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P와 썸을 타고 있지만, S는 다음 주말에도 밴드 모임 약속이 잡혀있었다. 정해진 약속은 어기는 걸 꺼려서 S는 네 번째 밴드 모임에 가기로 했다. 한창 썸의 파도를 타고 있는 P의 눈치가 보이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기 전 마지막 화려한 외출이라고 여겼다.
심리적으로는 좀 더 가까운 분당의 한 지역에서 모임이 있었다. 낮에 카페에서 만나는 모임이라 차분하고 진지한 대화가 오가리라 예상이 되어서 선택을 했다. 날씨가 희끄무레하고 몸이 무거워서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일었다. 하지만 모임 참석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부 공간이 예쁘게 꾸며진 카페에 도착했다.
이번 모임의 장은 전문가 수준의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어서 사람들과 출사하러 다니셨다. 카페에 도착하니 커다란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가지고 스냅 사진을 찍어주셨고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역시 고급스러운 장비와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군.
사람들이 띄엄띄엄 도착했고 카페를 나와서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먹음직스러운 삼겹살과 곱창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인심 좋은 주인장분이 서비스로 계란찜, 라면 등 음식도 계속 내주셨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었지만 분위기는 편안하고 즐거워서 S는 또 술을 줄곧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꾸준히 달리기해서 체력이 좋아진 건지 술이 쉽사리 취하지 않았다. 문제는 주량 파악이 안 되어 취할 때까지 끝없이 들이붓다가 한순간 술의 바다에 푹 잠겨버리는 것이다.
68동기 분들이 많이 모이셨는데 다들 친절하고 다정한 분들이었다. 3차도 주변 일본식 주점이어서 몇 가지 안주와 따뜻하게 데워진 사케가 또 오고 갔다.
‘에구구, 술에 술을 붓는구나.’ 전작으로 마신 맥주와 소주와 사케가 위 속에서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고 S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래서 진작에 술을 딱 끊은 것이었는데.
4차로는 이미 취기가 상당히 올랐으니 가무가 빠질 수 없었다. 역시나 술과 함께 하는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S는 호기롭게 처음 부른 노래에서 44점을 받은 후로는 다른 분들이 노래할 때 옆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무를 담당했다. 다 함께 으싸 으싸 둥글게 둥글게 열기가 더해지고.
노래방을 나올 무렵에 S는 만취의 바다에 깊이 빠졌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일행들이 어디로 갔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흐릿하고 출렁이는 세상에서 허우적거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단체 방에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고 또 봬요.“
라고 문자를 남기고 귀갓길에 올랐다.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고 시야도 흐려서 오타가 남발했다. 그래도 의사는 전달되었으니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오해하지는 않을 터라 안심하고 지하철을 탔다. 역시나 지하철은 끊기고 말았다.
술의 바다로 계속 빠져들면서 S는 난간에 간신히 의지하여 카 oo 택시를 불렀다. 술독의 바닥까지 떨어져서 길거리에 막무가내 드러눕기 전에 얼른 집에 가야 한다.
S가 본능대로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 택시 아저씨를 만날 수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친절하신 아저씨가 전화를 계속하시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 하고 S를 찾아내서 태워주셨다.
택시 안에서는 무슨 주사인지 이유 없는 눈물이 났다. 실연이라도 당한 여인처럼 말없이 소리를 죽여 눈물을 흘리는 S. 택시 아저씨는 영문도 모르고 조용히 차를 모셨다. 세상에는 이런 낯선 사람의 친절한 행동 때문에 감사한 일들이 많다.
S는 밴드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과도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P와의 썸도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으나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P는 주말에 KTX를 타고 S를 만나러 올 계획이었으니.