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두 번째 만남 이후, M은 S의 문자에 답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 밤 S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M에게 문자를 남기고 통화를 하려고 했으나 전화에도 묵묵부답.
정신이 멍하긴 했으나 현실을 직시하며 ‘잠수 이별’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봤다. 나이가 오십 중반을 넘어서는 자가 잠수 이별이라는 걸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중한 만남만큼이나 이별도 서로에게 상처를 최소화하도록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회피형 애착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이런 이별을 택한다는 설명이 나왔다.
잠수 이별이라니 이 무슨 예의 없는 행동인지. 온갖 잡념들이 떠돌고 대체 무슨 잘못을 했던가 기억을 낱낱이 더듬어서 수많은 예상 시나리오를 작성해 봤다. 어느 날 갑자기 매일 연락하던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단지 이주 밖에 흐르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랄까. 잠수 이별을 하는 사람과는 그 습관이 반복이 되니 애초에 정리하라는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기가 차서 며칠 밤잠을 설쳤지만 일주일 후에 보낼 장문의 메시지를 적으면서 마음에 안정을 찾아갔다. S에게 글쓰기는 현실을 마주 보고 마음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효과까지 있다. 네 OO에도 검색을 해봤다.
물론 무조건 회피형이라고 해서 잠수 이별을 하는 건 아닙니다. ‘잠수이별 하는 이유’는 생각을 조금 극단적으로 하시기 때문인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내 애인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삶의 패턴이나 본인이 믿는 신념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면 또 관계를 포기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죠.(예를 들어서 비혼주의자인데 결혼을 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상황. 의외로 결혼을 앞두고 연락두절 돼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네이버 포스트)
S는 M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찬찬히 돌아봤다. 사람에게는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사실 S가 M에게
이성적으로 크게 끌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은 이상형의 기준을 넓히고 만남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M이 상당히 탄탄한 회사에 다닌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고. 그 외에는 딱히 두드러지게 매력적이라 할 순 없다.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감정에 빠진 걸 수도.
M은 회피형 성향뿐 아니라 자존감도 낮은 사람으로 판단이 된다. 피부과에 다니며 동안 유지에도 꽤 신경을 쓰는 편이었고 처음 데이트를 나온 날도 ‘나를 위한 보상’이었다며 운동화에 60만 원을 썼다는 둥 하는 말을 했었다.
(기실 그 운동화는 그 값어치로 보이지가 않았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몸에 걸치고 나온 것만 백만 원이 넘는데 데이트 비용이나 좀 더 쾌척해 주셨으면 어떨까 싶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M은 S가 무심코 하는 말에도 심각한 표정을 지어서 마음이 쓰이고 사과를 하게 만들곤 했다.
참으로 다양한 생각이 스쳐갔지만 M과의 만남은 여기에서 끝내는 게 옳다는 결심이 들었다. M이 읽든 읽지 않든 그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며.
M 님에게
저는 지난 금요일 이후에 연락을 받지 않으셔서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곰곰이 무슨 문제가 있었나 수없이 돌아봤어요. 그날 나눈 대화로는 M 님이 동거나 재혼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시작일 뿐이니 그런 주제를 나눌 만한 단계도 아니라고 보입니다.
다만 예전에 사귀셨던 두 분에 관해서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 M 님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피해야 할 사항이에요. 그래서 제가 경제적인 문제가 없음을 언급한 것이고요.
두 번의 만남이 이별로 이어졌지만, 그 만남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새로운 만남에서 그 경험을 계속 언급하는 건 자제하셔야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니까요.
누구나 처음의 시작은 두렵고 떨립니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 수도 없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며 깊은 믿음이 쌓이는 거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M 님이 요즘 일정이 바쁘시고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을 제가 좀 간과한 것 같습니다. 그 점은 경솔하게 말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너무 피곤하니 졸린 것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정도로 답을 해주셨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는 요즘 수업이 많이 빠지고 공부방 학생은 모집 중이어서 시간이 많은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좀 더 연락을 자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자는 굳이 바로 답을 하지 않으셔도 되고 처음이라 더 관심을 가지고 자주 안부를 물은 것뿐이에요.
아무튼, 저는 이런 부분을 대화로 풀어가지 않고 연락을 단절하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늘 마음속의 생각을 털어놓고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소통하셔야 할 것 같아요. 말씀하시지 않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만남이 소중한 것만큼 이별의 과정도 서로에게 상처가 없도록 마무리되어야죠.
이렇게 되어 아쉽지만 즐겁고 고마웠던 시간을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던 좋은 기억만 남게 되길 기원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M이 깊은 물속 바다로 사라진 일주일 후, 이 문자를 보냈는 데 다음날 카톡이 왔다.
‘바쁘세요?’ 단 한마디.
일주일 만에 처음 한다는 소리가 바쁘냐니? S는 지금부터 다른 모임에 가느라 바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