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dip Oct 12. 2024

첫 출근, 사수는 없었다.

면접 볼 때 분명 있다고 하셨잖아요!

  대전 자취방을 정리하고, 일주일 만에 서울 본가로 이사를 했다. 직장인 엑셀 스킬, 구글 애널리틱스 실무, 명함 예절, 회의 기록법 등 직장인 필수 매너까지 공부하며 이제 모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오전 8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다. ‘나도 진짜 직장인이구나' 온몸이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다. 첫 출근에 설레는 나머지 지각하지 않으려고 긴장한 탓에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일단 회사 건물 1층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자!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꺼풀이 감겨 있는 여자가 자신의 손보다 훨씬 큰 사이즈의 커피를 들고 터덜터덜 카페를 나갔다. 잠을 자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 다음에는 슬리퍼를 신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와 아까부터 준비되어 있던 커피 4잔을 들고 서둘러 나갔다. 그의 빠른 걸음에 혼자서 책을 읽고 있던 손님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주변에는 회사 건물 밖에 없는데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게 의아한 행색이었다. 그 뒤로 각각 진한 남색과 회색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자 두명이 같이 들어왔다. 그들도 역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서로 아무 말이 없다가 커피 한 모금을 크게 마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아마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주제일 것 이다. 바로 옆자리라서 그들의 말소리를 들은 나는 내일부터 매일 아침 뉴스를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카페에 있는 한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 스쳐 지나가는 작은 장면 속 직장인 3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출근 시간이 다되었다. 어떤 출입증 카드 명찰을 받게 될지, 어떤 사무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함을 가득 안고 회사로 향했다. 첫 직장 사무실은 나의 환상과 전혀 달랐다. 나는 회사를 드라마로 배웠고, 드라마 속 회사는 대기업들이었다. 사무실은 굉장히 평범한 공장 사무실 같았다. 대기업의 넓고, 고급스러운 사무실과는 달리, 소박했다. 책상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고, 회의실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은 따로 없었다. 대신 큰 테이블 하나가 사무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이 회의실, 점심 식사 장소이자 회식 장소로 사용되었다. 탕비실이라고 할만한 곳도 없었다. 구석에 놓인 작은 냉장고와 커피 머신 하나가 전부였다. 가장 기대했던 명찰도 없었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뭘 바라겠는가.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첫 회사 경험을, 실무를 해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대가 될 뿐이다. 
 
  회사의 복지는 굉장했다. 9 to 5 근무시간, 주 1회 재택근무, 월 1회 리프레쉬 (오전 or 오후 근무 하는 날), 생리휴가, 월 3만 원 교육비를 제공 한다. 직원들은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수평적인 관계로 대한다. 대표님도 대표님이라 호칭하지 않고, 영어 이름만 부르는 걸 직접 들으니 이곳이 스타트업이라는 게 몸소 실감난다.
  내가 앞으로 일할 부서는 마케팅 부서로 나 포함 총 2명의 마케터가 있다. 스타트업은 사수가 없어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다행이 나에겐 던이라는 사수 한 분이 있었다. 분명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에디터팀에서 인수인계를 받기 전까진… 나는 이제 콘텐츠 마케터로 브랜드 SNS 채널 관리를 담당한다. 브랜드 채널을 나 혼자 담당한다니 긴장반, 설레임 반으로 배정 받은 자리에 앉아 온보딩 (Onboarding · 조직내 새로 합류한 사람이 빠르게 조직의 문화를 익히고 적응하도록 돕는 과정)을 시작했다. 회사 이메일을 만들고, 슬랙, 노션, 어도비 등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로그인하고, 회사 SNS를 둘러보며 분위기를 파악하는 간단한 일. 그리고 인생 첫 명함도 받았다. 두툼한 하얀색 종이 위에 뚜렷하게 써있는 내 이름 세글자. 한껏 들뜬 마음으로 미리 공부해 둔 명함 예절을 더듬으며 동료들과 명함을 교환했다. 


  어느새 본격적으로 인수인계를 받을 시간이 되었다. 첫번째 업무는 ‘인스타그램'. 본래 담당자는 에디터팀의 스텔라였지만 퇴사를 하게 되어 그 업무를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급한 퇴사로 깔끔하게 정리한 서류들 덕분에 처음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나만의 일로 습득했다. ‘인수인계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멋있어’. 일을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이 있어 그녀를 찾아갈 일이 없었고, 슬랙으로 현재 진행상황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쉽게 업무를 적응할 수 있었다. 


  카드뉴스 제작하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나 제목이다. 9장의 콘텐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야 하고, 호기심으로 클릭을 유도해야 한다. 글자 수도 너무 많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계정 컨셉에 따라 유머와 재치도 한스푼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신입이었던 나는 제목 때문에 카드뉴스 첫 장을 가장 마지막에 제작할 때가 많았다. 아래 내가 작성한 제목들 일부를 가지고 와봤다.

- 탕탕탕 대부도 노을 사냥꾼
- 갓 태어난 대구 신상 카페
- 여기는 런던이 확실합니다
- 문래동 그닥 내 맘속으로 다그닥 다그닥
- 파도가 들려오는 신비한 신비호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그대로 느껴지지 않나? 시간이 지난 후 봐도 애쓴 티가 보인다. 물론 아직도 제목을 짓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책 표지, 메일 제목, 카카오톡 광고 메세지를 꼼꼼히 읽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이 광고를 왜 클릭했을까? 여러 뉴스레터 중 이것을 가장 먼저 클릭한 이유가 뭘까? 독자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며 좋은 레퍼런스들을 수집해갔다. 그럼에도 도저히 제목을 고르기 힘들 땐 마케팅팀 동료 던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런 내용의 콘텐츠인데  A 제목과 B 제목 중 뭐가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전할 땐 항상 이유를 함께 말해줬다. A 제목이 더 좋은 이유, B 제목이 잘 어울리는 이유를. 그리고  나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


  “이건 제 의견일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꼭 수렴할 필요는 없어요. 최종 결정은 당신이 하는 거니까 참고만 하세요.”


  그 덕분에 나에게도 점차 결정하는 기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이 휘둘리며 모든 의견을 받아드릴 수는 없다. 그들의 의견이 모두 동일하지 않을 수 있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최종 결정엔 나의 확신과 의견이 담겨야 한다. 원하지 않는 의견이 들어올 경우에도 ‘감사합니다. 참고할게요.’라고 할 내공이 쌓인 거다. 사수가 없다는 것에 걱정이 많았지만 좋은 동료가 있어 든든하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함께 하게 될지 기대감이 부풀었다.

이전 03화 스타트업 마케터가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