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S와 M은 삼겹살을 앞에 두고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다. M은 모든 일에 매우 신중하고 소심하며 자기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만남은 진전이 되고 있는데 M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신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질문을 하곤 했다.
M은 사별 이후에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두 번 다 괜찮은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밑반찬을 만들어서 챙겨주는 등 세심한 애정 표현도 했었다고. 그렇다면 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은근히 궁금하긴 하나 지난 과거의 연애사를 들추는 건 자제해야 하는 일이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아무래도 자녀가 있는 사람들이 사별이나 이혼 후의 만남을 가지는 것에는 장애가 꽤 있다. S는 돌싱이나 자녀는 없기에 그렇게 경험으로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은 딱 자기가 경험한 분량만큼만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지도.
두 번째 데이트에서 S와 M은 삼겹살집에 마주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가게를 35년이나 운영하셨다고 하는 데 자신 있게 추천하신 얇디얇은 대패 삼겹살의 맛은 그저 그랬다. 자고로 삼겹살은 도톰하여 씹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나마 곁들이로 나온 순두부 김치찌개와 비빔 냉면은 먹을 만했다. 가게 안에는 난로가 켜져 있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바깥 영하의 날씨처럼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M의 지난 경험은 S와의 순조로운 연애 생활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다. 1~2년 정도 계속된 진지한 만남도 이별로 끝나고 나니 새로운 만남에도 수많은 망설임과 주저함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한 블록마다 걸리는 교차로의 신호등처럼 삐걱거리며 멈추는 마음.
"저는 재혼을 할 의사는 없습니다." M이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저도 그럴 생각은 없어요. 이미 이혼을 한번 했기 때문에 두 번째는 더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혼이라는 큰일을 두 번이나 실패해서는 안 되니까요." S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저는 결혼보다는 동거를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해요. 결혼하기 전에 평생 잘 살 수 있을지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의미로요." S가 평소 주장하던 바를 가볍게 덧붙였다. 그러나 M은 '동거'라는 단어에서 우려를 드러내면서 크게 동요했다.
“그럼 저희가 원하는 바가 다르네요, 전 동거도 이제 힘들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재혼하려면 사별 3년 안에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져서 누구와 같이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M의 얼굴은 먹구름이 드리우며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제가 동거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한 것 같아요. 전 두 사람이 오래 사귀다 보면 서로의 집을 자주 드나들고 함께 지내기도 하는 상황을 설명하려던 것이었어요." S는 심각해지는 M의 얼굴을 보고 변명하듯 설명을 덧붙이며 애꿎은 소주만 네 잔째 들이켰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잖아요." M이 나지막하나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M은 S의 구구절절한 변명 같은 설명을 들었지만, 아직도 얼굴이 어둡고 주저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새로운 만남을 지속해가려면 미리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사전에 합의해 두어야 한다는 결심을 한 것인지. 한편으로 S는 그에게 구차한 변명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S의 마음에는 암울함이 감돌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M이 굳이 전에 만난 두 분의 직업이 상당히 훌륭함을 강조하여 비교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기준에서는 딱히 부족함이 없고 자존감이 높은 S에게는 기분이 상하는 말이었다.
동거도 재혼도 모두 부정하는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M이 교제했다는 두 분도 아마 이 부분에서 갈등을 겪다가 이별을 통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이 되었다. 마음대로 상상하고 꾸며낸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서 연애를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동거를 할 수도 있도 재혼을 결심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현재 그런 중대한 결정을 할 단계가 아닌데 굳이 알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정해놓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S는 열린 결말을 선호한다.
아무 다툼도 없이 뜨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간 후 S는 M에게 늘 하던 대로 짧은 안부 문자를 보냈으나 주말이 지나도 숫자 1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읽지 않는 메시지에 전화도 받지 않다니.
S는 온종일 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건조하게 메말라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지친 나뭇잎 같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