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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Dec 11. 2023

썸을 타볼까요?

썸 타다: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듯 가까이 지내다.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네이버 사전) 

    

썸은 정확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Something’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관심 혹은 호감 가는 이성과 잘되어 가는 과정 혹은 사귀기 전에 남녀 사이에서 느끼는 불확실한 감정을 뜻한다. 이 썸과 타다가 합쳐져 썸을 타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이 썸 타기의 기술적 터전을 제공했다고 본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주로 전화통화와 대면접촉을 통해 이성을 사귀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 진정성이 요구됐다. 그러나 요즘은 전화통화와 대면접촉은 줄어들고 카카오톡과 같은 SNS의 사용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남녀 간 가벼운 관계 형성이 용이해졌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위키백과)    

 

송년회에서 만난 P는 다음 날 S에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하게 문자로 연락을 해왔다.      


P: 하잉~~ 잘 들어갔어?   

  

S: 네 잘 들어갔습니다.

   어제 잘 주무셨죠?^^     


P: ㅋㅋ 속은 괜찮지? 난 죽것쓰...~~      


S: ㅎㅎ 전 괜찮은데요.      


P: 그럴 거 같어. 나보다 술이 센 거 같더라.     


S: 어제 바에서 나가자마자 많이 취하긴 했습니다.

     정신력입니다!!^^

    

P: 그래? 그렇게 안보이더만 ㅋ

     먼다꼬.. 혀 꼬이는 소릴해야 귀엽징..ㅋㅋ

    

S: 전 애교를 부리고 하는 타입이 아니어서요. ㅎㅎ

   (P의 큰 웃음)     


P: 여튼... 만나서 반가웠어. 건강 잘 챙기고~~     


S: 네 안녕히 가세요 ㅎㅎ     


P: 차분한 게 맘에 들긴 하지만.. ㅋㅋ

    항상 그러면 잼 없쟈뇨. ㅎ

    막막 보내네.     


S: ㅎㅎ     


P: 아라써. 수고~~     


S: 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P의 하트)     


P: 엉.. 고마워. 또 보자.     


S: 네^^ (P의 엄지 척)     


S는 처음부터 반말과 줄임말을 남발하며 대화를 걸어오는 P가 좀 놀랍긴 했다. 아마 술을 살짝 걸치고 만난 자리여서 친해졌다고 여긴 것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하시니 딴지를 걸기도 그렇고 대여섯 살이나 많음을 인정하여 익숙해져 갔다.


문자라도 줄임말이나 비속어나 맞춤법이 틀리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지만 워낙 습관이 되신 것 같아서 말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P의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듣으니 S는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리고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에 줄줄 외우고 있었던 본적지도 생각났다. ‘경남 울주군 언양면 반천리 655’로 기억되는 주소. 이후에 서울로 본적을 모두 옮겼지만 한동안은 외우고 다녔던 것 같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는 게 신기하다.


일생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본적지는 어떻게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가? 이래서 공부는 어렸을 때부터 제 때 해야 한다는 건지도.     


사투리는 아직 어색하다. 태생이 서울 사람인 S는 지방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타입인가? 몇 주 전 막걸리 한 잔 하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서 경상도로 넘어왔으니 이러다 전국 팔도의 사투리를 다 듣게 될 수도 있겠군.      


경상도 사투리는 좀 세게 들린다. 억양도 높낮이가 심하고 ‘~ 나?’ 반말처럼 끝나는 어미가 거슬리기도 한다. 실제 경상도 사람들이 본토 발음으로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어떤 단어는 뉘앙스를 잘 알아듣기 힘들기도 하다. 지난번 바에서 만났을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남자분이 부산 여자분을 사귀었던 경험에 관해서 털어놨다. 전 여자친구분이 ‘뭔데?’라는 단어를 가끔 사용했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넘어갔으나 어느 때는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S는 ‘뭔데?’라는 단어를 언제 사용하는지 의아했다. ‘뭔데?’는 ‘그게 뭐야?’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네가 뭔데?’라는 의미일까. 상황에 따라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


P가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줬는데 애인에게 애교를 부릴 때도 쓰고 실제 화가 났을 때도 쓴다고 했다. 그러니 여기서도 억양과 제스처가 중요하다.      


문자 대화에 이어 P와 통화를 하고 있으면 ‘맞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맞나: 경상도나 지방에서 쓰는 말로, 정말이니?, 진짜니?라고 할 때 쓴다. 억양은 '맞'에서 올리고 ''에서 내리면서 길게 뺀다. (네이버 사전)     


썸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같은 과정이다. 사람과의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썸을 타는 사이에서는 서로의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레이더를 세우고 더 노력해야 하니까.


S와 P 만남은 자동차로 4시간 24분, 397km의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서 연결될 수 있을까? S의 고민은 깊어졌다.      

사랑이 피어나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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