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갈리고, 이가 갈린다는 그 소문의 현실은?
스타트업은 소수의 직원들로 자유롭고, 빠르게 성장하는 이미지가 있다. 이를 다른 말로는 이가 갈리고, 뼈가 갈린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이것을 사실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체계가 없다는 의미다. 기본적인 서류 양식도 없고, 회의에서 각자 메모하는 것은 물론, 회사 자료를 찾을 땐 여러 곳에 물어봐야 했다. 그리고 이 자유로움은 업무와 의사결정에도 포함된다.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그동안 해 온 업무를 보며 스스로 분석하고, 파악해야 했다. 개선하고 싶은 내용이나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도 뭐든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이러는데에는 이유가 분명했다. 빠르게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스타트업 특정상 정리된 서류 보고 보다는 대화를 통해 모든 일이 진행된다. 타이핑을 치는 것 보다 말이 빠르고, 타이핑을 치는 동안에도 일이 엎어지기 일수다. 그래도 5명의 신입이 들어오며 조금씩 체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회사 소개 노션 페이지 리뉴얼이다. 회사 소개, 일하는 문화, 직원 소개를 수정하고, 자사 브랜드 홈페이지에 없는 ABOUT 소개 페이지를 추가했다. 단순한 글보다 서비스 기능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유저 활동을 예측하여 각 기능과 활용법을 이미지와 함께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브랜드 소개 페이지를 살펴보았는지는 상상도 못할 거다. 알고 있는 정보가 없어서 무작정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틀을 잡았다. 브랜드의 톤앤매너에 맞게 소개 문장 하나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썼다. 빈 흰색 화면이 어느새 꽉 채워진 걸 보았을 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처음 만들어 본 소개 페이지 치고 잘 만든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브랜드 소개 페이지가 브랜드의 찐팬이 될 것 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이 예쁘게 갖춰입은 모습이라면 ABOUT는 브랜드의 맨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대놓고 보여지지는 않지만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내용이 잘 전달되어야 그때부터 그들과의 관계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스타트업이 체질인가 보다. 이런 나에게 대표님께서는 오히려 경주마가 되지 말라고 종종 말해주셨다. 스타트업은 다른 곳보다 번아웃이 오기 쉽다며 무리하지 않고 오랫동안 잘 달렸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고,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대비되는 말을 같이 해주신다. 칼퇴하던 입사 초기와 다르게 9 to 5라는 워라벨은 사라지고 야근하는 날만 늘어만갔다. 칼퇴 후 운동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는 직장인 로망은 사라진지 오래다. 연차는 쌓여가지만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일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하루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선 이틀동안 야근을 해야만 했다.
어떤 날에는 주말에도 일을 하기도 했다. 금요일 오후, 퇴근을 2시간 남겨두고 대표님이 마케팅팀을 불러 구글 데이터 스튜디오라는 게 있는데 이걸 활용해서 데이터 대시보드(업무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도표나 그래픽 등으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된 페이지를 말한다.)를 만들라는 임무를 주셨다. 마감 기간은 다음 주 월요일 출근하면 다들 볼 수 있도록. 그말은 즉, 오늘 중으로 끝내라는 것인데 나와 던은 구글 데이터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모르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게다가 금요일 저녁 약속이 있어 야근도 할 수 없는 상황. 시간을 조금만 달라는 우리의 주장은 ‘주말에 하면 되잖냐, 왜 시간 때문에 안된다고 미뤄?’ 라는 대표님 말에 사뿐히 짓밟혔다. 다행이도대시보드를 제작하는 게 어렵지 않아서 주말 내로 99% 완벽한 대시보드를 구축해냈다. 또 한 번의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지만 그 주는 다른 때보다 더 피곤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들 힘들다, 피곤하다 해도 열정과 도전이 식지 않는다. 팀원들에 대해 알아갈 수록 신기했다. 어떻게 성장에 미친 사람들만 모일 수 있는 것인가! 주변에 빌런이 없다면 내가 빌런이라는데, 이곳에서는 내가 빌런인가보다. 주 2회 재택근무가 주 3회로 늘어나도 누구 한 명도 농땡이 피우는 일이 없다. 양심적이고, 회사와 개인의 성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주간 회의를 할 때면 다들 언제 이 많은 양의 일을 하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도 쉴 때는 연락하지 마세요 대표님. 퇴근 후 7~9시에도 연락하는 건 너무합니다. 연차가 있으면 뭐합니까. 사용하지를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