은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집에 들어왔다. 씻고 나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유독 힘든 날도 아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내일 아침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다음 날 아침 무사히 눈을 떴다. 자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을 이끌고 출근하고, 무슨 맛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점심을 먹고, 형식적인 대화를 나눈 뒤 퇴근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바로 잠들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응~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그냥 자기 전에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오늘도 늦게 퇴근했어? 피곤하지?”
“항상 그렇지 뭐, 근데 엄마 그… 원래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건가? 엄마는 어떻게 그랬어? 나는 혼자 사는 것도 이렇게 버거운데, 엄마는 어떻게 두 딸을 혼자 키웠어? 식당 일을 하루에 세 군데나 하면서 우리도 키우고, 빚도 갚고… 안 힘들었어?”
눈물을 힘겹게 억누르며 한 마디 한마디 입을 때어보지만 돌아온 엄마의 대답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는 너희들이 있었잖아. 힘들었는데 힘든 걸 몰랐지”
많이 힘드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로 울음을 참고 있는 내 신음 소리를 들은 건지, 엄마는 너무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위로해 주었다. 비전공 마케터로 스타트업에 입사한 지 3년 차 되던 해 힘겹게 퇴사를 결심했다. 대표님께서는 '너가 번아웃이 왔다고? 왜?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고, 애매한 경력이라 지금 퇴사하면 분명히 나중에 후회해'라며 극구 만류했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고, 퇴사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