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사각 Dec 07. 2023

뜨거운 송년의 밤

^^

12월이 다가오니 밴드마다 송년회 공지가 한창 올라왔다. S는 전에 모임에서 만나 M을 사이에 두고 묘한 삼각관계를 이뤘던 K와 모임에서 연속 두 번 만나고 점차 친해졌다. M의 온갖 망발을 신나게 씹으면서 둘이 사이는 더욱 돈독하게 되었다.     

 

K는 S를 다른 밴드 모임에 초대했고 그 모임은 일찌감치 시내 대학가 주변의 칵테일 바를 대관하여 송년 파티를 열 계획이었다. 송년 모임은 가장 많은 멤버들이 참여하므로 궁금하기도 해서 참석 신청을 눌렀다. 주말 저녁에 장소를 섭외하는 대는 돈이 수백만 원 들어가서 선입금을 받느라 운영진들은 분주했다.      


S는 수요일부터 시작된 목이 칼칼하고 콧물이 뚝뚝 떨어지는 감기 기운으로 망설여졌다. 병원에 가서 약을 타 먹으면서 투혼을 발휘해 멀고 먼 서울행을 감행해야 하는가?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다.


연말의 서서히 끓어오르는 흥분이 감도는 주말에 방구석을 지키면 또 무슨 낙이 있겠는가? 약이라도 먹으면서 없는 흥이라도 돋궈 봐야 한다.     

 

주말 오후 S는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전 버스가 떠나가는 데 뛰어가지 않은 죄로 찬 바람이 쌩쌩 불며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는 거리에서 15분을 기다린 후에. 버스는 아늑하고 따뜻하여 곧 잠이 쏟아졌다. 눈을 떠보니 버스는 서울 시내로 엉금엉금 들어가는 중이었다.      


서울역까지 가서 지하철로 환승을 하려고 계획했으나 시내에서 차가 너무 막혀서 광화문에서 내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도착한 광활한 광화문 광장에 어리둥절하여 지하철역을 찾는 데 헤맸다. 무사히 신촌까지 갔다.


평소 성격대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서 칵테일 바가 위치한 지도를 보면서 직진을 했다. 복잡한 길에서 길을 잃고 서 있으니 정신을 차리라는 듯 날카로운 경적이 들려왔다.      


얼마 전 알게 된 신문물인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다시 길 찾기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지도 앱은 친절하게 안내하여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바를 찾아줬다. 그동안 담을 쌓고 지내던 지도 앱과 버스 정보 앱에 점점 친근해진다.


차가 끊기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막차 시간을 확인하고 시간을 잘 가늠해야 하므로.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기 전, 초조한 신데렐라의 마음으로 오늘은 몇 시까지 놀 수 있을 것인가?     


S가 시골에서 상경하느라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 칵테일 바는 대학 시절에 ‘락카페’라고 불리는 곳과 비슷했다. 어둑어둑한 조명에 칸칸이 나눠진 자리가 있고 가운데에 무대가 있었다.


이미 도착한 50~60명의 사람이 자리마다 바글바글 앉아있었다. S는 쑥스러워하면서 빈자리를 찾다가 휑하니 비어 있는 테이블을 발견했다. 남자 한 분이 덩그러니 홀로 앉아있다 그 뻘쭘한 상황을 타개할 인물이 등장하니 반가이 맞아주셨다. 속속 새로운 분들이 자리를 채워갔다.      


그 테이블에서 만난 분은 P였다. 무려 부산에서부터 KTX를 타고 오셨다. 자연스럽게 지난번 추석 때 여행 갔던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풀어봤다. 다른 여자분도 여름에 부산에 다녀오셨다며 다음에 놀러 가면 연락해도 되냐고 P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셨다.


P는 그 여자분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더니 불쑥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S에게 자기 폰을 건넸다.      


S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순순히 그의 폰에 번호를 찍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따시는 구만.” 옆에 앉아있던 다른 남자분이 빈정거리며 농담을 했다.

     

마음만은 청춘인 싱글 남녀가 모인 자리는 신체 접촉을 유도하는 게임을 하면서 무르익어갔다. 바에 들어가면서 받은 명찰의 번호를 불러서 같은 번호의 남녀를 무대로 불러냈다. 사회자가 크리넥스 휴지 한 장을 둘 사이에 떨어뜨리고 얼굴로 받으라고 했다. 성공한 커플에게는 상품을 줬고.


몇몇 므흣한 장면과 탄성이 지나가고 S는 묵묵히 술을 마시며 다소 느슨한 게임의 지루함을 알코올의 기운으로 채웠다.  

    

‘어째 요즘 느는 것은 술밖에 없는 것 같다.’ S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P는 부산 사나이답게 적극적이고 시원하며 유쾌했다.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S의 술잔이 빌 때마다 놓치지 않고 맥주와 소주를 적절하게 섞어서 서빙하면서. S는 음침한 조명 아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같이 바 안의 인물들을 대략 훑어봤다. 그중에는 P가 가장 나아 보였다.      


K는 S의 자리에 와서 함께 있었는데 역시 오늘도 별 소득은 없는 것 같았다. 마침내 지루했던 게임 시간이 끝나고 무대는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에 우렁찬 DJ의 목소리가 가득 해지며 흥이 무르익어갔다.    

  

‘오늘은 춤이나 추고 가요.’ S는 오늘따라 침울해 보이는 K의 귀에 속삭였다. 다들 술기운도 한창 오르고 광란의 춤판이 펼쳐졌다. S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서인지 이상하게도 술에 취하지 않았으나 K와 함께 정신을 반쯤 놓고 춤을 추기로 했다.      


K는 평소에도 집에서 춤을 자주 춘다고 하고 노래하거나 춤을 출 때 귀엽고 매력적이었다. S는 사실 몸치이고 창피했다. K만 보고 따라 웃으면서 어설픈 웨이브를 시도해 봤다. 평소 움직이지 않는 골반이 제대로 움직여 주진 않았다.


익숙한 90년대 댄스곡들이 귓가를 려오니 흥을 최대한 끌어올려 봤다. ‘이브의 경고’나 ‘버스 안에서’ 같은 곡에 맞추어 덩실덩실.      


P는 끝까지 무대에 오르지는 않았고 S는 K가 뜬금없이 전 남자 친구를 떠올리며 눈물을 지어서 이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를 나오니 비로소 긴장이 풀린 건지 한계점을 넘은 건지 시야가 흐려지면서 술독에 푹 잠긴 것 같았다.


정신줄을 꼭 붙들고 술의 바다를 헤쳐 지면으로 헤엄쳐 나왔다. 흐릿한 세상에서 흔들흔들 출렁이며 집으로 휘청휘청.      


점심때가 지난 오후쯤 P에게 카톡이 왔다.      


하잉~~

잘 들어갔어?      


S보다는 대여섯 연세가 많으시긴 하다만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시나.

얼마만인가!^^

https://youtu.be/cSR-LBBuXQc?si=dXal_Xp2cJsVTQo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